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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un 01. 2023

초빼이의 노포 일기 [마산 중성동 마산집]

대기업 회장님의 맛집 리스트에 오른 9천원짜리 양푼냄비 육회 비빔밥집

경남 마산에서는 공식적으로 통용되지는 않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런 지명이 있다. 바로 '구마산과 신마산'이라는 지명. 공식적으로 사용되거나 행정적인 지명이 아니기에 어떤 지도에도 나타나지는 않지만, 마산 사람들에게 '구마산, 신마산'이라는 말을 하면 어디쯤인지 대충 짐작들은 하는 묘한 지명이다. 마치 마음속에만 각인되어 있는 지명이랄까?


구마산과 신마산은 일반적으로 기차역을 기준으로 나누는데 행정구역상으로만 따지자면 구마산은 70년대 가야백화점과 마주하고 있던 구 마산상고와 3.15 의거탑 그리고 육호광장(구마산역 위치)을 기점으로 하는 지역을 의미하고 창동, 중성동, 오동동 일대가 이에 포함된다. 그에 반해 신마산은 문화동, 두월동, 반월동, 완월동 및 경남대학교 일원까지를 가리키던 지역이었다.


굳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게다가 지금은 사라진 마산이라는 도시의 비공식적인 지명을 왜 끄집어내는지 궁금하겠지만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집의 위치가 '구마산', 50여 년 전 없어진 구마산역의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는 집이기 때문. 마산의 기차역은 신마산역, 구마산역, 북마산역으로 세 곳이 있었는데 77년경 통폐합되면서 현재의 '마산역'으로 통합되었다. 이러한 큰 변화는 주변 지역의 성쇠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 지역 또한 그 현상에 예외일 수는 없었다.  


마산집 - 양푼냄비 육회 비빔밥


시간의 흐름을 피하지 못한 낮고 오래된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중성동 끄트머리, 옛 구마산 역이 있던 육호 광장을 몇 걸음 앞에 두고 있는 이 집은 사실 초빼이도 잘 몰랐던 곳. '이런 곳에 식당이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묘한 골목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마산집'이라는 상호마저 너무나 흔하디 흔해 전국 웬만한 동네에는 다 하나씩 있을 만한 상호라 특별히 변별력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인천 숭의동의 연탄구이집인 '마산집'이 더 유명하지 않나 싶을 정도.


오랜만에 마산에 내려갔다가 전날 함께 술을 마신 국민학교 동창 친구와 해장을 위해 이 집을 찾았다. 

바로 옆 동네인 오동동에서 굉장히 유명한 업장을 운영했었고 아직까지 마산에서 토박이로 살고 있는 그 친구조차 모를 정도로 숨겨진 맛집이라고 할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게 된 이 집은 평범한 가정의 1층을 개조하여 만들었는데 내부는 바깥보다 더한 시간의 흔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좌식이었던 내부를 입식으로 교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느낌. 


마산집 - 매장 내,외부

처음엔 해장을 위해 국밥을 주문할까 하다 마음을 바꿔 육회 비빔밥을 주문. 

아무래도 자주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보니 이 집의 시그니쳐 메뉴를 먹어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앞섰다. 60여 년을 육회 비빔밥을 내며 알려진 곳이니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싶었던. 

내부의 분위기와 조금 동떨어진 느낌의 테이블에 찬들이 먼저 올려진다. 파김치, 깍두기, 동치미, 파래무침 등 여느 식당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찬들과 함께 올려진 멸치볶음, 콩자반, 아가미 젓 그리고 매실 장아찌에 눈이 간다. 


멸치볶음도 사실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찬이지만 신선하고 비린내 없는 좋은 재료를 써서 만들어 굉장히 맛이 좋았다. 게다가 심하게 짜거나 달지도 않아 딱 적절한 맛. '어 사장님 손 맛이 예사롭지 않네'라는 감이 오면서 육회 비빔밥이 나오기 전에 모든 찬들을 다 집어 먹어 본다. 


굉장히 인상 깊었던 찬은 메주콩으로 만든 콩조림. 

사실 초빼이는 콩으로 만든 음식은 굉장히 좋아하지만 콩조림과 콩국수만은 의외로 꺼리는 편인데 아마도 콩의 식감을 그리 내켜하지 않아서 인 것 같다(사실 왜 그런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집의 콩조림은 일단 너무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인가부터 흔해져 버린 검정콩이 아닌 아주 어릴 적 먹던 메주콩으로 만든 콩조림이라 그랬을까? 한 수저 퍼서 입안에 넣으면 입 안 가득 쿰쿰한 메주 향이 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메주콩 조림에서 추측은 확신으로 돌아섰다. 


다음은 매실 장아찌. 몇 번을 집어먹으니 이미 접시가 바닥을 보여 좀 더 달라고 요청했더니 사장님의 매실 자랑이 함께 테이블에 올랐다. '우리 올케네가 하동에서 매실 농사를 하는데 매번 보내주는 매실로 만든 장아찌'라 하신다. 절대로 자극적이지 않은, 그러나 새콤달콤한 맛의 매실 장아찌에 전날 과음으로 부글거리던 속마저 진정되는 듯한 느낌. 거기에 경상도식 김치의 진한 젓갈향에 마음을 뺏기고 '누구나 만들지만 아무나 맛있게 만들 수 없다'는 그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파래무침'에 이르러서는 이내 항복선언까지. 


마산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았던 초빼이에게 경상도 음식은 경험상 아주 맵거나 아주 짠, 극단을 오가는 참 중간이 없는 음식이었는데, 이 집의 찬들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60여 년을 이 외진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장수해 온 이유가 있었던 것. 이런 찬을 내는 집이라면 메인 음식도 절대 나쁘지 않을 터. 기대감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솟아오른다.  



