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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Dec 05. 2024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려운 것' 시래기해장국

140. 대전 유성구 봉명동 전주집


지금은 사라졌지만, 같은 성씨의 친족들만 모여 농사를 짓고 사는 집성촌에 있던 초빼이의 할머니 집은 그야말로 시래기와 우거지로 만든 집 같았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처럼 '과자와 초콜릿으로 만든 집'이었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할머니 집이 있던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볏짚 냄새보다 더 진한 시래기 냄새가 마을 전체에 퍼져 있었다. 물론 겨울 방학 때 찾으면 그랬다. 광(창고)이나 광 옆 햇볕이 잘 들지 않던 벽에는 어김없이 시래기와 우거지가 몇 줄씩 걸려 있었고, 밥상엔 항상 시래기(된장) 국이 끊이지 않았다. 한 번은 '왜 저런 풀(잡초)을 벽에다 걸어놨을까?'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통영의 유명한 시래깃국 집의 상호처럼 경상도에서는 '시락국'이라 부르기도 했고, 초빼이와 비슷한 나이의 친척형들은 매 끼니때마다 먹는 시래깃국이 얼마나 지겨웠는지 '쓰레기국'이라 돌려 부르기도 했었다.  


시래깃국은 의외로 만들기도 쉬웠다. 물에 '대멸'(육수용 큰 멸치)를 넣고 육수를 낸 후 물에 불린 후 씻은 시래기를 넣고 된장만 풀면 시래깃국이 되었다. 집에 따라 무도 넣었고, 대파도 넣었다. 논두렁에 세워 둔 짚풀보다 더 짙은 향과 맛이 집된장 위에 얹혀 함께 입으로 들어왔다. 때론 시래기 껍질을 벗기지 않아 억새고 질긴 집도 있었다. 같은 재료와 같은 방법으로 만드는데도 집집마다 맛이 달랐다. 초빼이도 시래깃국에 물렸던 때가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는 계란 프라이를 시래깃국에 넣고 노른자를 터트려 좀 더 색다른 맛의 시래깃국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요즘은 그 흔한 시래깃국도 제대로 끓이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향 좋은 시래깃국 냄새를 맡으면 순간 멈칫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시래기'는 무청을 말린 음식이다. 무청이란 무의 윗부분, 즉 땅 위에 드러난 무의 이파리 부분을 일컫는 말. 

조선시대에는 무를 '나복(蔔)', '내북(萊菔)', '청근(菁根)', '댓무우', '대무우(大武侯)'로 불렀다. 가을에 크고 좋은 무를 뽑아 '움'(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어 비바람이나 추위를 막아 겨울에 화초나 채소를 넣어 두는 곳, 표준국어대사전)에 저장하면 겨울 내내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었다. 이때 무청도 말려서 시래기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겨울에는 그만한 것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세종대왕 이후로 많은 조선의 왕들이 기근에 대비한 구황식품으로 무를 재배하는 것을 권장하기도 했던 식재료다. (주영하 외, 한식문화사전, Human & Books, 2024.3.4)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였던 무는 기원전 중국으로 전해져 우리나라에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삼국시대부터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을 통해 들어온 재래종 무(길이 20cm 내외)는 깍두기와 김치를 담기 위해 사용했고, 일본을 통해 비교적 늦게 한국에 들어온 일본무(길이 35cm 내외)는 단무지의 재료로 쓰였다. 무는 흔한 식재료였기에 다양한 조리법이 있었다. 무동치미, 섞박지, 나박김치, 뭇국, 생채, 무나물, 젓무, 짠지, 무말랭이, 깍두기, 숙깍두기, 무밥, 무죽, 무구이, 무조림, 무부침, 무찜, 무정과, 무선 등의 주재료가 되었고 국, 탕 떡을 만드는데 쓰이기도 했다. 

게다가 무는 버릴 것 하나 없는 '가성비' 좋은 채소이기도 했다. 뿌리 부분인 무는 위의 다양한 요리로 만들었고 줄기와 잎은 따로 떼 내어 무청으로 사용했다. 특히 먹을 것이 부족했던 겨울에는 중요한 영양소의 공급원으로 역할을 하였는데 시래기로 만들어 먹는 것이 가장 흔하고 일반적이었다. 시래기는 원래 무청 또는 배춧잎을 말린 것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요즘은 배춧잎 말린 것을 우거지라 부르며 따로 나누게 되었다. 줄기와 잎이 연하고 푸른빛을 띠는 것이 좋은 시래기로 쳐 주는데, 데칠 때 물에 소금을 조금 넣어주면 다양한 영양소가 파괴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게다가 파종 후 3개월이면 수확이 가능했으니, 몸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최소 1년에 3번은 수확이 가능했다. 


연말이 가까워지니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술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은 시기.

초빼이도 괜스레 연말만 되면 오랜만에 만나게 될 사람들에 마음이 들뜨게 된다. 아니 그들과 안부를 묻고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는 시간을 사랑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술자리와 함께 따라오는 것이 다음날의 숙취. 반가움에 나누는 악수는 어느새 소주잔을 들며 건배를 나누는 손으로 바뀌었다가, 다음날 아침에는 자신의 배를 움켜잡고 있는 손으로 귀결된다. 수 십 년을 되풀이해 오는 우매함이다.


