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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ul 27. 2023

초빼이의 노포 일기[강원 춘천시 퇴계동 퇴계막국수]

막국수 이름 앞에 춘천이라는 지명을 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

바야흐로 막국수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아니 이미 오래전에 시작했다. 


막국수라는 음식은 사전적 의미로는 '겉껍질만 벗겨 낸 거친 메밀가루로 굵게 뽑은 거무스름한 국수. 또는 그것을 삶아 만든 음식'이라 한다. '막'이라는 단어에는 '즉석, 즉각적인, 막 만들어진'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아마도 막국수를 만드는 과정이 냉면보다는 시간이 덜 걸린다는 점에서 만들어진 이름이 아닐까 추측한다. 

예전엔 막국수는 냉면의 '면'과는 달리 툭툭 끊어지는 맛에 먹었다고 하지만 요즘의 막국수 면은 냉면의 그것과 별반 차이를 못 느낄 만큼 재료의 배합 비율이 비슷해져 가고 있는 실정. 


막국수는 사실 춘천의 음식이 아닌 강원도 지역의 음식이라 부르는 것이 맞다. 메밀을 많이 재배했던 강원도 전역에서 만들어 먹던 화전민들의 음식이었는데, 어느 순간 춘천이 마치 막국수의 본고장이 되어버렸다. 이는 1980년대 '국풍 81'에 춘천의 대표 음식으로 '막국수'가 출품되었고, 유명 정치인들이 춘천에 들러 막국수를 먹었던 것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설.


황교익 선생님의 언급에서 쉽게 막국수의 족보를 파악할 수 있는데, 막국수는 '냉면과 형제지간'인 음식으로 면의 주성분도 같고 면을 만드는 재료의 배합 비율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강원도 해안지방(고성, 속초 등)의 막국수들은 육수로 동치미를 사용하는 등 냉면맛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에서도 그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국수에는 냉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거친 '야성의 무언가'가 있다. 

냉면이 양반이나 부유층이 즐기던 음식이었던데 반해 일반인들, 특히 화전민들이 즐기던 음식이었는데 고난하고 거칠었던 그들의 삶이 자연스레 녹아 있는 음식이었음을 외면할 수는 없다. 게다가 거친 메밀의 껍질을 함께 갈아 면을 씹을 때 그 꺼칠한 식감과 면의 색상에서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무엇'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듯하다.  

 

퇴계 막국수

얼마 전 춘천을 찾았던 날, 가장 먼저 들렀던 곳은 남춘천역 바로 앞에 자리 잡은 '퇴계 막국수'였다. 

지금은 한 이불을 이용하는 마눌님과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했었는데 그 많은 목적지 중 한 곳이 바로 퇴계 막국수였다. 춘천시 퇴계동은 이황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동네로 퇴계 선생의 호를 딴 지명을 가게의 상호로 삼았던 것. 게다가 이미 오래전부터 퇴계 막국수는 막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가게이기도 했다.


무려 5년여 만에 찾은 퇴계 막국수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간판도 새롭게 단장하여 달았고 좌식으로 운영되던 식탁은 4년 전 공사를 통해 입식 테이블로 바꿔버렸다. 그러다 보니 테이블 수도 조금 늘어나 예전보다는 조금 좁아진 느낌. 게다가 예전엔 사장님 부부만 계셨던 매장에 지금은 많은 직원들과 자제분들로 보이는 가족들도 보인다. 조금 더 탄탄하게 자리를 잡는 느낌이랄까?


한참을 웨이팅 하다 자리를 잡으니 바로 면수와 살얼음 가득한 육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간다.

오랜만에 마시는 면수에서 구수한 향이 올라와 긴 운전의 피곤함으로 잔뜩 꼬여있는 마음을 스르륵 풀어주고 간다. 면을 잘 삶아낸 물을 버리지 않고 손님에게 내 주어 음식의 향과 풍미를 돋우며 애피타이저로 충분히 활용하기 때문. 입안에 남은 메밀향이 막국수 면의 풍미를 극대화시키니 이 집의 막국수를 먹기 전엔 반드시 면수를 마셔주는 것이 좋다.   



육수의 육향과 농도도 예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매콤했다고 기억되는 찬도 아직 그대로. 

