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일본 오키나와 나하시 사카에마치 시장입구 우리즌
오키나와(沖縄県)는 일본의 가장 남쪽에 있는 16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곳이다.
주 도시인 나하시가 있는 본섬인 오키나와는 아열대 기후 지역에 속해 있고, 최남단의 이시가키 섬이 속한 아에야마 제도는 열대 기후 지역에 속할 정도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옛 류큐(琉球) 왕국 시절부터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중앙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중개무역과 해상무역을 통한 교류의 중심지로 역할을 했다.
오키나와는 서쪽과 서남쪽으로는 중국(대만 포함)과 동남아시아, 북으로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두고 있어 예부터 교류가 활발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에 사신단을 파견하고 조공을 바치며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기도 했다. 류쿠왕국이 우리나라와 첫 관계를 가진 시기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창왕의 시기인 1389년 8월 중산왕이었던 삿토(察度)가 표문과 남방의 물건을 진헌하고 고려가 답례로 영접사를 파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마흔 번이 넘는 사신을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임했으나 조선은 이에 단 두 번만의 사절을 보내는 소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 하우봉(2018), "조선 전기 유구,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교류", 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 p.203~206.)
조선왕조의 이러한 무관심에 비해 중국은 조선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 당시 아시아를 지배하던 명은 류쿠왕국에 책봉사를 보내고 왕의 책봉을 허가해 주기도 했었다. 특히 명나라와의 조공무역은 류쿠왕국의 주요한 수입이 되었는데 명에서 수입한 물품을 일본과 조선, 동남아 국가에 수출하면서 해상중개무역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해상무역은 류쿠왕국의 문화에도 다양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의 책봉단을 접대하기 위한 연회의 음식들이 류쿠왕국의 궁중요리가 되었고, 동남아시아의 쌀을 수입하며 얻은 지식으로 류쿠왕국의 대표적인 술인 아와모리(泡盛)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키나와는 섬 전체가 석회암 지대이기 때문에 쌀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석회암 토양은 물을 잘 담아두지 못하고 쉽게 빠져나가기 때문. 이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많은 쌀을 수입해 왔는데,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쌀 수입국이 옛 '시암 왕국(태국, Siam)'이었다. 태국의 쌀은 우리가 먹는 쌀인 자포니카 종(Japonica)이 아닌 장립종인 인디카(Indica) 종을 재배하던 국가였다. 아와모리는 쌀과 함께 태국의 오래된 증류 기술이 함께 전래되어 만들어진 술이다. 거기에 더해 오키나와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사탕수수에서 얻은 흑설탕과 검은 누룩이 아와모리의 향과 맛을 더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아와모리주는 류쿠왕국의 특산품이 되었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 진상하는 공물로도 쓰였는데 조선왕조실록에도 류쿠왕국에서 아와모리를 진상했던 기록이 있다.
아와모리는 류쿠왕국의 흥망과 같은 길을 걸었다. 메이지 정부 시대에 일본으로 완전히 병합된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중 미군과 일본의 가장 격렬했던 전장이었다. 오키나와 평화 기념당에는 당시 '희생자들의 명단'이 새겨진 벽이 있는데, 이 벽에만 24만 명 이상의 이름이 적혀 있을 정도. 이 중 오키나와 사람들은 12만 명이 넘는다. 오키나와 전투는 오키나와라는 지역을 완전한 백지상태로 뒤돌렸다. 모든 기반시설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미군이 진주하며 1945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의 땅이 되었다. 이 시기가 아와모리에는 가장 혹독한 시간이었다.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모든 양조장이 파괴되었고, 슈리성에 보관되었던 200~300년 된 '구스(古酒)'도 모두 사라졌다.
모든 양조장이 파괴되었고 아와모리를 만들 쌀조차 부족했기에 주민들은 연료용 알코올을 술대신 마시기도 했다. 아와모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검은 누룩(흑국균)도 사라져 아와모리를 만들 수도 없었다. 1949년 민간 주조장이 다시 만들어졌고 기적적으로 누룩도 복원하여 아와모리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나 미군이 먹고 버린 양주병 등에 술을 담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와모리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미군들이 마시는 맥주와 위스키에 길들여졌고, 아와모리는 '늙은이들의 술' 취급을 받으며 카운터에서 밀려나기까지 했다.
