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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Apr 11. 2024

초빼이의 노포일기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동 삼보식당]

미소에 자리물회 한 그릇, 먹어본 사람만 아는 또 한 그릇의 제주.  

물회는 굉장히 흥미로운 음식이다. 

먹을 것도 부족한 멀쩡한 회를, 물에 넣고 갖은 채소와 양념(고추장 또는 된장)을 풀어 '국물'과 같은 형태로 먹는 음식. 그렇다고 육고기로 만든 국밥이나 매운탕과는 또 다른 길을 걷는 음식이기도 하다. 국밥이나 매운탕은 고기(또는 생선)를 익히고 육수를 내기 위해 오랜 시간 불에서 끓이지만 물회는 끓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차갑게 먹기 위해 얼음을 넣기도 한다. 


이런 '별종'의 음식은 사실 해산물이 풍부한 지역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다양하고 풍부한 해산물을 언제나 쉽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전제가 붙었기에 가능한 음식이었다. 항상 먹는 해산물을 조금 더 맛있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궁리 끝에 '물회'가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물회는 경상도와 제주도, 그리고 강원도의 향토음식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이 지역들은 싱싱한 해산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물회가 탄생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게다가 물회를 만드는 법도 쉽고 얼음까지 넣어 차갑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여름철 이 지역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기에 적당한 계절음식이었다.(지금은 4계절 언제나 먹을 수 있다) 사실 물회는 바쁜 어부들이 배 위에서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하기 위해 먹기 시작한 것으로 통영의 충무김밥과 같이 '뱃사람들의 음식'이었다가 60년대 즈음에 일반 대중들에게 판매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 접시 회를 떠서 먹는 '거'한 음식이 아니었고 배 위에서 즉석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초기엔 많이 잡히고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어류(잡어)나 해산물이 그 주재료가 되었다. 예전에는 흔했던 해삼, 멍게, 오징어, 가자미 등부터 요즘은 전복, 광어, 농어, 우럭, 자리돔, 한치까지 꽤 비싼 어류까지 무엇이든 물회의 재료가 될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물회란 녀석은 '노동'이나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수반되어야 더욱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인 듯하다. 뱃사람들의  '노동'과 같은 가치 있는 몸놀림은 아니었지만 초빼이도 물회를 먹기 전 항상 두툼한 몸뚱이를 꽤 꼼지락거렸던 기억이 난다. 속초의 오징어 물회는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를 마친 후 먹었고, 포항의 물회도 100대 명산 중 하나인 내연산을 내려온 후 찾았었다. 제주도의 한치 물회와 자리돔 물회 또한 어느 여름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맛보았으니 그야말로 고단한 몸이 아닌 상태에서 먹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제주를 찾았을 때, 추운 날씨였지만 예전 기억을 쫓아 물회를 먹으러 나섰다. 물회라는 음식이 더 이상 여름의 음식도 아니었거니와 '냉면도 겨울이 제철인데'라며 호기롭게 외치며 나선 길. 노포 취재차 떠났던 여행이었기에 당연히 물회가 좋은 노포의 이름도 리스트에 들어 있었다. 털털거리는 오래된 연식의 렌터카를 끌고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갔다. 목적지는 서귀포시에 있는 노포 '삼보식당'.


1986년 문을 연 이곳은 제주도의 세 가지 보물을 파는 곳이라 해서 '삼보(三寶)'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삼보는 이 집의 메인 메뉴인 '전복 뚝배기'와 '옥돔구이' 그리고 '자리돔 물회'를 뜻한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매장을 다시 보니 십수 년 전 한번 들렸던 곳이었다. 예전 방문 때는 전복 뚝배기를 굉장히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마눌님은 조금 무난한 전 뚝배기를 나는 자리돔 물회를 주문했다. 


정갈하지만 소박한 찬이 테이블에 올랐다. 전국 어느 식당을 가든 맛볼 수 있는 그런 찬들. 미역무침에서 배추김치까지 무엇하나 특별한 건 없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대할 것들은 아니다. 제주도 특유의 투박한 손맛이 무겁게 얹어져 있는 찬들이라 더욱 특별했다. 잘 익힌 열무김치와 멸치볶음에 손이 자주 간다. 특히 멸치가 굉장히 좋은 상태라 비린맛 없이 입에 쏙쏙 들어간다. 찬모님의 손맛이 예사롭지 않다. 


