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오키나와 나하시 잭스 스테이크하우스(ジャッキーステーキハウス)
20대 시절 심취했던 미국 소설가 중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이라는 작가가 있었다. 4편의 장편과 12편 정도의 단편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로 인간의 평범한 일상 속에 감춰진 내면의 의식을 깊이 탐구했던 소설가이다. 당시 미국사회를 지배했던 청교도주의(Puritanism, 엄숙주의)의 위선을 비판하고 개인의 행복을 더욱 중시하는 작품을 썼다. 우리에게 알려진 그의 대표작은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요즘은 '주홍글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글씨는 필체를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간통을 저질러 사생아를 낳은 죄에 대한 징벌로서 가슴에 단 글자가 바로 주홍색 글자 'A'이다. 'A'는 간통을 뜻하는 단어 'Adultery'의 앞글자이다. 엄격한 청교도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남편의 부재 시 저지른 간통죄와 사생아를 낳은 죄는 사형에 해당하였지만, 남편이 객사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감형이 된 것. 그래서 가슴엔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주홍글자 A'를 달고 이웃 사람들의 비난과 멸시를 감당해야 했다. 마치 옛 조선에서 죄인의 이마에 낙인을 찍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처음 방문한 일본의 오키나와에서 흰색 바탕에 쓰인 빨간색 'A'자를 발견했다. 당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주홍글자'의 'Scarlet A'였다. 오키나와의 오래된 식당에서 발견한 이 'A 사인'은 소설 '주홍글자'의 'Adultery A'와는 그 가진 의미와 뜻이 달랐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니 오키나와라는 지역과 이곳의 사람들만이 겪었던 또 다른 아픔을 상징하는 증표이기도 했다. 더불어 주홍글자의 'A'나 오키나와의 'A' 모두 미국인들이 붙여줬던 사인이었다.
오키나와의 'A 사인(A サイン)'은 단순한 인증 마크가 아닌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담은 가게들의 표시다. 오키나와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재편입되기 전까지인 1945년부터 1972년(1972년 5월 16일)까지 유지되어 왔던 인증 제도의 산물이기도 하다. 미국이 오키나와를 점령했던 시기 이 사인을 받은 가게는 '미군과 그 가족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미군 당국이 허가한 업소'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A사인은 'Approved(승인)'의 'A'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오키나와는 27년간 미군정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오키나와에서 통용되던 화폐는 일본의 화폐가 아닌 미국의 달라(Dollar). 전쟁 전부터 가혹한 통치에 시달렸던 오키나와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는 더욱 궁핍한 생활에 시달려야 했다. 기반 시설이 모두 파괴되어 물자와 당장 먹을 식량도 부족한 상태. 당시 가장 큰돈을 뿌릴 수 있었던 사람들은 당연히 오키나와를 지배했던 미국인과 미군이었다. 오키나와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미군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과 술집과 성매매 업소를 대상으로 'A 사인'이 발급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A 사인'의 기저에는 오키나와와 그 섬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이 담겨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피폐해진 오키나와의 상황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오키나와에 대한 비하가 그 기저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A 사인'을 받기 위해선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와 심사 기준을 통과해야 했다. 미군 보건 당국이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위생 검사'를 실시했고, 조리 시설이나 좌석 수, 그리고 화장실 등이 '시설 기준' 잣대가 되었다. 거기에 점령군인 미군을 위한 '보안과 안전' 요건도 준수해야 했으며, 심사를 통과한 업체들도 믿지 못해 '정기 점검'을 통해 주기적인 재검사와 갱신을 실시했다.
