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 하동의 재첩국과 광양의 매실차 한 잔
어느 날이었다.
"숲이 좋은 절에 가고 싶어"라며 화두를 던진 마눌님은 더 이상 사족 없이 해맑게(?)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절집은, 특히 그중에서 오래된 절집들은 대부분 좋은 숲을 가지고 있다. 오대산 월정사의 숲도 걷기 좋은 길이고, 충남 예산의 덕숭산 수덕사도 편안한 숲이 인상적인 절집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이랴. 경북 청도의 운문사나 오대산 상원사, 부안의 내소사도 그 인상적인 풍광과 분위기는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숲이 좋은 절집"을 찾는다는 것은 그 행간에 많은 말들이 생략되어 있다는 의미.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고,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있으며, 인문학적인 지식도 쌓을 수 있는'이란 말이 괄호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을 다년간의 결혼생활을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던 것. 그래서 만들어 낸 초빼이의 투어 프로그램이 '남도 3대 사찰 투어'였었다. 합천으로 내려가 맛있는 산채정식을 먹고 팔만대장경을 품고 있는 해인사를 둘러본 후 지리산 기슭의 하동 쌍계사를 들렀다가 인근의 매암제 다원을 들린 후 섬진강 재첩국을 진상하고 구례 화엄사를 들려 오래된 가람과 지리산 노고단의 위엄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안배한 코스.
조금의 수정도 없이 한 번에 마눌님의 재가를 얻고 가장 빠른 일정을 잡아 길을 떠났다. 그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으로 마눌님은 재첩국을 꼽았다. 작고 귀엽기까지 한 재첩 한 줌으로 만들어 낸 뽀얀 국물의 마법에 '서울 촌년'이었던 마눌님은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심지어 쌍계사까지 오르는 길의 경치는 기억하지도 못했지만 섬진강변 식당의 재첩국과 재첩 비빔밥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하는 마눌님을 보면 '식도락'이 그때의 마눌님이 의도한 여행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뒤늦은 의구심을 가지기도 한다.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을 거쳐 220km를 넘는 거리를 달린 후 광양만에 이르러 비로소 바다와 만난다. 이 남해 바다와 섬진강이 서로의 경계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곳이 바로 하동 인근인데, 그곳에서 바로 재첩이 난다. 재첩은 낙동강 하구와 섬진강에서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섬진강의 재첩을 더 쳐주었는데 섬진강이 가장 좋은 수질을 유지하던 곳이라 그런 듯하다.
재첩은 사실 말이 조개지 다 자란 크기가 2~3cm 미만의 크기라 요즘의 우리가 자주 접하는 그런 조개와는 차이가 있다. 워낙에 크기가 '잘은' 조개이다 보니 조갯살을 재료로 음식을 만들기보다 주로 국물을 내는 용도로 사용하는데 재첩국이 가장 유명한 음식. 경상도 특히 부산 아재들의 첫 해장국에 대한 기억으로 재첩국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새벽녘 골목을 돌며 '재첩국 사이소'라 외치던 재첩국 장수의 정겨운 외침과 비닐 봉다리 한가득 담아 오던 재첩국에 대한 추억이 많은 이들에게 교집합처럼 남아 있어서이다.
어릴 적 기억엔 마산에도 가끔 재첩국 장수가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전날 과음을 하셨던 아버지를 위해 재첩국 장수에게 사 온 재첩국을 데우지도 않은 채 아침상에 올랐던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멀겋게 끓인 게 너무 맛없다"며 가끔 시장에서 채접을 사다가 직접 국을 끓이셨던 기억도 있다. 어머니의 재첩국은 냄비째 사다 먹던 재첩국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멀겋고 찰랑대던 국물이 아닌 적절히 전분을 푼(것 같은) 걸쭉한 국물이 인상적인 국이었던 것. 급하게 마시다가 입천장을 홀랑 데이기도 하고, 뜨거움을 겨우 달래어 식도로 넘겨도 전분기에 남아있던 열기가 식도에서부터 위까지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온몸을 베베 꼬던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뜬금없이 재첩국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 오르더니 '재첩국을 먹고 싶다'는 욕망이 불같이 퍼져나갔다. 집 근처에 그런 집이 있을까 찾아보니 우연처럼 한 곳이 있었다. 주말 아침 이른 시간, 전날의 숙취로 고생하시는 마눌님을 '재첩국'이란 단어 하나만으로 침대에서 일으켜 세워 바로 차에 올랐다. 인천 구송도에 있는 '하동재첩마을'이 목적지.
