공깃밥 두 그릇은 기본, 세 그릇은 선택. 남대문 시장 갈치 조림 백반
최근 가장 감동 깊게 보았던 영화(다큐멘터리)를 꼽으라면 아마 '어른 김장하'라는 작품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다큐를 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 진정한 어른은 얼마나 될까?'라는 화두를 초빼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조금 더 하다 보니 우선 '어른'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필요했고 동시에 '좋은'과 '진정한'이라는 수식어에 함축된 의미를 찾는 과정도 필요했던 것 같다. '좋은 어른'이 단순히 '나를 잘 대해 주는 나이 든 사람'을 뜻한다면 '어른'이란 단어가 너무 무안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김장하' 선생님의 삶에 대해서는 이해는 많이 부족하지만 두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만 보더라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초빼이와 같이 세속의 욕망에 찌들 대로 찌든 범인(凡人)들은 절대 흉내 내지도 못할, '숭고한 가치를 품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해 나가는 인간'의 참모습을 덤덤하게 보여주는 분이었다.
사실 '김장하' 선생과 같은 분들은 땅에서 솟아나듯 갑자기 나타난 분들은 아니다. 다큐에서 볼 수 있듯 청년 시절부터 '김장하' 선생은 이미 '좋은 청년'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왔던 분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좋은 어른'으로 늙어가신 것이다. 그렇다. 좋은 어른이 갑자기 갑자기 나타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좋은 청년'으로 자란 사람이 '좋은 어른'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좋은 부모님들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고, 좋은 스승과 좋은 친구들을 만나 공부하고, 사회에 나와 좋은 사람들과 만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염원하는 '좋은 아이'와 '좋은 청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결국엔 그들이 '좋은 어른'이 된다.
안타깝게도 초빼이는 좋은 아이도 좋은 청년도 아니었기에 사실 좋은 어른이 될 자신도 없다. 그냥 남들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고 사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갑자기 왜 이런 꼰대 같은 '좋은 어른' 타령인가 싶겠지만, 우리가 즐겨 찾는 노포들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좋은 노포로 성장한다. 물론 우리나라 외식업의 짧은 역사로 인해 오랫동안 살아남기만 해도 노포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성공한 노포들은 그들의 초창기부터 '좋은 식당'이었다. 좋은 식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으로 초창기부터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식당들이 그 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성공한 노포가 된다.
얼마 전 남대문 시장에서 찾았던 '희락갈치'도 그런 케이스. 초창기부터 좋은 식당으로 이름나 많은 사람들이 찾았고, 지금은 노포로서 무게감도 갖추며 남대문 갈치골목을 대표하는 노포로 자리 잡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남대문 시장을 찾았다. 가장 마지막 방문이 벌써 5~6년 전이었으니 남대문 시장도 꽤 오랜만에 찾은 셈. 굉장히 추운 날이었음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평일 낮의 시장을 메우고 있어 '역시 남대문 시장이구나'라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4호선 회현역 5번 출구로 나와 남대문 시장으로 접어들었다. 남대문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내려 가면 큰 사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바로 좌측 길로 접어들면 갈치조림 골목의 간판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갈치조림 골목의 입구는 서울 장안에서도 유명한 닭곰탕 집인 '닭진미(구 강원집)' 집이 자리하고 있다. 순간 최면술에 걸린 듯 잠깐 망설이기도 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어르신들의 상 위엔 커다란 닭다리가 올려진 접시와 닭곰탕이 놓여 있고, 소주잔이 테이블 위에서 춤추는 것을 보니 초빼이의 마음이 마치 팔랑귀처럼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골목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이렇게 흔들릴 줄이야. 잠시 자리에 서서 눈을 감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골목 안쪽에서 바람을 타고 흘러나온 갈치조림 냄새가 내비게이션 안내처럼 방향을 다시 잡아준다.
갈치골목에 있는 식당들은 10여 곳 정도. 가장 최근에 생긴 곳이 20년을 넘긴 지 오래이고, 가장 오래된 중앙갈치와 희락갈치는 50년이 넘는다. 정확한 개업 연도는 밝히지 않지만 예전 기사들을 검색해 보니 70년대 중후반부터 갈치조림의 역사는 시작된 듯하다. 초창기엔 떡볶이나 순대 등도 메뉴에 있었으나 90년대를 거치며 갈치조림으로 정리되었다 한다.