종업원들의 손톱 길이가 문제가 되기도 했고, 건물을 지을 땐 목조 대신 콘크리트를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심지어 성매매 업소의 여성들은 미군이 지정한 시설에서 정기적으로 성병 검사까지 해야만 했었다. 그에 반해 미국 브랜드로 미국인이 대표였던 A&W버거는 'A사인'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야말로 식민지 오키나와만을 대상으로 한 제도였다.*(남원상, 레트로 오키나와, 영신사, 2019.5.1, 일부 내용 발췌)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편입한 후 세상이 변했다. 옛 일본의 영토였지만 전쟁 이후 찾기 힘들었던(미국의 점령 시기에는 오키나와를 방문하기 위해선 일본인도 여권과 비자가 필요했다)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기심은 오키나와의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며 관광산업을 부상하게 했다. 본토(일본)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한국과 중국의 관광객이 그 뒤를 이었다. 치욕적인 인증이었던 'A 사인'은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지나간 시대의 추억으로 반전되었다. 요즘은 'A 사인'을 받았던 업체들이 그 인증을 자랑스럽게 걸어 놓는다. 마치 "우리는 그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있다"라는 말을 증빙하는 것처럼.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내려 바로 호텔로 가 짐을 맡겼다. 처음 방문한 오키나와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 무작정 걸었다. 오키나와에서의 첫 식사는 의미 있는 곳에서 하고 싶었다. 부러 욕심을 냈다. 이미 한국에서부터 어떤 식당을 가겠다고 점찍어 두었다. 국제거리 근처에 있던 호텔에서 전철(모노레일) 역 두 개 정도의 거리. 충분히 걸을만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작은 하천길을 따라 모노레일 아사히바시역(旭橋駅) 방향으로 걸었다. 나하시(那覇市)의 히가시마치(東町)와 니시(西) 지역이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곳에 잭스 스테이크 하우스(ジャッキーステーキハウス, Jack's Steak House)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잭스 스테이크 하우스가 있는 골목으로 접어들자마자 구수한 고기 굽는 냄새가 초빼이를 먼저 반겼다.
'이 예의 바른 일본 사람들. 피곤에 지친 객(客)의 마음이 행여나 바뀔까, 고기 향으로 손님을 먼저 마중 보내다니'. 평일 오후 시간이었지만 많은 일본인들과 관광객들이 가게 앞 주차장에 줄을 서서 웨이팅을 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이름과 방문객 숫자를 먼저 등록해야 했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가게 밖 주차장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대기자 명단을 적는 리스트엔 예상 대기시간까지 적혀 있었다. 일본인 특유의 세심한 친절함이다. 일본 본토에서 온 관광객과 중국인 관광객, 그리고 서양인 관광객들이 어슬렁거리는 사이에서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성수기의 관광시즌도 아니고 나른한 평일의 낮이었으니 충분히 이해 가능했다. 기다림은 오래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식사를 위해 방문한 사람이 많아 금세 가게로 입장할 수 있었다. 가게 안은 자욱한 연기가 사람들의 열망처럼 가득 차 있었고, 양파 굽는 냄새가 더욱더 그 열망에 불을 지르며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었다.