'비빔재탕과 전(재첩국+재첩비빔밥)'을 주문했다. 독특한 명칭의 메뉴가 눈을 끌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의 언어와 비슷한 줄임말로 만든 메뉴. 재첩비빔밥과 재첩국의 세트 메뉴이다. 함께 주문한 전은 재첩과 다슬기를 함께 섞어 부추전(찌짐)으로 구워 내는 음식. 아무래도 요즘은 섬진강의 재첩도 생산량이 줄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여 다슬기와 함께 섞어 양을 늘린 것으로 보였다.
테이블 위로 몇 가지 반찬들이 자리를 잡고 '전'이 나왔다. 경상도 아재인 초빼이는 아직도 '전'이라는 말이 살갑게 와닿지 않는다. 경상도는 '부침, 부침개, 전, 적'까지 모두 통틀어 '찌짐'이라 불렀다. 기름을 둘러 팬 위에서 굴리는 모든 음식을 '찌짐'으로 통일한 것. 녹두찌짐, 명태찌짐, 정구지찌짐, 호박찌짐 등 모든 것이 찌짐인 세상이었다. 넓게 펴고 기름에 지지고 뒤집게로 '꾹'누르며 적당히 태워 색을 내는 모든 음식들이 찌짐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찌짐'이란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통일할 수 있으니 오히려 편한 면도 있었다.
'찌짐'을 거칠게 찢어 젓가락으로 집는다. 예전의 아재들은 그것도 '남사스럽다'며 손으로 북북 찢어댔다. 좀 거칠게 찢어놓은 것이 더 맛있게 보이는 이유는 모르겠다. '자연스러움'의 영역인지 '마초이즘'의 영역인지 경계가 애매한 부분. 조그마한 재첩 알갱이에 밀가루 반죽이 살짝 눌어붙어 노랗게 지져진 모습이 먹음직스럽게 보이기는 하다. 재첩전은 슴슴하게 간이 되어 간장을 곁들이는 것이 훨씬 맛이 좋다. 큼직하게 뗀 전을 몇 겹으로 겹쳐 한 입에 넣으면 고소한 기름향과 씹을 때마다 '찰나의 시간만큼' 느껴지는 재첩의 식감도 좋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정구지, 아니 부추의 향이 쌈처럼 감싼다. '찌짐'을 반정도 먹고 나니 재첩국과 재첩비빔밥이 나왔다.
재첩국은 굉장히 간단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아무래도 재첩이 강바닥에서 서식하는 식재료이다 보니 해감을 하는 과정이 참으로 고단하다. 재첩이 들어오면 소금물에 하룻밤을 담가 이물질을 뺀다. 그리고 다시 세척. 몇 번을 씻어 겉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나면 그제야 물에 넣고 삶는다. 충분히 삶아 뽀얀 국물을 낸 후에는 조그만 재첩 알갱이 하나하나 모두 까 낸다. 그리고 다시 재첩을 넣고 끓이다 소금 간을 하고 부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어주면 재첩국은 완성된다. 요리는 어렵지 않으나 요리하는 과정이 사람의 품을 많이 요구하는 셈.
뜨거운 국물이 표면면을 덮고 있는 부추 사이사이로 피어오르며 재첩국 특유의 향을 내뿜는다. 수저를 넣어 한두 번 저어주면 부추향도 함께 피어오른다. 몇 년만의 재첩국인지. 뚝배기를 들고 국물 한 모금 들이키면 재첩국 물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단단함을 느낄 수 있다. 비슷한 외향의 홍합 국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국물. 강과 바다의 차이일지, 모래와 바위의 차이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은은한 재첩향은 정말 뭐라 설명할 수도 없는 독특한 향이기도 하다.
'후루룩' 뚝배기채 마시는 국물에서 옛 여행의 추억도 함께 피어오른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재첩국물에 40년을 넘게 혹사당했던 간(肝)이 새롭게 태어나는 듯하다. 국물에 함께 딸려 들어오는 부추향도 신선하다. 밥 한 공기를 재첩국에 말아 금세 바닥까지 비운다. 밥알갱이 사이로 치고 올라오는 재첩의 향이 좋다. 물론 하동에서 먹었던 재첩국보다는 조금 덜 진하지만 경상도도 아닌, 몇 백 킬로 떨어진 인천에서 재첩이라니 이 또한 엄청난 호사(豪奢)이다.