어떤 이는 해장(解酲) 국으로 지친 속을 달래고, 어떤 이는 해장술로 억지로 생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모두가 각자의 해장법이 있지만 얼마 전 알게 된 대전 아재들의 고풍스러운 해장법이 흥미를 끌었다. 사실 초빼이의 사회 초년병 시절 옛 직장 상사들이 많이 쓰던 방법이었지만, 요즘은 이런 식으로 해장하는 사람들을 보기 힘든 것도 사실. 대전의 아재들은 거하게 술 마신 다음 날, 유성온천에서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지진 후 길 건너편 해장국 집의 시래기 해장국 한 사발로 해장을 마무리한다고 한다. 온천욕과 해장국이 해장이라는 프로세스의 같은 선 위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형적인 한국의 아재들이 즐길만한 코스 인 셈. 


초빼이는 아침 일찍 숙소에서 몸을 담그다 나왔기에 온천욕은 건너뛰고 그들이 즐겨 찾는다는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대전 유성구 봉명동의 '전주집'이란 곳. 요즘 유성 온천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스파시설 길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해장국집 입구에 서자마자 옛 추억을 끌어올리는 시래기 냄새가 먼저 객을 반겼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질 좋은 시래기 냄새. 마치 솜씨 좋은 조향사가 수작을 부린 듯, 짚풀과 풀냄새가 한데 뒤섞여 몽환적인 향을 만들어 낸다. 거기에 압력솥에서 내뿜는 밥향 가득한 수증기가 더해지며 마치 '밥 짓는 굴뚝 연기가 집집마다 솟아오르는, 새벽안개 낀 시골'과 같은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이미 이 집에 반했다. 오전 이른 시간이었지만 전날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속을 달래고 있었다. 초빼이도 그 일행에 합류할 시간. '탕 두 개만 주세요'라며 2인의 생존 신고를 했다. 


몇 가지 찬이 테이블에 먼저 올랐다. 기본으로 내주는 찬 외에 다른 반찬을 원한다면 셀프바에서 직접 가져다 먹어야 한다. 처음 내주는 찬은 깍두기와 간단한 샐러드. 해장국집에서 샐러드라니. 시작부터 허를 찌른다. 깍두기와 샐러드도 좋았지만 추가로 가지고 온 무채 김치가 정말 잊을 수 없었다. 무채 김치 한 젓가락에 티끌만큼 남았던 이 집 음식에 대한 의심이 스르르 사라졌다. 맵지도 그러나 싱겁지도 않은, 무의 향과 식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무채는 전주집의 찬모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증까지 생기게 했다. 채 썬 무에 소금과 액젓, 식초 그리고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넣고 버무리면 되는 간단한 찬이지만 이렇게 밸런스가 잘 갖춰진 무채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시래기탕과 밥이 나오기 전 무채 리필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 믿을까? 심지어 옆을 지나던 서빙 직원에게까지 "무채가 너무 맛있어요!"라고 엄지를 치켜세울 정도였으니 더 이상 사족을 붙일 필요도 없었다. 그냥 먹고, 즐기고, 느끼면 되었다. 


시래기탕에 대한 기대가 한없이 높아졌다. 올갱이나 다른 주재료를 넣지 않고 시래기만으로 끓인 '시래기탕이 해장이 가능할까?' 하는 의심은 무채를 먹으며 이미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커다란 돌솥과 뚝배기에 담긴 시래기탕이 나왔다. 돌솥은 우리 역사에서도 오래전부터 흔적이 남아 있는 조리기구. 요즘의 돌솥은 그 위에 압력밥솥의 기능을 하는 장치까지 붙여 더욱 효용성이 높아졌다. 밥을 짓는 시간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 식당에서 갓 지은 밥을 내기 좋아진 것. 게다가 돌솥 자체가 가열에 걸리는 시간은 길지만 열의 보존성이 높아 음식을 골고루, 제대로 익힐 수 있으니 뒤집어진 속으로 찾는 해장 손님들이나 소화기능이 저하된 어르신들에게도 유용했다. 

돌솥밥을 작은 공기에 옮겨 담는 손이 바쁘다. 조금이라도 돌솥이 열을 잃지 않고, 맛과 향이 좋은 숭늉을 만들어내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돌솥을 테이블 한쪽으로 밀어낸 후 뜨거운 물을 붓고 뚜껑을 닫았다. 숭늉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 잘 달궈진 돌솥 안에서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와 뜨거운 물이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단 뚜껑을 완전히 덮으면 끓어 넘칠 수 있으니 주의. 한국인의 밥상에서 최고의 디저트라 할 수 있는 숭늉을 맛있게 먹고 싶다면 돌솥과 뚜껑 사이에 약간의 틈을 주고 숨 쉴 구멍을 내주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끝까지 몰아붙이면 쥐도 고양이를 물 수 있으니.    