아열대 기후에 속하다 보니 낮 기온이 20도를 넘었다. 조금만 조급하게 움직여도 쉽게 더위를 느낄 수 있는 날씨. 자리에 앉자마자 내주는 따뜻한 물수건(시보리)과 차가운 물 한잔이 얼마나 고맙던지. 메뉴판을 갖다 준 직원이 돌아서기도 전에 '나마비루(なま ビール)'를 외쳤다. 오리온(Orion. 초코파이를 만들던 회사가 아니다.) 맥주의 고향에 왔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구에서 1300광년이나 떨어져 있다는 오리온성운의 그 판타지 같은 사진처럼 오리온 맥주의 맛은 특별했다. 내가 오키나와를 방문한 시기가 2월이었니 '어쩌면 이곳 밤하늘에선 오리온 성좌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메뉴판을 탐닉했다. 과연, 철저하게 오래된 미국식 스테이크 집이 맞다. 심지어 처음 개업했을 당시의 이름은 '뉴욕 레스토랑'이었을 정도로 미국적인 분위기를 내는 것에 충실했다. 가장 먼저 나오는 메뉴가 텐더로인 스테이크, 다음이 뉴욕 스테이크, 주사위(サイコロ, 賽子·骰子) 스테이크 네 번째가 햄버거 스테이크(우리식으로는 함박 스테이크)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가장 윗단에 자리한 메뉴가 그 집의 대표적인 메뉴일 가능성이 많으니 스테이크 집이 맞다. 미군과 그들의 가족들을 상대해야 했으니 충분히 가능한 메뉴이다. 아랫단에 배치한 스키야키, 야키소바, 라이스 카레 등등의 메뉴는 아마도 72년도 이후에야 메뉴판에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인 관광객들을 위한 메뉴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첫 방문이자 오키나와에서의 첫 식사라는 의미가 있었기에 가장 위의 '텐더로인(안심)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대신 새벽부터 공항 라운지에서 배를 채웠고, 기내식도 말끔히 챙겨 먹었기에 스몰 사이즈로 줄였다. 빵 대신 밥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서도 일본의 식당이라는 특성을 유추할 수 있었다. 수프와 양배추 샐러드(샐러드)가 먼저 나왔다. 조금은 멀건 느낌의 수프 표면 바로 아래로 보이는 당근과 고기 조각에 한국의 옛 경양식 집 수프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오뚜기 수프보다는 덜 진득거렸지만, 이 집의 포테이토 수프는 의외로 농후(濃厚)한 육향을 품고 있다. 초빼이의 입에 맞을 정도로 간도 되어 있었다. 백후추를 뿌려 향을 더하니 훨씬 더 좋았다. 수프와 샐러드에 맥주 한 잔을 비우고 또 한 잔을 청했다. 아직 오리온성좌까지 다다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첫 오키나와 방문에서 오는 기대감과 흥분감이 오리온 맥주의 시원하고 가벼운 맛에 그리 잘 어울릴 수 없었다. 허기진 상태도 아니었는데 금세 그릇을 비웠다.
곧이어 철판 위에서 하얀 연기와 지글거리는 소리를 앞세우며 스테이크가 나왔다. 초빼이가 좋아하는 '미디엄 웰던'. 아직은 촌티를 벗지 못했기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런 고기는 먹기가 힘들다. 물론 스테이크 같은 음식만만 그렇다. 육회나 육사시미는 없어서 못 먹을 만큼 좋아한다. 우아하게, 양손에 무기(?)를 나눠 들고 텐더로인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매장 안은 스테이크 뿜어내는 연기와 향으로 가득 차 있다. 초빼이의 기대도 매장을 가득 채운 그 향과 연기만큼 부풀어 올랐다. 입으로 넣자마자 육향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맛은 시간차를 두고 그 뒤를 이었다. '이것이 미군들이 그렇게 좋아했던 스테이크 맛이구나' 싶었다.
초빼이가 대학 다니던 시절 마산에 내려가면 가끔 진해 해군 사령부에 있던 미군 캠프에 놀러 갔었다. 그때 비슷한 나이 대의 미군 하사관 두 명을 친구로 사귀었는데, 주말이면 그들의 숙소나 캠프 내에서 열리는 BBQ 파티에 초대받기도 했다. 근무 시간이 끝나고 영관급 장교들과 하사관들이 같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같은 음식을 나눠먹는 모습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그 충격이 그들이 건네주던 플라스틱 스테이크 접시에 고스란히 담겨 기억에 남아 있었다. 몇십 년이 흘러 그 맛에 거의 근접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법.