골목으로 좀 더 깊숙이 발길을 옮기면 양편에 자리 잡은 커다란 간택기(업소용 화구) 위로 갈치조림 냄비와 계란찜 뚝배기 수 십 개가 뜨거운 김을 뿜으며 춤을 춘다. 좁디좁은 시장통 골목에는 산소처럼 양념 졸인 향이 가득하였고, 화구 위에 올려진 양은냄비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게들마다 줄 서 있었다. 대기줄에 서자마자 일행을 물어보시길래 혼자 왔다고 하니 때마침 비어있던 자리로 바로 입장. 때론 혼밥과 혼술을 즐기는 것이 이런 혜택을 줄 때도 있다.
작은 2인용 테이블에 앉자마자 기본 찬들이 깔린다. 처음 눈에 띄는 것은 비닐로 싼 김 봉투. 접힌 모양 그대로 손가락에 힘을 주고 누르면 그 크기로 잘린다. 갈치조림을 주문하면 계란찜이 함께 나오고 잘 구운 갈치구이도 두 토막 정도 함께 낸다. 이윽고 갈치조림도 도착.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뚝배기 계란찜의 향이 갈치조림의 그것과도 잘 어울린다. 마치 유럽의 조향사들이 여러 향을 배합해 최고의 향수를 만들어 내듯, 본능을 일깨우는 향이 점점 더 그 기세를 올린다. 마치 새벽녘 남대문 시장의 아침 안개의 향과 스모키 한 향이 어우러진 그런 향처럼 느껴진다.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차곡차곡 쌓아온 완성도 높은 조합이다.
갈치 한 토막을 밥공기에 올려 조심스럽게 발라낸다. 오랫동안 조린 갈치살은 서툰 젓가락질 몇 번에도 쉽게 속살을 드러낸다. 뼈만 남겨두고 두 덩어리로 발라낸 갈치살 밑으로 숟가락을 깊숙이 집어넣고 한 숟갈을 들어 올린다. 빨간 양념이 물감처럼 흘러내리며 달콤한 향을 피워 올린다. 눈 한번 깜빡이니 숟가락은 이미 텅 비었다. 입속에선 갈칫살이 뜨거운 흰 밥의 열기에 힘입어 숨겨뒀던 갈치 특유의 향을 거리낌 없이 토해낸다. 뒤이어 매콤 달콤한 조림 양념이 입 속 전체를 덮으며 강력하게 치고 올라온다.
'사장님 소주 한 병 주세요' 이제야 튀어나온 한마디에 후회가 막심하다. 음식 주문할 때 함께 주문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아마추어같이 요즘 왜 이러는지. 명색이 초빼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나이브]하게 음식을 대할 일인가?' 하는 자괴감이 강하게 몰려온다. 초빼이도 이런 실수를 한다.
첫 수저를 뗐으니 이젠 적극적인 자세로 갈치조림을 공략해야 할 시간. 양은 냄비에서 갈치 한 덩이를 더 덜어 밥공기에 올린다. 숟가락을 들었다 놓으며 양념 가득한 조림 국물을 밥에 뿌린다. 흰쌀밥에 조림 국물이 스며들며 만들어내는 그 향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향이다. 익숙하기에 더 무섭고, 알고 있기에 더 치명적이다.
갈칫살을 가볍게 부셔 넣고 조림 국물을 윤활유 삼아 비비기 시작. 살포시 한 숟갈 떠서 김 한 장 올려 입에 넣는다. 조미되지 않은 김의 그 다채로운 향과 맛이 더해져 입안에는 이미 바다가 가득하다. 심지어 갈치가 사는 바닷속 깊은 곳의 맛까지 담아내는 듯하다. 다시 한 잔. 때론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적절한 때이기도 하다.
갑자기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집의 밥공기가 너무 작다. 숟가락질 몇 번 했다고 한 그릇이 다 비워지니 이게 뭔가 싶다. 시골 할머니 집에서 보던 고봉밥만큼은 못해도 그 절반 정도 사이즈는 돼야 하지 않나? 사소한 것에 '욱'하는 것을 보니 초빼이도 호르몬이 넘쳐나는 전형적인 한국 아재가 맞는 듯하다. 성격 탓이 아니라 호르몬 탓이다. 사장님께 정중히 공깃밥 하나를 더 부탁드린다.
다시 시작이다.
초빼이에게는 아직 큰 갈치토막 하나와 잘 조려진 무 세 조각이 버티고 있는 양은 냄비가 남아있다. 수저로 조심스럽게 갈치와 무를 들어 새 밥그릇으로 옮겨 담는다. 잘 익은 무를 꾹꾹 눌어 으깨며 비빈다.