시래기해장국 한 수저를 입에 넣자마자 밥그릇을 들어 국물에 말았다. 초빼이의 마눌님은 물이나 국에 말아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초빼이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맛있는 국이나 탕은 반드시 밥을 말아야 한다. 국물 그 자체로서도 훌륭하고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밥과 국(羹)이 중심인 한국인의 밥상 특성상 국과 밥은 반드시 만나야 한다. 좋은 국에 밥을 말고 그 속의 전분이 풀어지며 미세한 단맛이 국물에 더해지면 더욱더 단단해진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쓰지만 경상도 남자들이 성격이 급해 밥을 마는 경우가 많다) 사골 국물에 오래 끓여 잘 풀어진 시래기에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너무 설익지도 그렇다고 너무 질지도 않은 잘 지어진 밥이 뚝배기의 바닥에 깔리며 단단한 돋음 판이 되었다. 굉장히 잘 말렸고 손질도 잘해 질기지 않은 시래기에 이런 이질적인 식감과 달콤한 맛을 가진 밥 알갱이가 더해지니 이런 조합도 없다. 


성격 급한 경상도 아재의 쉴 새 없는 수저질에, '타는듯한 뜨거움으로' 식도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좋지 않은 식습관임을 알고 있지만, 국밥(국에 만 밥)의 진정한 맛을 느끼고자 하는 이라면 이 정도의 가학적인 고통은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시래기 국물 한 수저, 탕에 만 밥 한 수저, 밥 위에 시래기를 잔뜩 올려 또 한 수저. 별것 아니라 생각했던 시래기해장국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이야. 이 집의 시래기해장국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만 같다. 이 단순한 음식의 아름다움이여. 


사실 음식을 해 본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가장 간단한 음식이 가장 만들기 힘들다. 

요즘이야 다양한 조미료와 향신료 그리고 식재료가 넘쳐나는 시대라 어느 정도 수준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장(醬)이나 소금 등의 가장 기본양념만 사용해야 하는 음식들은 오히려 더 만들기 어렵다. 아주 미세한 량의 물조절의 차이와 양념의 차이, 그리고 조리 시간의 차이, 양념을 넣는 시기와 양의 차이 등이 음식의 맛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과 같다. 


초빼이는 가끔 단색화의 대가이신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관람할 때마다 그런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우환 님의 대표적인 작품인 '선으로부터'라는 시리즈를 보다 보면 최근의 작품일수록 작품에 사용된 선의 개수가 줄어든다. 물감으로 채운 공간보다 여백의 비중이 더 커져간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며, 작품에 투영하는 의미는 더욱 무게를 더하지만, 그림은 더욱더 단순해진다. 초기 작품들에서는 많은 선에 담았던 의미를 최근의 작품에서는 농축된 하나의 선에 담아낸다. 그리고 늘어난 여백에서마저 의미를 담고 있다. 


음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가장 단순한 재료를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는 그런 음식이야 말로 가장 완숙한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이 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곳 '전주집'의 시래기해장국에서 작은 화두 하나를 얻어간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가장 흔한 식재료로 가장 맛있는 국 하나를 만들어 냈다. 재료도 그리 많이 쓰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시간과 정성이 더 많은 무게를 부여한다. 그래서 이 집의 시래기 해장국이 맛있다. 오랜만에 새로운 해장국의 경지에 개안을 했다. 


한 가지 우려는 전주집이 있는 건물과 지역이 오래되어 재개발 이슈가 조금씩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어느 유명 노포처럼 다시 설 자리를 찾지 못할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이런 음식을 내는 집이, 게다가 지역민의 사랑을 받는 집이 설마 사라질까 싶어 기우가 아닐까 치부하기도 한다. 

대전에서 발견한 멋진 해장국 집이 또 하나 늘었다.


* 참고 1. 뜬금없는 계엄령에 밤을 지새운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야당에게 경고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오늘자 기사에 더 분노가 커졌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미쳐야 이런 사고와 발언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의 손에 총을 쥐어준 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오랜만에 분노에 휩싸여 잘하지 않던 쌍욕까지 입에 올린 하루입니다. 


 [메뉴추천]

1. 1~2인 방문 시 : 돌솥밥 시래기탕(또는 갈비탕) + 소주

2. 3인 이상 방문 시 : 돌솥밥 시래기탕(또는 갈비탕) + 시래기 송아지 갈비찜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장 있음. 

2. 월~일 06:30~21:30 / 라스트 오더 21:00 / 브레이크타임 15:00~16:30 

3. 참고

    - 기본 돌솥밥에 시래기탕, 갈비탕, 된장찌개 중 국물은 선택 가능. 초빼이가 방문한 시간(아침)에는 거의 

      모든 손님들이 시래기탕을 선택했음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유명돌구이, 마시기통차, 솔밭묵집, 온천돌구이, 원조촌돼지, 할머니묵집, 징기스칸 양념 

      통닭, 홍천식당, 예전 손칼국시, 한마음냉면 유성점, 구즉묵집, 숯골원냉면, 갑동숯골냉면, 진남포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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