테이블 한편에 친절하게 메모해 둔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는 법'을 따랐다. 처음엔 스테이크 그대로 먹었다. 진한 육향과 부드러운 텐더로인의 육질이 입안에서 요동을 쳤다. 고기 본연의 맛을 본 후 소금과 후추를 첨가했다. 후추는 육향을 더욱 농후하게 피워 올리는 밑불이 되었고, 소금은 고기의 감칠맛을 농축시켰다. 가장 제한된 가미(加味)로 가장 완벽한 맛을 이끌어 냈다. 그 후 'No.1 스테이크 소스'를 조금 덜어내 맛을 보았지만 단맛이 조금 강했다. 역시 내 입맛에는 소금과 후추만으로 맛을 냈을 때가 가장 만족스러웠다. 옆자리나 건너편의 일본인들은 스테이크를 먹을 때도 간장을 뿌려 먹었다. 어지간히 간장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오키나와에서의 첫 식사부터 마음에 들었다. 과연 오키나와에서 가장 오래된 스테이크 하우스다웠다. 요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국제 거리의 스테이크 전문점들이 집들이 72년도 이후에 생긴 곳이 많은 것에 비하면 업력만으로도 독보적이었다. 게다가 가장 오래된 스테이크 하우스로서 '원조의 품격'도 무겁게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 체크인 후 짐을 정리하고 다른 노포를 취재하러 가야 했다. 꽤 오랜 취재 준비와 비행으로 지친 육신에 '안심 스테이크'로 힘을 불어넣었다. 오랫동안 'A 사인'을 유지해 온 노포의 힘과 존재감은 과연 무시할 수 없었다. 한 때는 오키나와의 아픔을 상징했던 'A 사인'이 이제는 '확신과 믿음'의 상징이 되었다. 1953년 개업한 잭스 스테이크 하우스와 비슷한 시기(3년 뒤)에 개업한 'A 사인' 노포를 며칠 후 찾아갈 일정이었는데, 이 집으로 인해 이미 'A 사인'에 대한 믿음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오키나와 취재의 첫 시작부터 좋은 징조이다.
오키나와의 향토음식은 시대적 구분을 통해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오키나와가 류쿠왕국이던 시절부터 전승되어 오던 '오키나와 소바나 오키나와의 산물을 활용한' 요리들과 오키나와가 미국의 지배를 당하던 시절 만들어지거나 들어와 정착한 음식들이다. 당연히 미군이 지배 시기의 음식들은 미국적 성향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심지어 미군들에게 각광을 받았던 '타코나 타코 라이스'도 본래의 기원인 멕시코의 음식이 아니라 멕시코 음식이 미국으로 건너간 후 '미국화'된 음식이 수입되었다. 그러나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 음식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다시 빚어냈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현명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키나와에서도 '귤이 위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아직도 적용되는 듯하다.
"뭐 아무렴 어떠랴? 귤이든 탱자든 맛만 있으면 되지!"
[메뉴 추천]
1. 1인 이상 방문 시 : 스테이크(텐더로인, 뉴욕, 햄버거 스테이크 등) + 맥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매장명 : 잭스스테이크 하우스(쟈키 스테이크 하우스, ジャッキーステーキハウス, Jack’s Steak House)
2. 주소 : 1-7-3 Nishi, Naha City, Okinawa, Japan
3. 영업시간 : 목~화 11:00~22:30 / 매주 수요일, 새해 첫날, 음력 7월 보름(お盆) 휴무
/ 주문 마감은 22시이나, 손님들의 웨이팅에 따라 변동될 수 있음)
4. 주차장 : 매장 앞 별도의 주차장 있음(10~11대 정도 가능)
5. 참고
- 예산 : 1인당 2,000~3,000엔
- 현금. 카드 가능.(단 카드는 JCB 카드만 가능)
- 연락처 : +81 98-868-2408
- 예약 불가. 워크인만 가능
6. 이용 시 팁
- 워크인도 가능하나 웨이팅 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식사 시간을 피하는 것이 좋다.
다만 낮 시간이라면 웨이팅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 추천 메뉴 : 텐더로인 스테이크, 뉴욕 스테이크, 주사위 스테이크, 햄버거 스테이크 등.
메뉴판에 꽤 자세한 설명과 사진이 있다. 한국어 메뉴판도 있으니 일본어에 익숙지 않으면 한국어 메뉴판을
요청할 것.
https://maps.app.goo.gl/gHZVdStH7zrnGjsD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