오키나와가 미군의 지배에서 벗어나 다시 일본의 영토로 편입되었던 1972년, 쓰치야 사네유키(土屋實幸)는 사람들에게서 잊혀 가던 오키나와의 전통주 아와모리를 되살리겠다는 결심을 한다. "오키나와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며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술 '아와모리'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1972년 8월 15일, 당시 오키나와 최대의 번화가였던 사카에마치 시장(栄町市場) 초입에 우리즌(うりずん)을 개업한다. '우리즌'은 오키나와 말로 '음력 2~3월의 초여름이나 환절기'를 뜻하는 말로 아열대 기후인 오키나와에서는 본격적인 계절의 시작을 뜻하는 말. 아와모리의 부활을 이곳에서 시작하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당시 오키나와에 남아있던 57개의 양조장에서 아와모리를 가져와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아와모리와 합이 맞는 오키나와의 전통요리도 함께 냈다. 그리고 1977년부터는 직접 아와모리를 빚어 손님에게 내기 시작했다. 우리즌의 아와모리는 국제거리(고쿠사이도리)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아와모리와 품격의 차이가 있다. 우리즌에서는 '구스(古酒, 고주)'를 반드시 마셔야 한다. 만든 지 3년 이하의 아와모리가 조금은 '쌩'하고 거친 맛을 가진 '다듬어지지 않은 술'이라면 우리즌의 '구스'는 한층 더 부드러운 맛과 향을 지닌 '품격 있는 술'이었다. 초빼이는 오히려 본토의 '소츄'보다 아와모리 구스에 더 깊은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아와모리를 빚는 과정에서 본토의 소츄와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소츄가 보통 2번의 발효를 거치는데 비해 아와모리는 '단일 발효법(단식 발효)'를 통해 모든 쌀을 한 번에 누룩과 함께 발효시킨다. 또한 백색 효모만 사용하는 소츄와 달리 흑국균(黒麹菌, 쿠로코지)을 사용하는데, 이는 고온 다습한 오키나와의 기후에서 곰팡이의 번식을 억제하면서 안정적인 발효를 돕는 효과가 있다. 거기에 더해 단일 증류기로 한 번만 증류하여 술의 풍미와 향이 살아있다는 것이 특징. 그렇게 만든 아와모리는 오랫동안 숙성을 시킬 수 있다. 몇 년씩 숙성이 불가능한 소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과 깊이가 이 숙성 기간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초빼이는 오키나와를 취재하는 동안 두 번이나 이 집을 찾았다. 우리즌에서 마신 구스의 매력에 완전히 빠졌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즌은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없는, 워크인이 불가능한 집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과감히 워크인을 시도했던 것. 게다가 혼자라는 애매함이 이 집에선 강점이 될 수 있었다. 가게가 오픈하기 30분 전인 오후 5시부터 가게 앞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영업을 준비하던 사장님께서 초빼이를 보고 "예약했냐?"라고 물어보기에 "못했다"라고 하니 예약 명단을 확인한 후 "카운터 좌석에 한 자리가 남았는데 1시간 30분만 있을 수 있다. 괜찮냐?"라고 하였다. 극악의 웨이팅을 자랑하는 '우리즌'에서 워크인에 성공했다는 자부심마저 생겼다. 이틀 뒤 다시 찾았던 날은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그날도 2~30분 정도 웨이팅은 했지만 혼자였기에 워크인이 가능했다. 혹시 2명 이상이 이 집을 찾을 생각이라면 반드시 예약을 하고 찾으시길 권한다.
1층은 테이블과 카운터 석으로 되어 있고, 2층은 다다미방의 좌식 테이블로 되어 있다고 한다.(2층은 올라가 보지 못했다)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공간을 오키나와 민요가 묘한 반향을 더하며 퍼져 나간다. 오래된 공간의 조금은 꿉꿉한 향도 들숨과 날숨 사이에 섞여 조심스레 스며들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초빼이와 동갑내기인 노포의 진한 향기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카운터 뒤와 벽으로 가득한 구스 항아리. 우리의 장독과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빛깔과 아우라가 그리 다르지 않다. 그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즌에서 빚은 구스들이다. 술을 주문하면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오키나와의 유리공예품 술잔과 카라카라(도쿠리)에 따라 준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색상인 '오키나와 블루'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술잔에 그려진 한 줄의 파란색 자취는 오키나와의 바다와 하늘과 숲을 담았다. 그 잔에 따라 마시는 '구스'엔 오키나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우리즌은 개업을 할 당시 오키나와의 유명 공예가에게 의뢰해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집의 음식을 내는 그릇과 술을 담는 잔은 모두 오키나와의 민속 공예품이다. 기품 있는 술만으로도 감지덕지한데, 그 술과 음식을 담는 그릇까지 오키나와를 담았다. 그래서 더욱 이 공간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아와모리를 세계적인 술로 만들겠다'던 우리즌의 창업자 '쓰치야 사네유키(土屋實幸)' 상의 다짐과 마음이 충분히 느껴졌다.
