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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육회비빔밥에는 돼지비계를 함께 낸다.

158. 전남 함평군 함평읍 목포식당

by 초빼이

바쁜 일정의 연속이었다. 예정되었던 두 번째 일본 취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평소 각별히 지내던 탁재형 PD님에게 연락이 왔다. 혹시 귀국하셨으면 다음날부터 떠나는 양조장 기행에 함께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목적지가 안동의 종갓집에서 양조장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기에 흔쾌히 따라나섰다. 게다가 650년 된 고택에서 1박을 머무르는 일정이 있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이곳저곳 꽤 많이 다녀본 초빼이였지만 안동의 650년 된 종갓집에서 운영하는 양조장의 체험과 고택에서의 숙박 경험은 아직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틀간 약 600km를 달렸다.


그 먼 길을 찾아가는 일정이 끝나자마자 다음 날 바로 출근을 했다. 점심 무렵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바로 손밑 동생인 큰 이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집으로 다시 돌아와 환복을 하고 길을 나섰다. 의사들의 부족으로 광주 병원에 입원할 수 없어 목포까지 찾아갔다고 했다. 편도 약 340km의 거리였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보이는 모니터엔 상주들의 이름으로 어머니와 손밑 동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평생을 혼자 사셨던 큰 이모님의 마지막 가는 길은 언니와 동생들이 함께 하는 길이었다. 몇 년 만에 보는 이모님들의 얼굴엔 세월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삶의 고달픔이 그대로 전해졌다. 딸 일곱에 아들 셋을 나으셨던 외할머님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등지셨다. 고달픈 삶을 혼자 살아온 큰 이모님은 이제 찾아오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미 먼저 세상을 떠나시거나 먼 길을 나설만한 분들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족장이 되어 버렸다.


열흘 간의 병간호로 힘들었다는 이모들의 한탄과 그간 어떻게 살았느냐는 질문과 답이 커피 믹스가 어울리는 종이컵(술을 채운)이 오가는 사이로 녹아들었다. 다음날부터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며 음식 주문도 모두 다음 날로 미뤘기에 특별한 음식도 없었다. 이모들에게 왜 그리 술을 먹이냐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종이컵이 오가는 테이블의 모서리를 넘지도 못했다. "큰 이모 혼자 병환으로 고생하시며 이제 그 짐들을 벗어던졌는데, 조금은 기뻐해드려도 되지 않겠어요?"라는 초빼이의 말에 이모들도 뜻을 모았다. 가장 막내인 이모는 "네가 오니 조금은 장례식장 분위기가 나는 것 같네"라며 초빼이의 잔에 술을 따라 주셨다. 고인에 대한 추억이 안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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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속을 붙잡고 눈을 뜨니 장례식장 한편에서 눈을 떴다. 바지런한 이모들은 오늘부터 찾아올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어제 과음을 하셨던 분들은 한편에 앉아 컵라면으로 지친 속을 달래고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후 세수만 하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이런저런 일정에 계속 머무르기가 어려웠던 탓이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운전을 계속하기 힘들어 함평 휴게소에서 차를 세웠다. 멍하니 운전석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호랑이 이모'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큰 이모의 그 표정과 구수한 말투가 조금씩 떠 올랐다. 무언가 내 몸을 짓누르는 것을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몸과 마음이 허해졌다. 초빼이가 어릴 적 광주인가 나주의 시장 어디에서 큰 이모가 육회비빔밥을 사주셨던 기억이 났다. 허한 마음을 채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20여 km를 거슬러 함평으로 차를 돌렸다.


지금은 나비축제와 황금박쥐로 유명한 함평은 원래 우시장으로 더 유명했던 곳이다. 함평지역에서 나는 소들을 '함평우'라 부르며 다른 고장의 소보다 더 높은 값을 매겼다. 함평우가 비싸게 팔리다 보니 소를 사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함평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한때는 "전라도의 솟값은 함평 우시장에서 결정한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값비싼 소를 사고팔다 보니 소를 사용한 음식도 유명해졌다. 소머리 국밥으로 유명한 삽교의 한일식당이 그러했듯, 이곳 함평의 식당도 다를 바 없었다.


