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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ul 13. 2023

초빼이의 노포 일기 [경남 마산 오동동 광포복집]

죽음과도 맞바꿀 만한 한 끼 식사의 치명적인 유혹, 복국

[청산가리의 10배. 한 마리에서 나오는 독으로 성인 33명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독성. 매년 20~30여 건의 중독 사건 발생.]


복어의 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이미 이렇게 복어독의 위험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처럼 위험한 생선을 굳이 찾아다니며 먹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의 범주는 이미 넘어섰고, 모험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그건 [가질 수 없는 것을 더욱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아이러니한 욕망]때문이 아닐까 하고 미리 결론 내리고 싶다. 


전 세계적으로 복어를 식용으로 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곳이 전부다. 

얼마 전까지 중국에서도 복어를 식재료로 다뤘었지만 중국 정부에서 복어를 금지시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독하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다가 '독하다'라는 말에도 '독(毒)'이라는 단어가 들어갔구나 하고 뒤늦게 알아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복어'라는 생선을 먹거리로 활용해 왔다. 

기원전 5천 년 전 신석기 유적인 경남 김해시 수가리 패총에서 가오리, 대구, 농어, 돔의 어류 잔해와 함께 '졸복'이 출토되었고, 상노대도 패총에서도 '복어'가 출토되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패총에서 '복어'의 화석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사실 이 정도의 유적으로는 식용 복어인지 아니면 제례나 의식을 위한 재물의 일환이었는지 정확히 파악은 할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2천2백 년 전 중국의 괴담집(또는 신화집)인 '산해경'에도 '복어를 먹으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라고 적혀있다고 하니 기원전에도 복어를 식용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할 만하다. 


광포복집 -복지리탕


복은 위험한 생선이기 때문에 예부터 이를 다룰 수 있는 요리사가 드물었다. 자칫 한 순간의 실수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에 아무나 다룰 수 없었고, 누구나 복어 요리사가 될 수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복어 요리는 고급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 한정된 사람들만 먹어볼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유혹 때문에 더욱 사람들이 열광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어요리는 고급 요리로 취급받는다. 중요한 사람이나 귀한 이에게 식사대접을 할 때 복어요리를 대접하는 것도 자주 있었던 일. 그래서 1990년대 초 부산의 유명 복집에서 젊은 법무부 장관이 부산 시장 등 부산의 주요 기관장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남이가?]라는 희대어 유행어를 시전 하는 것이 가능했었던 것. 


복국이나 복어회와 같은 복어요리는 서울과 남해안 지방, 그중에서도 부산, 김해, 마산, 통영 등이 활성화되어 있다. 오늘 소개할 집은 마산 어시장 옆 복국거리의 한 집인 '광포복집' 

역사로 100년을 넘는 마산 어시장 바로 옆에는 20여 개의 복요리집들이 모인 복국거리가 있는데 이 집은 복국거리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나 기장도 유명한 복요리집이 많이 있지만 굳이 마산의 복국집을 선택한 것은 이 '복국'이 마산사람들에게는 소울푸드 같은 것이기 때문. 


초빼이가 복국거리를 처음 찾은 것은 서른이 지난 꽤 늦은 시기. 마산 출신이지만 생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즐기지 않았던 터라 복국과 같은 특이한(?) 음식은 찾지 않았기 때문. 그러던 중 첫 복국을 서울시청 뒤편 무교동의 어느 복요리집에서 맛보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항상 그리운 음식으로 다시 자리매김했다. 


매번 마산을 내려갈 때마다 국민학교나 고등학교 동기들과 술자리를 자주 했는데 가장 마지막 술자리로 찾거나 술 마신 다음 날 해장술을 위해 다시 모인 곳이 바로 복국집이었던 것. 술꾼들이 모여 옛이야기나 추억을 안주거리 삼아 술을 마시는 '가장 마지막 집'이나 전날의 숙취를 잊기 위해 '해장술 집'으로 찾는다는 것은 나름 큰 의미가 있으리라. 


복국은 참 신기한 음식이다. 

아무 양념이 되어있지 않은 멀건 국물에 복어 몇 덩어리, 콩나물, 미나리, 파와 마늘 등을 넣고 끓인 탕인데 이게 또 상상하는 맛과 다른 맛이 난다. 맑고 무겁지는 않지만 깊은 맛을 가진 복국의 국물을 한 숟갈 입에 넣으면 절로 '이모 소주 한 병요'를 외치게 되는 마력까지 가지고 있다. 또한 복국은 생선국 특유의 비린내가 없다. 게다가 살도 탄탄하여 복어살을 입에 넣고 씹는 맛도 좋으니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 


광포복집의 기본찬 - 멸치젓갈, 코다리 조림, 오이무침, 미역, 깍두기 등


이 정도까지 느낄 수 있다면 '청산가리의 10배, 성인 33명을 죽일 수 있는.....'등의 위협적인 문구는 이미 복국 국물과 함께 위를 지나 장으로 향하고 있을 즈음이리라. 


