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가을의 향과 같은 쿰쿰한 새우젓국향의 찌개 한 그릇
요즘은 된장이나 고추장, 고춧가루를 풀어 끓이는 음식들을 찌개라 부르지만, 중부지방 특히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는 명란이나 굴, 새우(자하) 젓을 사용 해 담백하게 끓여내는 젓국찌개도 꽤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초빼이의 젓국찌개에 대한 첫 경험은 결혼 후 처갓집에 갔을 때였다. 멀건 국물에 명란을 풀고 무와 두부를 썰어 넣어 끓여주시던 장모님의 젓국찌개는 약간은 신선한 충격에 가까웠다. 이제까지의 찌개들과 궤를 달리하는 젓국찌개를 한 술 뜨는 순간 펼쳐졌던 경이로운 맛의 세계. 그 신선한 충격은 아직도 쉽게 잊히지 않는 새로운 음식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차이나타운 끄트머리에 있는 해청갈비탕은 이런 젓국찌개 중 새우젓국찌개를 잘 끓여내는 곳이다.
차이나타운에 웬 갈비탕 집인가 싶겠지만 차이나타운 인근에 사는 사람들도 맨날 짜장면만 먹고사는 것은 아니니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연륜이 넘치는 맛있는 밥집들이 꽤 있다.
불고기나 육개장을 잘하는 용인정,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백반집인 명월집, 구수한 도가니탕과 설렁탕이 유명한 중앙옥 등이 대표적인 사례. 물론 오늘 소개할 해청 갈비탕도 여기에 속한다.
이 집은 처음에는 갈비탕이 꽤 괜찮다는 소문을 듣고 가족들과 함께 갈비탕을 먹기 위해서 찾았었다.
일행과 함께 메뉴판을 보며 음식을 고르던 중 낯선 메뉴인 새우젓국찌개가 눈에 띄길래 냉큼 새우젓국찌개를 주문했다. 운명적인 이끌림이랄까? 그 메뉴가 눈에 훅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 듯.
선을 넘어 몇 번이나 끓어 넘친듯한 흔적이 있는 뚝배기에서 정말 구수한 새우젓국 향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본능적으로 메뉴 선택에 성공했음을 느꼈다. 살코기와 지방 부분이 잘 어우러진 삼겹살을 가늘고 길게 썰어 볶은 후 애호박과 양파 그리고 채 썬 파를 넣어 구색을 갖췄다. 거기에 육수를 붓고 된장과 고춧가루를 적당히 풀어낸 후 마지막 간은 새우젓과 젓국으로 한다. 그 후 푹 끓여내면 새우젓국은 완성.
물론 서울 경기지방에서 먹었다는 멀건, 보통의 새우젓국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진하고 강한 양념을 풀었지만 그 모두를 눌러버릴 수 있는 새우젓국의 향과 풍미는 존재감 면에서는 과히 최고의 수준. 게다가 적절하게 푼 된장과 고춧가루가 새우젓국의 향에 더해져 정말 침샘을 자극하는 향과 칼칼함을 품게 되니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다.
진한 새우젓국의 향으로만 생각한다면 강화도의 유명한 젓국갈비와 유사한 면도 있지만 젓국갈비라는 음식의 특성상 여기에 들어가는 갈빗살과 다양한 채소 등을 고려하면 조금은 다른 음식. 또한 젓국갈비는 큰 전골냄비에 가득 담아내는 다수를 위한 음식이라 한 사람이 먹을 수 있게 내는 새우젓국찌개와는 차이가 있다.