예전엔 육회나 육회 비빔밥 같은 소의 생고기를 쓰는 요리를 먹기 위해선 반드시 우시장을 끼고 있어야 했다. 냉장이나 냉동을 통한 위생적인 보관을 할 수 없었던 시대에는 식재료를 바로 수급할 수 있었던 곳이 그 음식들을 맛있게 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함평 우시장은 지금도 화요일마다 열린다(지금은 함평군 학교면으로 옮겼다). 1903년도에 시작한 함평 5일장(2,7장)과 함께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이다.

그 시장을 가운데 두고 한편에는 화랑식당(1950년 개업)이, 반대편에는 목포식당(1986년 개업)이 마주 서서 전국에서 찾아온 손님들을 맞는다. 점점 타들어가는 듯한 허기짐을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 목포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목포식당의 나지막이 드리운 천정이 오래된 노포를 고풍스럽게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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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잡자마자 육회비빔밥 '특'을 주문했다. 보통 크기의 육회 비빔밥으로 옛 추억을 뒤돌아보기엔 뭔가 모자라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밥을 주문하면서 '돼지비계'도 같이 달라고 청했다. 함평의 육회비빔밥을 내는 곳은 거의 모두 '돼지비계'를 갖추고 있다. 원래 시장 주변은 돼지 국밥집들이 유명했다고 한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선 장사꾼들의 속을 달래는 데 국밥만 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돼지국밥과 돼지비계 비빔밥이 주력 메뉴였다고 한다. 새벽 우시장을 찾는 이들을 위해 준비했던 국밥은 우시장이 학교면으로 옮겨가며 비중이 줄고, 육회와 육회비빔밥으로 무게추가 옮겨가기 시작했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육회 비빔밥을 찾는 사람들은 예전에 먹던 '비계 비빔밥'의 추억을 놓지 못했다. 하얀 비계 덩어리가 주는 그 '서걱서걱'한 식감을 잊지 못한 것이다.


목포식당의 메뉴판에는 작은 글씨로 '비계 드실 분은 따로 말씀해 주세요!'라고 적혀있다. 아직은 비계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육회비빔밥이 '오봉'에 담겨 나왔다. 그런데 원했던 돼지비계가 없다. 쟁반을 두고 자리를 떠나려는 직원분에게 "저 돼지비계를 안 주셨는데요"라고 말하자 휙 하고 가더니 작은 접시에 한가득 담아다 준다. 잘 삶은 돼지비계의 자태가 참 곱다. 옆 자리의 할아버지 세 분이 나누는 대화가 내 밥상의 경계를 넘어왔다.

".... 아니 그 양반은 그 일이 났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당께. 지관도 안 부르고 묫자리도...."


옆 테이블의 세 분도 누군가를 떠나보신 듯했다. 정신을 놓고 있던 친구를 잘 어우르고 장례를 잘 치르도록 도왔다는 말이었던 듯하다. 그리곤 덧붙이는 말이 "비빔밥엔 비계를 넣어야 제 맛이 나제."이었다. 슬며시 고개를 들어 그분들의 밥상을 훔쳐봤다. 내 상의 조그마한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비계보다 몇 배는 많은 돼지비계가 작은 냉면그릇에 가득 담겨 그분들의 상에 올라 있었다. 그리곤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로고 한잔 쭉 들이키신다. "내 생에 잔을 꺾는 일은 없었어야!... 아 고추장도 너어, 그래야 더 맛나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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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도 마음이 허했나 보다.

비빔밥 위로 가득 올린 돼지비계와 다시 그 위로 한 숟갈 가득 올린 고추장을 자신의 마음처럼 마구 흩트리며 비벼대고 있었다. 어쩌면 다음 번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을까? 소주 한 잔씩 가득 들이켠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사뭇 비장하다. 그래도 소주잔을 들이켜는 모습을 보니 아직은 다들 정정하시다. 그분들의 테이블에선 죽음의 이야기가 다시 자식인지 손주인지 구분할 수 없는 친족의 잔치 이야기로 바뀌었다. 수화기 너머 저 먼 곳의 친구에게 "자네가 몸이 아파서 못 오는디, 애들 보낸다고 내가 섭할 것 있겠는가?"라는 말이 들려왔다.


초빼이도 밥 위에 비계를 잔뜩 올리고 그 위에 다시 고추장을 얹었다. 말 한마디 흘리지 않고 밥을 비볐다. 선홍색 육회가 고추장을 머금고 얼굴색을 조금 더 굳혔다. 돼지비계는 밥 알갱이 사이사이로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따뜻한 밥 알갱이 사이로 숨었던 돼지비계가 조금씩 그들의 몸을 풀어낸다. 비빔밥에 점점 윤기가 돌기 시작한다. 한번 삶아내는 과정에서 원래 품고 있던 기름기를 빼냈지만, 명색이 돼지비계인데 남아있는 기름기 하나 없을까? 밥을 비벼대는 수저에 조금씩 힘이 덜 들어가기 시작한다. 다 되었다.