이내 육회 비빔밥이 나왔다. 

굉장히 생소한 스타일의 육회 비빔밥. 우리가 가락국수 집이나 김밥천국과 같은 곳에서 라면을 담아내는 양은 냄비에 육회 비빔밥을 담아낸다. 그리고 국밥으로 파는 소고기 국밥의 국물에 커다란 선지 한 덩이가 함께 오른다. 육회로 나오는 소고기는 살짝 얼린 상태로 썰어낸 소고기. 


육회 비빔밥과 찬, 선지가 들어간 소고기 국밥용 국물


하얀 밥 위에 2~3종의 슴슴한 나물이 들어있고, 그 위로 가늘게 잘 썬 계란 지단을 올렸다. 그 위엔 육회가 한 덩이. 소고기 국물을 한 숟갈 떠 넣고 이래저래 밥을 비빈다. 김가루를 올리고 조금 더 굴리면 육회 비빔밥은 완성. 육회 비빔밥 한 숟갈을 떠 입에 넣으면 굉장히 신선한 나물향이 먼저 입안에 퍼진다. 육회 비빔밥의 맛을 해치지 않게 간도 슴슴하게 하여 향과 식감만을 살릴 수 있도록 딱 적절한 수준으로 맛을 낸 나물이 마음에 쏙 들어온다. 


거기에 살짝 냉기를 품어 서걱서걱한 식감까지 나는 소고기 육회의 식감과 맛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합이 좋다. 노란색 계란 지단의 푹신함도 한 손 거들어 식감과 맛에서 흠잡을 수 없을 수준. 웬만한 곳의 육회 비빔밥들은 과하게 첨가한 참기름이나 고추장으로 인해 육회 비빔밥 본연의 맛을 찾기가 힘든데 이 집의 그것은 재료들의 조화가 굉장히 잘 이뤄져 있다. 마치 샐러드 보울(Salad Bowl)과 같이 각각의 재료들이 자신의 특성과 맛을 잃지 않고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통합된 또 다른 맛을 내는 것과 같은 느낌. 


쉰을 지난 나이에, 시골 노포 식당의 음식을 앞에 두고서야 20대 시절 대학원 시험준비를 위해 공부했던 미국문화사 이론인 '샐러드 보울(Salad Bowl)' 이론의 참 뜻을 깨닫는 우매함을 가졌으니 대학원 시험에 떨어진 것이 이상하지도 않다는 때 늦은 자괴감도 든다. 운이 좋아 붙었어도 여러 사람 고생시켰을 거란 생각도.  


선지가 들어간 소고기 국은 굉장히 칼칼하면서도 깊은 맛이 매력적이다. 소고기 국은 약간은 경상도 스타일. 금세 한 그릇을 비우고 다시 리필. 두 그릇째 들이키니 해장이 제대로 되는 듯하다. 사실 이 집은 수육도 굉장히 유명한 집인데 전날의 과음으로 인한 깊은 내상과 상경을 위한 운전 때문에 주문하지 못했던 것이 굉장히 아쉽다. 기본적으로 별도로 한우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육우를 쓰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 부분은 물어보지 못했는데 다음 기회로 패스. 단 모든 식재료는 국내산을 사용한다.



건너편 테이블 어르신들은 이미 낮부터 수육에 낮술을 시작하셨는데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수육과는 조금 차이가 있더라. 소고기 살코기가 이쁘게 삶아진 소고기와 양, 그리고 선지 덩어리가 듬성듬성 올려진 접시를 아래에 작은 초를 넣어 온기를 유지시키는 방식의 수육. 정말 먹고 싶었지만 다음날의 일정 때문에 하루 더 머무르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함께 한 친구도 굉장히 술을 좋아하는 친구라, 다음번 마산에서 만날 때 꼭 이 집에 와서 술 한잔하자는 다짐을 하고 나오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초빼이와 같은 '자발적 돼지'에겐 양이 조금 적다는 것? 

다음엔 꼭 수육을 놓고 소주 한잔하고 싶은 곳. 맛보지 못한 수육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고 나서는 길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 더욱 즐거웠다. 다음번 마산에 내려가면 다시 찾아갈 기회가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메뉴추천]

1. 1인 ~2인 방문 시 : 육회비빔밥 또는 국밥 + 소주.

2. 3인 이상 방문 시 : 육회비빔밥 + 수육 또는 육회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매장 근처에 2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 근처의 민영 주차장을 이용

    하는 것이 편함

2. 11시경부터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유 있는 식사를 원한다면 식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도 

    나쁘지 않을 듯.  

3. 한참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맛집 리스트에 이 집이 올랐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은 듯한 느낌. 

4. 네이버 검색에는 영업시간과 요일이 나와 있지 않음.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가게를 운영하여 그런 

   것으로 추측한다. 초빼이는 11시경 찾았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미리 전화해 보고 방문하는 것도 방법. 

5. 오래된 가게이다 보니 어르신 손님들이 많은 편. 

6. 여행 및 관광 정보 

    - 구마산의 중심인 창동 오동동과 가까워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응답하라 1994'에 언급되었던 창동의 

      코아양과나 고려당이 오래된 빵집이 인근에 있고, 오동동의 아구찜 거리, 통술 거리도 인근에 있어 

      충분히 여흥을 즐길 수 있다. 

    - 마산 어시장과 가까워 어시장에서 건어물이나 김 등의 좋은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마산 어시장 복국

      골목도 도보로 이동가능한 거리이다.  

    - 마산 창동 예술촌에는 이것저것 볼거리들도 있다. 구도심의 오래된 지역이라 노포들이 꽤 많아 마산 

      노포 탐방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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