우리즌의 술에 집중하고 싶어 두 번의 방문 내내 가급적 부담이 없는 안주를 주문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정말 후회했다. '돼지고기는 울음소리만 빼고 모두 먹는다'라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돼지고기와 풍부한 해산물로 만든 음식이 메뉴판을 가득 채웠다. 이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오키나와의 향토음식을 조금 더 경험했으면 좋았텐데'라는 아쉬움에 한국 돌아와 '이불킥'을 남발했다. '그 후회가 초빼이에게 '다시 오키나와를 찾아야 한다'는 '합리적인' 핑곗거리를 제공해 줬다. 이럴 땐 혼자 취재를 다니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혼자 먹을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고, 다른 곳의 취재를 위해 음식과 술의 양을 조절해야 한다는 부담이 다양한 일품요리들을 맛보지 못하게 하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돼지 곱창 요리인 '나카미노 스이모노(中身の吸物)'나, 오키나와 특산 고구마인 '타이모'를 돼지고기와 어묵 등을 넣고 튀긴 '두루텐(ドゥル天)',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요리인 '스치키(スーチキ)', 돼지고기를 잘라 검은깨를 입혀 쪄낸 '미누다루(ミヌダル)', 오키나와에서 잡은 독가시치의 치어를 절여 만든 '스쿠가라스 도후(スクガラス豆腐)'는 다음번 오키나와 비행기 표를 사기 위한 구실로 남겨두었다.
오키나와 유리 글라스에 담긴 8년짜리 구스(八重泉, 팔중천, 아에야마 제도의 아와모리)는 사카에마치 시장 센베로(せんべろ)에서 마셨던 아와모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마치 유치원생의 그림과 기성 작가의 그림을 한자리에 놓고 비교하는 느낌이었다. 그 깊이와 완성도의 차이를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에 주문했던 18년짜리 구스(우리즌 특제 구스)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게 했다. 우리즌의 구스는 자신들이 만든 여러 술을 브랜딩 하여 숙성하는 구스라 일반 아와모리에 비해 더 풍요로운 맛을 낸다.
술 욕심에 꽤 비싼 가격이었지만 '카라카라(カラカラ)'로 주문했다. '카라카라(カラカラ)'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쿠리(とくり, 徳利)를 오키나와에서 부르는 말이다. 처음엔 그 작은 도쿠리 한 병에 2,500엔을 치러야 하는 게 꽤 마음을 졸이게 했다. 하지만 첫 번째 한 모금에 그런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좋은 술을 마시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값을 치러야 한다. 직원분이 '독한 술'이라며 얼음까지 챙겨주며 '언더락'으로 마시길 권한다.
아와모리에 세월이 얹어지며 구스의 맛은 부드러워지지만 그 디테일은 더욱 깊어진다. 술의 향도 단순히 풍부해지는 것이 아닌, 절제한 섬세함에 더 치중한다. 아니 섬세함보다는 '정밀함'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이 나이 들면서 늙어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강하고 생생함만 추구하는 젊은 시절의 술보다 깊이와 섬세함이 돋보이는 중년 이상의 술이 더 마음에 드는 것이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역시 사람과 술은 익어야 제 맛이다.'
두 번째 이 집을 찾았을 때는, 친절한 직원 분이 초빼이를 알아보고 더욱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젊은 남자 직원분은 계산을 마치고 매장을 나서는 나를 붙잡더니 "다시 찾아줘서 고맙다"며 작은 선물을 줬다. 아마도 자신의 매장을 찾은 외국인들만을 위한 작은 배려 같았는데, 우리즌에서 만든 '오키나와 된장'이었다. 별것 아닌 작은 마음에 다시 가게를 돌아보았다. 호텔로 가는 모노레일 안에서 계속 손에 쥔 '된장'을 바라보았다.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안주와 맥주를 사고 그 된장을 소스처럼 찍어 먹으며 '우리즌'의 마음을 되새겼다.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오키나와엔 우리즌(うりずん)에 오기 위해 다시 찾아야 한다.
[메뉴 추천]
1. 1인 방문 시 : 단품요리 + 구스(古酒)
2. 2인 이상 방문 시 : 우리즌 정식 + 단품요리 + 구스(古酒)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매장명 : 우리즌(うりずん)
2. 주소 : 388-5 Asato, Naha, Okinawa, 902-0067, Japan
3. 영업시간 : 매일 17:30~24:00
4. 주차장 : 주차장은 별도로 없음. 사카에마치 시장 공영주차장 이용.
5. 참고
- 예산 : 1인당 3,000~5,000엔
- 현금. 카드 모두 가능.(초빼이는 현대 VISA카드 사용)
- 연락처 : +81 98-885-2178
6. 이용 시 팁
- 예약 필수. 초빼이는 1인이었고 운이 좋아 워크인으로 입장했다. 예약하지 않고 찾았을 땐 입장을 보장
할 수 없다. 호텔 체크인 시 직원에게 부탁하는 것도 방법이다.
- 추천 메뉴 : 우리즌 정식, 단품은 두루텐(ドゥル天), 미누다루(ミヌダル), 스쿠가라스 도후(スクガラス
豆腐) 등. 음식 사진이 있는 메뉴판이 있으니 참고할 것.
https://maps.app.goo.gl/M72iLC6RAQRBZyqH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