몇십 년 전 큰 이모가 사 준신 비빔밥에 돼지비계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고 몇몇 분들이 모여 같이 식사 겸 술자리를 같이 했다는 것이 기억의 전부다. '사람들이 생살을 먹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그때 알았으니 육회비빔밥이 메뉴인 것은 확실하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져 초빼이 혼자 전국의 육회 비빔밥 집을 찾아 잘 먹으러 다닌다는 사실이 달라졌을 뿐이다. 심장과 목의 중간쯤 응어리 진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빔밥을 크게 떠서 꾸역꾸역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비빔밥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식도로 넘겼다. 그러면 그 덩어리가 없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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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목이 메면 함께 나온 선짓국을 들이켰고 그것도 부족하면 함께 나온 잘 익은 전라도 김치 한 장도 입에 넣었다. 밥 알갱이와 어우러진 육회의 이질적인 식감과 설겅설겅 감자볶음처럼 씹히는 돼지비계가 한 수저에서 느껴졌다. '비빔밥이 이리 슬픈 음식이던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이러니하게 어젯밤 술로 힘들었던 속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선지 네 덩이가 들어있던 질그릇은 그 선지를 담기엔 너무나 모자라 보였다. 나주 곰탕집의 국물을 퍼다 담은 듯 맑고 투명한 고기국물의 향이 좋았다. 진하지만 삿된 맛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고기국물에 소금만 조금 뿌린 듯했다. 잘게 썬 실파가 향을 돋우고 커다란 선지가 중심을 잡았다. 퍽퍽하지도 않고 향도 좋은 선지는 이만 살짝 갖다 대도 스스로 제 몸을 먹기 좋은 크기로 나눠버렸다. 고기 국물의 향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대접을 들고 한숨에 국물을 마셨다. 나도 술잔은 아니지만 좋은 국물 '대접은 꺾지 않는 사람이다.'


종로의 유명한 육회집의 냉동 육회 비빔밥도 진주의 오래된 식당의 꽃과 같은 육회 비빔밥도 그리고 익산의 토렴 해서 주는 육회 비빔밥도 모두 먹어봤지만 이곳 함평 목포식당의 돼지비계 육회 비빔밥도 그 존재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잘 만든 비빔밥 한 그릇에 조금은 우울한 마음을 털어낼 수 있을 듯하다. 큰 이모의 기억 중 가장 첫 기억이 아마도 그 시장식당에서의 기억이었으니, 어쩌면 육회비빔밥이 그분을 기리는 음식이 될지도 모르겠다. 당분간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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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1. 두 번째 일본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안동으로 1박 2일간 양조장 투어 일정을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바로 큰 이모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네요. 다시 목포로 1박 2일간 다녀왔습니다. 조금은 우울한 내용일 수도 있으나 어제의 마음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글로 담습니다. 여러분의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메뉴 추천]

1. 1인 방문 시 : 육회비빔밥 + 소주

2. 2인 이상 방문 시 : 육회비빔밥 + 육회(또는 생고기)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가게 앞 1~2대 정도 주차 가능. 시장 공영주차장이 넓은 편이니 그곳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2. 매일 10:30~20:00 / 명절 당일 및 명절 다음날 휴무

3. 참고

- 지금은 함평나비대축제 기간이다(25.04.25(금)~25.05.06(화))

함평나비축제는 전국적으로 손꼽는 지역 축제 중 하나이니 이 기간에 맞춰 찾는 것도 좋다.

- 돼지비계는 식사 주문 시 돼지비계를 따로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초빼이의 강력 추천

- 역사는 건너편의 화랑식당이 더 오래되었다. 손님의 숫자나 웨이팅은 두 집 모두 비슷. 화랑식당은 오랜

역사로 인해 관광객이나 외지인들이 더 많이 찾는 편.

- 식사량이 조금 많으신 분은 '특'을 주문하실 것. 밥을 더 달라고 하는 것도 가능한 듯하다.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화랑식당, 선미식당, 전주식당, 시장팥죽, 제일식당, 엄다식육식당 등


https://place.map.kakao.com/7875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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