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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un 22. 2023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 중구 필동 필동분식]

어른들의 어른들만을 위한 분식집

서울시 중구 필동은 붓골이라 불리던 지역으로 이 명칭이 한자어로 바뀌면서 필동이 되었다. 

사실 필동이라는 지명보다는 '충무로'라는 지명으로 더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지금은 전설처럼 회자되는 충무로역 '대한극장'을 중심으로 중국대사관이 있던 진고개 등을 포함하는 꽤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지명. 하지만 최근엔 '필동'이라는 지명이 더욱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의 필동은 인근 을지로처럼 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을지로 지역을 휩쓸던 개발의 광풍이 이젠 옆동네 충무로 인근까지 확산된 것. 그래서 필동 인근의 노포들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번에 방문한 집은 서울의 주당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 '필동분식'이다.

사실 가게의 업력은 그리 오래지 않은 집이지만(사장님도 정확한 개업 연도를 기억 못 하시던. 92년 경 개업하신 것으로 사장님께 들었다) 이 작은 가게가 가진 힘은 어느 다른 노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4호선 충무로역 5번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거대한 남산 스퀘어 빌딩 골목으로 접어든다. 골목을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면 '동심'이라는 가게의 주차장이 있는 작은 사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 모퉁이 한편에 필동분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분식집이라 하면 떡볶이에 오뎅, 그리고 순대와 튀김류를 파는 그런 집을 떠 올리겠지만 이 집은 그런 보통의 분식집과는 궤를 달리하는 [어른들만을 위한 분식집]이다. 사실 내놓는 음식을 보면 예전 8~90년대의 포장마차에서 내던 안주와 거의 유사한 일종의 실내 포차와 같은 집. 


개업 후 한 번도 간판을 바꾸지 않은 것 같은 외관에서 이 집 사장님의 배포를 볼 수 있다. 

'간판이 뭐 중요하겠어? 음식 맛이 중요하지!'라고 일갈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모퉁이 가게 양편에 붙어 있는 날고 오래된 간판을 볼 때마다 시간이 층층이 내려앉은 느낌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조금씩 녹물이 스며 나오는 알루미늄 간판의 프레임 안에 오랜 햇빛과 바람에 갈라져 일어나는 실사 간판의 글씨에서도 정감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예전엔 이 간판에서 흘러나오는 형광등 불빛이 매혹당해 밤마다 이 집을 찾는 이들로 넘치던 시절도 있었으리라. 마치 사이렌의 목소리에 홀려 따라가던 율리시즈의 선원들처럼. 지금처럼 거대한 빌딩이 사면을 둘러싸고 있던 시절이 아닌, 충무로 인쇄소 삼발이 오토바이들이 골목골목을 누비며 짐칸 가득 인쇄된 종이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다니며 완성도를 높이던 그 시절엔 그랬을 거다.  

 

필동분식 간판

오랜만에 필동분식을 찾았던 시간은 오후 4시경. 

포털 검색에는 여전히 오후 6시부터 영업한다고 안내되어 있지만 코로나 시기를 거치고 난 후부터 오후 4시경부터 영업을 한다고 한다. 내가 찾았던 시간에도 이미 한 팀이 거나하게 낮술을 즐기고 있었으니 손님들이 조금 일찍 찾으면 영업 시작 시간도 조금씩은 조절하시는 듯하다. 


필동분식은 '닭꼬치'라는 단어로 치환될 수 있을 만큼 유명한 닭꼬치 구이 집이다. 

이 집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유가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음식의 볼륨감이 두텁지 않다 보니 일반적으로 다른 곳에서 1차를 한 후 찾는 [2차 전용 술집]으로서 '간단하게 한잔'이 가능한 집이다. 나도 필동면옥에서 냉면과 만두에 1차를 한 후 시원한 맥주 한 잔 가볍게 할 요량으로 이 집을 찾았다. 


두 번째는 입구의 작은 연탄화덕이다. 어릴 적 달고나(경상도 사투리로는 '오리떼기')를 팔던 할아버지들이 들고 다니던 작은 연탄 화덕인데 이 화덕에서 입히는 불향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옛날 포차에서도 꽤 자주 볼 수 있었던 화덕이라 정감이 간다. 


세 번째는 닭의 허벅지살(다리살)을 기본으로 한 닭꼬치의 맛.

닭다리 특유의 식감에 연한 양념이 발라져 있는데, 이 닭꼬치를 소금에 찍으면 숨어있던 단맛을 20만 배 정도 증폭시켜 준다. 닭꼬치에서 이런 자연스러운 단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야말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때 이른 더위에 앞뒷문을 다 열어 놓은 매장은 꽤 선선한 바람이 훑고 지나가 초여름의 열기를 식히기에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무뚝뚝한 사장님과 눈인사를 나눈 후 이 집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닭꼬치와 맥주를 주문했다. 간단히 기본 찬(안주)을 내주신 후 사장님이 밖으로 나가신다. 뭔 일인가 싶어 보니 입구의 작은 연탄 화덕에 닭꼬치를 언저 굽기 시작한 것. 양념되지 않은 닭의 허벅지살이 촘촘히 끼워진 꼬치가 연탄불이 이글거리는 석쇠 위에서 놀려진다. 


필동분식 - 오뎅탕, 연탄화덕

초빼이들에겐 이 집의 기본 안주인 오뎅탕도 꽤 인기 있는 안주다. 