비빔밥 그릇을 앞으로 당겼다. 잘게 썬 부추가 넓은 이파리처럼 아래에서 받쳐주고 그 위로 잘디 잘은 재첩 알갱이들이 꽃처럼 자리 잡았다. 잔뜩 뿌려준 참깨가 수술처럼 올려지니 봄날의 토끼풀 꽃을 보는 듯하다. 토끼풀은 토양에 양질의 영양분을 공급해 주어 다른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도움을 준다는데 재첩도 사람의 몸에 그런 좋은 역할을 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믿음도 생긴다.
재첩국만 욕심을 내는 마눌님의 밥공기를 끌어다 밥을 비빈다. 비빔밥이 된 후에도 모습이 수수하니 참 곱다. 재첩과 부추의 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양념장 없이 비벼도 되고 좀 더 새콤달콤한 맛을 원한다면 양념장을 넣고 비벼도 좋다. 이날의 선택은 양념장 없는 것으로 선택했다. 몇 년만의 재첩국과 비빔밥인데 원재료가 가진 고유의 향과 맛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었다. 비빔밥 한 수저에 재첩국 한 수저. 비빔밥 두 수저에 재첩국 한 수저. 테이블 위에 고요한 전쟁이 벌어진다. 마눌님이나 초빼이는 서로 말이 필요 없었다.
'우걱우걱', '후루룩' 그리고 뒤를 이은 '하아~'
의성어로 이뤄진 그날 아침 식탁에서의 대화는 몇 마디의 공허한 말보다 더 진실되고 본능에 충실했었다. 뜬금없이 어머니가 해 주시던 걸쭉한 재첩국이 그리워졌다. 예전에는 하동의 재첩국과 부산의 재첩국이 조금 달랐다는데 요즘은 그 차이를 볼 수 없다. 그나저나 아침 해장에 두 공기의 밥을 비우다니 하루종일 따라다닐 마눌님의 잔소리가 눈에 선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간에 나쁜 영향을 미칠 테니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시 재첩국 집에 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러다 '애기 간'을 가질 수 있으려나?
재첩국 한 사발에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싶은 생각이 들 즈음, 사장님께서 입가심하라며 시원한 매실차 한 잔을 내주신다. 하동의 재첩과 광양의 매실이 멀리 떨어진 인천에서 비로소 만났다. 그리고 수백리 떨어진 초기 백제의 땅에서 기가 막힌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갈등'이라는 망령은 '좌와 우의 갈등'으로 모습을 바꾸더니 이젠 '나와 나 이외의 사람들'로 모습만 바꿔 혐오와 증오의 단어들을 내뱉고 있다. 저 위정자(爲政者)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임의로 만들어 낸, 실체 없는 유령과 같은 것들이 시간이 흐르며 그 형체를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세상은 증오와 혐오의 단어들로 가득 차 있고, 평범한 우리는 그 진창 속을 힘겹게 헤엄치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음식이 바로 이 집의 재첩국과 매실차 한 잔이 아닐까?.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는 경상도 하동의 음식과 전라도 광양의 차 한잔이 머나먼 인천땅에서 만나 이뤄내는 감동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비빔다탕 또는 비빔재탕 + 주류
2. 2인 이상 방문 시 : 비빔다탕 또는 비빔재탕 + 전 또는 회무침 + 주류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4대 정도의 차를 주차할 수 있다. 인근 빈 공간에 주차가능
2. 매일 07:00~17:00
3. 참고
- 코로나 시절을 지나며 단축영업 중이다.
- 재첩국과 재첩비빔밥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분이라면 한번 찾아볼만하다.
- 간판은 '하동재첩마을'이라 되어 있으나 인터넷 검색은 '24시하동재첩마을'로 해야 한다.
4. 여행 및 관광정보
- 인근 노포 : 송도콩나물해장국, 전동집, 국제경양식, 송도소머리국밥, 송도갈매기, 이북할매집, 향나무
촌, 송도궁중삼계탕 등.
- 이 식당이 있는 지역은 구송도 또는 송도 유원지라 불리는 곳으로 인천의 대표적인 유흥가 중 하나였다.
- 인근 송도센트럴파크공원은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가족들이 피크닉을 즐기는 곳이다.
- 송도센트럴파크에 최근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개관을 했다. 다양한 전시와 볼거리가 있다.
- 아트센터 인천은 다양한 공연과 인공호수, 그리고 조망으로 유명하다. 송도 트라이보울은 저녁시간에
찾으면 좋다.
- 자동차로 20여분 거리에 인천 차이나타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