갈치조림 양념에 잘 비빈 밥은 의외로 계란찜과도 궁합이 좋다. 조금은 거칠고 칼칼한 조림의 맛과 풍미가 계란찜을 만나면 프림을 탄 커피를 마시듯 굉장히 부드러워진다. 예상치 못한 괜찮은 조합이다.
"유레카(Eureka)!"
첫 수저는 김으로 감싸 입에 넣고, 다음 숟가락은 계란찜을 올려 먹으니 두 번째 밥공기도 금세 사라져 버렸다. 바닥에 깔려있던 무는 굉장히 잘 조려 부드러운 식감과 겨울 무 특유의 풍성한 단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조림 양념까지 잘 베어 도저히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치 일본의 이자카야에서 오래된 단골들에게만 준다는 '어제의 무(昨日の大根)'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공깃밥 두 그릇은 기본, 세 그릇은 선택'
이 집 갈치조림에 붙일 수식어는 다른 것은 필요 없을 듯하다. 딱 이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이미 두 그릇을 흔적도 없이 먹어 치운 터라 도저히 부인할 방법이 없다.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추가 공깃밥을 시킬 수밖에 없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는 진리만 확인하게 된다. 심지어 초빼이와 같은 자발적 돼지는 공깃밥 세 그릇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등어와 함께 갈치는 서민들의 밥상에 자주 오르는 생선이었다. 1980년대까지는 잡히는 양이 워낙 많아 서민들도 부담 없이 밥상에 올릴 수 있을만한 값싼 생선이었고 게다가 맛도 좋아 인기도 많았다. 또한 지금도 여전히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의 1,2위로 고등어와 갈치가 거론되기도 한다.
지금은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한 어획량 감소로 요즘은 갈치가 아니라 '금치'가 되었다. 다행히 요즘은 잘 잡히지 않는 생선들을 외국에서 들여오고 있어 아직은 초빼이와 같은 서민들도 갈치에 젓가락을 들이댈 수 있을 정도이다. 우스갯소리지만 러시아(명태)와 노르웨이(고등어), 중국(조기), 세네갈(갈치), 그리고 칠레(오징어)가 아니었다면 조기가 없는 제사상과 노가리 없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 북어가 없는 북엇국 집들을 마주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초빼이처럼 남대문 시장을 찾아 갈치조림에 소주 한 잔 마시는 호사도 누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금치'라 불린다는 그 비싼 갈치조림을 1.2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정확하게 20년 전인 2004년의 기사를 검색해 보니 그 당시 이곳의 갈치조림 가격은 5천 원이었다. 20년간 단돈 7천 원이 올랐으니 1년에 350원씩 오른 셈이다. 아마도 이런 가격은 남대문 시장이기에 가능한 가격이 아닐까 싶다. 남대문 시장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부분.
제주도 어느 식당의 십 몇만 원이 넘는 갈치조림 한상에 비하면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상차림이지만, 초빼이는 남대문 시장의 갈치 골목에 더 큰 애정이 간다. 이곳에선 아직까지 갈치조림의 양은냄비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냄새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여전히 갈치는 '서민의 밥상에 오르는 생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 팁]
1. 주차장은 별도로 없다. 남대문 시장 인근의 공영 및 민영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지하철 4호선(회현역 5번 출구)이 가장 접근하기 편한 대중교통이다.
2. 월~토 07:00~21:00 / 일요일 정기 휴무
3. 참고
- 갈치골목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본문을 참고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활용할 것.
-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희락갈치와 중앙갈치식당. 두 식당 모두 50년이 넘은 노포다.
- 식사시간을 조금 지나 방문하는 것이 좋다. 식사시간에는 대기줄이 길다.(평일도 대기줄 있음)
- 기본 찬으로 갈치구이와 계란찜이 나온다. 부족할 경우 추가하면 된다.
4. 여행 및 관광정보
- 인근 노포 : 닭진미 강원집, 중앙갈치식당, 은호식당, 막내횟집, 진주집, 장영숙 토종순대국밥, 부원면옥,
가메골손왕만두, 한순자 손칼국수집 등
- 남대문(숭례문)이 인근에 있다.
- 서울로 7017은 봄과 가을에 걷기 좋다. 회현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시작점이 있다.
- 남대문 시장 관광도 좋다. 특히 초빼이는 수입품상가와 안경상가를 찾는 것을 즐기는 편. 웬만한 안경테는
거의 다 구할 수 있고, 수리도 가능하다.
- 인근 명동으로 가기도 쉽고 시청 쪽으로 방향을 잡고 산책도 권장한다. 서울의 오래된 거리를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