팔팔 끓는 전복 뚝배기가 먼저 나왔다. 두꺼운 껍질 속에 단맛과 향을 가득 품은 딱새우부터 전복, 홍합, 바지락이 뚝배기 속에서 끓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 방문 때보다 해물의 양이 조금 줄어든 느낌이다. 어쩌면 왜곡된 기억으로 인해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미 자리 잡은 아쉬움은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는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마눌님의 수저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딱새우보다 갯가재를 넣었다면 더 깊은 감칠맛을 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하다가 어쩌면 갯가재는 제주에서 잡히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무렵 자리돔 물회도 테이블에 올랐다. 얼마만의 물회인지. 그리고 또 얼마만의 자리돔인지. 감회가 새롭다. 이 집의 자리물회는 예전 올레길을 걸으며 먹었던 자리물회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먹음직스럽다. 전 뚝배기에 아쉬웠던 마음이 자리물회를 보며 감동으로 바뀐다. 가격이 꽤 비싼 자리돔을 두텁게 세꼬시처럼 뼈째 썰어 물회에 넣었으니 마치 싱싱한 자리돔 회를 먹는 듯한 느낌이다. 예전 제주도의 어느 식당에서 만났던 자리돔 젓갈도 굉장히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떠 올랐다. 자리돔으로 만드는 음식은 어쩌면 '무조건 맛있음'을 보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옅은 선홍빛의 자리돔 속살과 채 썬 오이의 푸른색이 대비되며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그릇을 들어 자리물회 국물을 먼저 들이켰다. 묘하지만 시원한 국물이다. 된장을 풀어 물회를 만든다는 제주도의 방식을 따르지만 살짝 매콤 새콤한 맛도 느껴지는 것을 보면 고추장(또는 초장이나 고춧가루)도 함께 쓴 듯하다. '입에 착착 감긴다'라는 말이 삼보식당의 자리물회의 맛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할 것 같다. 국물 한 모금에 두근거리던 기대감은 한 수저 가득 뜬 자리돔에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살짝 거친 느낌의 두툼한 자리돔 살결이 입 속에서 맴돌며 은은한 감칠맛을 녹여낸다. 자리돔의 식감이 대단하다. 살점과 함께 씹히는 자리돔의 가시도 계속 씹고 있으면 고소하다. 


두세 수저 물회를 떠먹다가 공깃밥을 붓는다. 밥을 말면 시원한 국물의 온도가 조금 높아지기는 하지만 밥 알갱이의 전분이 녹아내리며 달콤한 맛을 더욱 끌어올린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반드시 있다는 것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삶을 살면서 알게 된 인생의 진리 중 하나. 이럴 경우 조금 더 선호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런 물회라면 국수면을 삶아 넣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확실히 이전에 먹었던 자리돔 물회보다 이 집의 것이 훨씬 더 완성도가 높은 듯하다. 밥을 넣으니 혀끝에 느껴지는 맛이 더욱 풍성해지며 예전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자리돔의 깊고 고소한 맛도 더불어 알 수 있다. 군집생활을 하며 함께 몰려다니는 자리돔의 크기는 작지만 그 작은 체구에 품은 맛은 어느 생선보다 더 거대한 것 같다. 물회를 좋아하지 않는 마눌님도 슬쩍 한 술 떠 보더니 '굉장히 맛있다'라고 감탄한다. 

  

여행엔 항상 음식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심지어 초빼이는 가끔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여행지의 특성을 그대로 담아내는 음식을 자주 찾고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심지어 음식으로 기억하는 여행지도 있을 정도이다. 삼보식당의 자리물회는 제주도라는 섬이 가진 매력을 한 그릇의 식사에 그대로 담아낸 듯하여 마음에 들었다. 이미 이른 아침부터 묵직한 해장국을 한 그릇 비우고 카페에 앉아 '뜨아'까지 한 이후인데도 너무 게걸스럽게 자리물회를 탐했다. 


비워버린 그릇엔 아직 녹지 않은 얼음만 남았다. 밥알 한 톨 남기지 않으려 박박 긁어먹었다. 마눌님의 앞엔 조개껍질과 딱새우 껍질이 훈장처럼 쌓여 있다. 유명하다는 제주도 어느 집의 통으로 구운 갈치보다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제주도 앞바다를 그대로 옮겨 담은 것 같은 물회 한 그릇이 더욱 '제주'스럽게 느껴진다. 이제야 자리돔의 참맛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단단한 식감에 달콤한 맛이 잔뜩 오른 자리돔의 맛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별미인 듯하다. 제주에 오면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은 갈치나 돼지고기가 아니라 자리돔인 것 같다. 


참고로 이 집엔 메뉴판에 없는, 현지인들만 아는 '(옥돔) 뭇국'이라는 비밀스러운 음식이 있다고 한다. 제주도 제사상에 오르는 향토음식이라 하는데 초빼이도 얼마 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현지인들만의 비밀스러운 메뉴. 다시 제주도행 항공편을 알아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전복 뚝배기 또는 자리물회 + 소주(미소(미지근한 소주))

2. 2인 방문 시 : 전복 뚝배기 + 자리물회 +소주

3. 3인 이상 방문 시 : 식사메뉴 + 옥돔구이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전용 주차장 있음. 매장 앞 길 건너편에 전용 주차장이 있다. 

2. 목~화 08:00~21:00 / 정기휴무 매달 2,4번째 수요일 / 라스트 오더 20:00

3. 참고

   - 자리물회가 부담스럽다면 한치물회나 전복죽도 좋다. 

   - 갈칫국이나 옥돔미역국도 제주도의 향토 음식이니 시도해 볼 것. 

4. 여행 및 관광정보

   - 인근 노포 : 범일분식(남원읍), 영해식당(대정읍), 가시식당(표선면), 대도식당(서귀포시), 영춘반점(서귀

     포시), 대포횟집(중문), (이하 제주시) 재벌식당(도령로), 태광식당(탑동로), 송림반점(관덕로), 유리네

     (연동), 삼대전통고기국수(신대로5길), 금복식당(동문시장), 만부정(사장길), 골목식당(동문시장) 등.  

    - 제주도의 식당들은 제주시나 서귀포 시내를 제외하고 일찍 문을 닫는 곳이 많으니 영업시간은 반드시 

      확인하고 방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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