새우젓은 인천, 강화 지역이나 충청도 태안반도 일대가 유명한데 좋은 새우젓의 맛과 향은 마트 같은 곳에서 파는 저렴한 상품들과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차이가 난다. 초빼이도 2~3년에 한 번씩 새우젓을 구매하러 가는데, 요즘은 주로 광천의 토굴새우젓을 구입했었다. 새우젓을 보기 위해 광천의 토굴에 들어갔을 때 맡을 수 있던 새우젓의 그 향이 찌개에서 난다. 신선하고 질 좋은 새우젓에서 맡을 수 있는 그런 향이다.(이 부분은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이해할 수 없을 듯하다)
새우젓국과 된장 그리고 고춧가루와 돼지고기 지방의 풍성한 맛이 찌개 국물 안에서 최상의 상태로 배합된다. 또한 거기에 애호박의 색다른 풍미와 양파 본연의 단맛까지 더해지니 이런 단단한 조합이 또 없다. 마치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
여느 노포와 같이 이 집 사장님의 손맛도 굉장히 좋다.
특히 정갈하게 내는 찬들은 계절마다 바뀌긴 하지만 입에 맞지 않는 것을 찾기 힘들 정도. 이번 방문에는 실부추를 곁들인 김무침과 싱싱한 마늘종과 멸치로 심심하게 볶아낸 멸치볶음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초빼이의 기억에 남는 이 집 최고의 반찬은 몇 년 전에 먹었던 오이무침인데 중국식 파이황과(일명 오이탕탕이)를 연상케 할 정도의 시원함과 새콤달콤함으로 무장했던 것이 매력적이었다.(아쉽지만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갈비탕 메뉴명을 상호 옆에 붙일 정도로 이 집의 갈비탕도 수준급이다.
다른 집들의 갈비탕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넣어주는 파가 깔끔한 국물 맛을 이끌어내고 질 좋은 갈비의 살코기는 육수 자체에 품위를 더한다고 할까? 게다가 깔끔하게 먹기 좋을 정도로 기름기를 제거하여 삶아내는데 육향 또한 범상치 않은 수준. 좀처럼 국물까지 다 먹지 않는 마눌님도 완뚝하시는 곳이 바로 이 집이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장님의 얼굴에 노쇠함이 두텁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인지 예전에 많았던 메뉴들을 대폭 줄이셨다. 상황에 맞게 강점들을 선택하고 그것에 집중한다는 전략은 굉장히 좋은 시도인 것으로 판단되나, 사장님께서 연로하시다 보니 세월의 흐름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부디 건강 잘 지키시면서 맛있는 음식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새우젓국찌개(또는 갈비탕) + 소주
2. 2명 이상 방문 시 : 꽃갈빗살(또는 제주 오겹살이나 돼지 왕갈비) + 새우젓국찌개(안주용)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전용 주차장은 없으나 가게 앞에 1~2대 정도 주차는 가능하다. 그러나 가끔 단속도 있다.
인근 민간 주차장 주차비가 저렴하니 민간 주차장 이용을 강추
2. 새우젓국찌개는 정말 강추한다. 심지어 해장국으로도 좋다
3. 영업시간은 09:30~21:00. 조금 일찍 마치기 때문에 술자리를 목적으로 할 경우 1차로 찾아야 한다.
브레이크 타임은 15:00~17:00. 라스트 오더는 20:30. 매주 일요일은 정기 휴일
4. 여행 및 관광정보
- 바로 옆집이 노포일기에서 소개한 적 있는 중화방이다. 고기튀김(덴뿌라)가 기가 막힌다.
2차 자리로 강력 추천하나 중화방도 일찍 마치는 곳이라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한다.
- 인근에 중화루나 진흥각과 같은 60년 이상의 노포 중국집들이 즐비하다. 조금만 걸으면 신포시장과
시장 인근의 노포들을 함께 찾을 수 있다. 다복집이나 대전집, 신포주점 등을 추천한다.
- 차이나타운 관광 및 산책이 가능하다. 인천의 가장 유명한 공원인 자유공원도 함께 산책 가능.
이 지역은 초봄 벚꽃이 필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
- 인천 아트플랫폼 지역의 근대 건물 투어가 가능하다. 굉장히 많은 개항기 및 일제 강점기 시절 건물들이
인근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