복국의 기본적인 국물 맛을 충분히 봤다면, 다음은 복국의 감칠맛을 백만 배는 증폭시킬 수 있는 촉매제를 첨가해야 할 시간. 이 촉매제는 바로 식초이다. 마치 백령도식 냉면에 까나리 액젓을 넣으면 그 감칠맛과 단맛이 확 올라오듯, 복국도 식초를 넣기 전의 그것과 넣은 후의 그것은 전혀 다른 맛을 볼 수 있다. 복국에 식초를 뿌리고 난 후에야 제대로 된 해장국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김춘수의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던 것처럼 이 집의 복국도 식초를 넣었을 때 진정한 복국으로서 아이덴티티를 찾게 된다. 


경상도 사투리를 빌어 '괴기 끓인 물에 풀쪼가리 몇 개 넣고 식초 뿌리고 소주와 함께 마신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것이 진정한 어른들의 맛인 것을 어찌할까?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술과 음식을 즐긴 초빼이조차 서른 중반을 넘어서야 뒤늦게 알아버린 맛인 것을. 이럴 땐 그냥 먹어보면 알게 된다. 


탄탄한 복어 한 덩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묽은 초장에 찍어 먹는다. 이때 초장은 요즘의 시판 초장과 같이 단맛이 강한 것이 아닌, 신맛이 조금 더 '쎈' 녀석일수록 좋다. 무거운 것으로 오랫동안 눌러 물기를 잘 뺀 두부를 반정도만 건조한 것과 같은 식감이 복어살의 식감이라고 할까? 두텁고 치밀한 조직감으로 인해 국물이 잘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신맛이 강한 초장에 꽤 잘 어울린다. 그리고 콩나물과 미나리 등도 초장에 같이 찍어 먹어도 좋다. 


이 집의 기본찬도 소주 한 병 정도 마시기엔 굉장히 좋은 안줏거리이다. 

멸치젓갈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이 집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반찬. 마산 출신인 초빼이조차 보기 힘든 신선하고 큼직한 멸치가 찬기에 담겨 나오는데 정말 기막히다. 마치 남해 미조에서 맛볼 수 있는 멸치회와 같은 신선함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바닷가 음식점이 아니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진미 중 하나다. 

이 맛을 아는 친구들과 함께 가면 뜬금없이 멸치젓갈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전엔 풀치(어린 갈치) 조림을 내주어 굉장히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은 풀치 대신 코다리 조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점은 조금 아쉬운 부분. 하지만 어린 갈치를 너무 남획하여 풀치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것을 알고 있기에 이해도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광포복집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마산, 창원, 진해 권역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지역의 노포이다. 코로나와 최근의 인력난으로 영업시간을 일부 조절하였지만 여전히 이 지역 술꾼들에게는 좋은 안주거리와 해장거리를 제공해 주는 휴식처와 같은 식당. 마산 창원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는 권한다. 


[메뉴추천]

1. 1인 ~2인 방문 시 : 복국(지리 또는 매운탕) + 소주.

2. 3인 이상 방문 시 : 복국, 수육, 복불고기 + 소주 + 껍질무침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매장 앞에 2~3대 정도 주차 가능. 식사시간에는 빈자리 없음

    인근 어시장 공용주차장 및 마산 주차장 1시간 주차 무료. 수협주차장 30분 무료 

2. 새벽시간부터 해장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식사시간엔 웨이팅 할 수 있다.  

3. 몇 년 전 수리를 하여 매장이 깨끗하고 굉장히 넓다. 예전엔 좌식 테이블이었으나 최근엔 입식테이블로 

   교체하였다

4.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월요일이 공휴일일 경우 화요일 휴무.

5. 오래된 가게이다 보니 어르신 손님, 가족 손님들이 많은 편. 

6. 여행 및 관광 정보 

    - 구마산의 중심인 창동 오동동과 가까워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창동의 코아양과나 고려당 등 오래된 빵집

      이 인근에 있고, 오동동의 아구찜 거리, 통술 거리도 인근에 있어 충분히 여흥을 즐길 수 있다. 

    - 마산 어시장과 가까워 어시장에서 건어물이나 김 등의 좋은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 마산 창동 예술촌에는 이것저것 볼거리들도 있다. 구도심의 오래된 지역이라 노포들이 꽤 많아 마산 

      노포 탐방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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