밀가루 함량이 높은, 싸구려 오뎅에 적절히 MSG를 넣어 감칠맛을 낸 오뎅탕은 전작에서 무리했던 사람들의 속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는 그런 안주. 이 집의 오뎅탕은 마치 요즘 젊은 세대들이 술자리 전에 꼭 사서 마신다는 숙취해소제 역할을 한다고 할까?


원래 진정한 술꾼들은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고급진 '어묵탕'을 원하지 않는 법. MSG 가득한 다시다 국물을 가득 머금은 싸구려 오뎅과 채 썬 파 몇 조각이 둥둥 떠다니는 그런 오뎅탕을 원할 뿐이다. 언젠가부터 포장마차의 기본 안주로 무한 리필이 가능하던 홍합탕 대신 오뎅탕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그 시절의 홍합탕도 참 그리운 아이템이긴 하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와 대학로를 가득 채웠던 길거리 포장마차의 추억도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필동분식 - 닭꼬치 구이

연탄불에 다 구운 닭꼬치는 꼬치에서 일일이 빼내어 접시에 담아낸다. 거뭇거뭇 불에 그을린 자국마저 먹음직스럽다. 먼저 닭꼬치 한 조각을 들어 입에 넣으면 은은하게 올라오는 단맛에 새삼 안심. 

아직 이 집의 맛은 변치 않았구나,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절로 텐션이 올라간다. 다시 집어든 한 조각은 소금에 찍어 입에 넣는다. 조금 전 느꼈던 은은한 단맛이 20만 배는 증폭된 느낌. 

'그래 이게 진짜 닭꼬치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 집의 닭꼬치와 서울역 호수집의 닭꼬치를 비교하는 사람도 많은데, 초빼이의 입장에서는 두 집의 닭꼬치는 장르가 다른 작품. 필동분식의 닭꼬치가 정극에 가까운 연극 한 편을 보는 것과 같다면 호수집의 그것은 드라마틱한 요소는 가지고 있지만 더 화려하고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이 강한 뮤지컬 같다는 느낌. 

이 두 집의 차이는 개인의 호불호의 차이일 뿐, 어느 집이 더 잘한다 못한다 하는 말로 편 가르기를 할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게다가 초빼이는 두 집 다 사랑하며 아끼고, 이 두 집 모두 서울에 있는 '한국식 닭꼬치 집'을 대표하는 집이라 추천하기 때문.


추가로 시킨 안주는 '은행'구이. 

사실 은행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함께 이곳을 찾은 마눌님께서 워낙 은행을 사랑하시는 분이라 배려 차원에서 주문. 은행구이도 그 슴슴하고 묘한 식감이 전혀 낯설지는 않다. 껍질째 은행을 볶는 용기에 담아 한참을 흔들어 주며 굽는다. 


필동분식 - 은행구이


그러고 보니 은행이라는 열매는 '중년의 남자들'처럼 참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기도 하다. 

냄새나는 은행 열매를 일일이 주워 그 속의 은행을 분리하고, 세척하고, 말리고 난 후에도 더 손을 보태야 한다. 막상 먹기 전에도 팬에 올려 구우면서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이게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다. 이 껍질도 잘 벗겨지지 않아 꽤 오랜 시간 팬을 놀리며 품을 팔아야 하니.  


그렇게 껍질을 떨구며 구워낸 은행은 접시에 담아 그 위로 소금을 살짝 쳐서 낸다. 

'아무 맛없는' 은행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아직도 이해하진 못하지만, 이 집의 소금 뿌린 은행에는 젓가락이 절로 간다. 배는 부르지 않지만 입안에 남은 맥주의 여운을 씻어내는 안주의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 은행의 권장 하루 섭취량이라는 10개만 먹고 나니 이미 마눌님이 은행접시를 자기 앞으로 슬며시 당겨 놓는다. 



필동분식은 석양이 어스름하게 지는 시간에 그 본래의 활력을 찾는 곳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환한 대낮에 찾아도 그 나름의 정취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저녁이면 테이블 두세 개를 밖으로 내놓아 야장을 즐길 수 있었던 곳이었는데 요즘은 주변의 신고로 인해 야장 영업을 못한다는 것. 닭꼬치 한 점에 충무로의 밤하늘을 즐길 수 있는 정취는 사그라들었다. 


그것이 좀 아쉽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닭꼬치 한 접시 + 소주

1. 2인 방문 시 : 닭꼬치 한 접시 + 은행 + 소주.

2. 3인 이상 방문 시 : 닭꼬치 한 접시 + 은행 + 닭똥집 또는 메추리구이(추천)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주차는 절대 불가. 곳곳에 주차단속 카메라가 있다. 인근 민영 주차장을 이용해야 함

2. 포털에서는 6시부터 영업 시작이라 안내되어 있으나 최근엔 4시경부터 영업 시작. 

    단, 이 집의 영업도 사장님의 의지에 크게 좌우되는 편이라 미리 확인하고 찾아야 한다.

3.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인 6시경에는 웨이팅해야 한다.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위에서 언급했듯이 필동면옥, 필동해물 등에서 1차를 한 후 찾는 것도 좋다.

    - 감자탕의 지존 동원집과 백숙백반으로 유명한 사랑방칼국수가 인근에 있어 이곳도 추천한다. 

    - 조용한 산책을 원한다면 대한극장을 끼고 CJ인재원 쪽으로 쭉 올라가는 길을 추천. 남산 자락의 일부를 

      조용히 걸을 수 있다. 

    - 범위를 조금 넓히면 을지로나 청계천과 연계도 가능하다. 최근 세운상가 인근의 골목길이 야장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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