육수 몇 국자를 떠 막국수에 붓는다. 곱빼기로 주문한 막국수 면을 두텁게 덮은 양념장이 육수와 어울리며 묘한 색으로 변신한다. 퇴계 막국수의 막국수는 비빔 막국수가 기본이라 육수를 너무 많이 부으면 맛있는 막국수를 만드는 데 실패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초빼이의 경우엔 면의 1/5 정도까지만 육수를 붓는 편. 

면 덩어리에 젓가락을 넣고 슬슬 풀어주면 이내 면은 아이스크림 녹듯 스르륵 풀어진다. 양념장이 육수와 어우러지며 잘 숙성된 향이 스윽 코를 자극한다. 양념장의 향에서도 잘 만드는 막국수 집의 포스는 충분히 느낄  있다.  


그동안 꽤 많은 전국의 막국수 집을 다녔는데 기억에 남는 몇 곳들이 있었다. 

강원도 고성의 '백촌 막국수'나 가평의 '송원 막국수', 서울 방화동의 '방화 고성 막국수', 그리고 경기도 용인의 '고기리 막국수'와 함께 이 집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초빼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막국수 집안 셈. 


굳이 세분하자면 가평의 송원 막국수나 퇴계 막국수는 옛날 스타일의 비빔 막국수 계열이고 서울 방화동의 고성 막국수나 고성의 백촌 막국수는 강원도 해안가의 냉면과 유사한 스타일의 막국수들, 그리고 고기리 막국수는 현대화된 진화한 형태의 막국수라 할 수 있으니 막국수에서만큼은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 편. 


육수를 적당량 붓고 잘 섞어 주면 된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들뜬 마음에 메밀 전병도 추가한다. 

강원도 인제에서 군생활을 하던 당시 처음 맛본 메밀 전병은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음식이었는데, 나이를 조금 먹기 시작하니 메밀전병의 참맛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밍밍한 메밀부침과 매운 강원도식 김치가 만들어내는 단순하지만 이질적인 조화는 어지간한 음식 경험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장르. 이 집의 메밀 전병은 그 묘한 조화의 첨병에 서 있다. 오직 어른들만이 알 수 있는 그런 맛. 


게다가 메밀전병을 내는 집마다 그 집들만의 특징이 모두 다르니 어쩌면 메밀전병에도 각각의 집들의 고유한 DNA와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퇴계 막국수의 메밀 전병에는 당면이 꽤 들어 있는데, 예전 기억이 잘 생각나지 않아 비교할 수가 없었던 것은 아쉬운 점. 그러나 여전히 매력적인 음식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퇴계막국수 - 메밀전병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우리의 생활에는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코로나 이전에 찾았던 오랜 노포들이 요즘은 찾기 어려워진 경우가 꽤 많았는데, 역병의 광풍은 그 생명력 강한 노포들도 피해 가기 힘들었던 격한 흐름이었던 것. 퇴계 막국수를 찾으며 예전에 찾았던 각지의 노포들을 다시 한번 더 들여다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어차피 초빼이의 노포 일기는 노포들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초빼이의 개인적인 기록이니. 



[추가 팁]

1. 전용주차장이 있다. 예전에는 두세 대만 댈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굉장히 

    넓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이마저도 부족하다. 

2. 남춘천역 바로 건너편에 있어 서울분들이라면 춘천 가는 전철(기차가 아님)을 타고도 방문 가능. 

3. 식사시간에는 웨이팅 필수. 식사시간을 피하는 것을 권장한다.  

4. 매주 화요일 정기 휴무. 10:30분부터 21시까지 영업한다. 

5. 1960년대 약사리 고개에서 대추나무집 막국수로 개업 후 70년대 서울로 이전하여 '춘천 막국수 맷돌

    식당'이라는 상호로 운영. 1992년 춘천으로 다시 내려와 '퇴계 막국수'로 운영 중. 

6. 여행 및 관광 정보 

    - 남춘천역 바로 앞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다.

    - 소양강변 산책 가능

    - 인근 닭갈비의 원조라는 '원조 숯불닭불고기'집이나 소양강 댐 아래 '통나무집 닭갈비' 등이 유명하여 

      식도락 기행도 가능

    - 소양강댐과 청평사 관광코스가 좋다. (특히 봄과 가을 추천)

    - 인근 범위를 넓혀 소양호, 의암호 관광도 추천한다. 소양강댐으로 가는 길에 요즘 많은 사람들이 찾는 

      '레고랜드'의 입구가 있다. 아이들과의 여행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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