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빼이 Nov 09. 2023

초빼이의 노포일기 [대전 중구 중촌동 서울북어]

한정식 집에서 대접받는 느낌의 북엇국 한 그릇, 대전 서울북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해장국을 들라하면 초빼이는 아마 북어해장국을 가장 먼저 떠 올릴 거다. 

너무 맵거나 무겁지 않은, 은은한 북어 특유의 향을 국물 가득 품고 있는 북어해장국은 전날 잔뜩 혹사당한 속을 금세 달래줄 수 있는 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 초빼이가 서울의 무교동 북어국집을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마산의 고향집보다 더 많이 찾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실 전날 음주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정도로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 북엇국이니 선짓국이니 내장탕이니 하는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잔뜩 화가 나있는 속을 달랠 수 있는 '무엇'이라면 뭐든지 받아들여야 한다. 삿되고 의미 없는 구분이나 취향을 쫓기 위해 가뜩이나 상처받은 뇌를 움직이려 시도하다가는 쉴 새 없는 헛구역질에 몇 분간 고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 이럴 땐 그냥 본능에 의지해 몸이 이끄는 대로 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선 북엇국집 문 앞, 긴 대기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대전 출장에서도 전날의 과음으로 인해 속은 미친 듯이 으르렁대며 해장국을 주입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무려 여섯 곳의 노포와 한 곳의 술집을 찾아다녔고 마지막 자리는 육회와 육사시미에 소주를 마시며 마무리를 지었던 터라 '시원한' 국물이 절실했던 것.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며 가장 어려워하는 표현이 이 '시원한'이라는 형용사라고 들었던 것 같다. 'cool'도 아니고 'fresh'와도 조금은 거리감 있는 이 '시원한'이라는 단어의 뜻은 어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공감할 수 있었던 단어.


그렇게 호텔에서 괴로운 아침시간을 죽이던 내게 전날 술을 마셨던 선배가 전화를 주셨다. 

'같이 해장이나 하러 갈까?' '어 저 지금은 북엇국 같은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대전에 북엇국 좋은데 있어요?'

'내가 직장 생활하면서 해장하러 다니던 괜찮은 북엇국집이 있어'

전화를 끊자마자 그 선배를 만나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중앙로에 있는 옛 동양백화점 인근에서 만나 몸에 열을 올리기 위해 도보로 이동했다. 

번화가도 아니고 유흥가도 아닌, 오래된 주택들과 새로이 높이를 더하고 있는 아파트들이 서로 날 선 경쟁을 하고 있던 접점에 있는 조금은 한적한 동네로 향했다. 대전 중촌동의 한 골목에 이르자 동네의 분위기와는 조금 동떨어져 보이는 듯한 2층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조그만 사거리 코너자리에 서서 북어 한 마리 간판으로 걸어두고 있는 집이다. 


가게의 입구에는 '이순옥 서울북어'라 적혀 있고, 건물 귀퉁이 세로 간판에는 '서울북어'로 표시된, 그리고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서울북어'라고 부른다. 혹시나 하여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서울북어전문'이라고 상호가 나오는 곳.(검색은 '대전 서울북어'로 검색하면 된다) 

이름이 몇 개면 어떠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지!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우선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의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된다. '변두리 북어해장국 식당이 이렇게 깨끗하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깨끗하고 정갈한 모습. 점점 기대감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네 북엇국 좋아하면 이 집 꽤 마음에 들게 될 거야'라는 선배의 첨언이 촉매제처럼 작용한다. 

가게 안 곳곳에 숨어 있던 '꼬리 한' 북어 특유의 향에 이미 마음은 풀어지고 있는 느낌. 


자리를 잡고 앉으니 물과 물수건을 내주신다. 여기서부터 감동은 시작. 

흰색 자기 물컵에 담긴 물과 업체에서 납품받는 약품 냄새 절은 저가형 페이퍼 '물수건(시보리)'이 아닌 '진짜' 물수건을 테이블에 놓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수건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니 매장에서 직접 세척하고 삶아 일일이 개어 내는 물수건이다. '얼마 만에 이런 물수건을 받아보는 건가' 싶어 감회가 새롭다.

  

'북어탕 두 개 주세요'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사장님이 반찬을 먼저 내주신다. 테이블 위로 올려지는 반찬을 보면 감동의 크기는 더욱 불어난다. 찬기에 담긴 찬들의 담음새가 흠잡을 것 하나 없다. 적게 잡아도 한 달 전부터 김치나 동치미를 담을 때 찬을 어떻게 낼 지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을 모양을 보며 이 집 사장님의 디테일과 미적 감각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반찬을 미리 담아 놓으면 생기는 김치 국물 자국이나 일일이 담을 때 떨어지는 반찬 자국들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함에서 이 집 음식에 대한 신뢰감이 자연스레 배가된다. 정점은 잘 다진 고추와 고춧가루를 내주는 그릇에서 볼 수 있는데 한점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아~'라는 감탄만 나온다. 특히 다진 고추는 굉장히 식감이 좋은데 사장님께 따로 여쭤보니 고추를 다진 후 자연상태에 살짝 내놓아 겉만 건조한 것이라 한다. 

식재료 하나하나에 대해 굉장히 디테일이 강하다. 찬과 찬을 담아내는 수준이 이 정도라면 1만 원짜리 북어탕을 내는 집에서 찬기까지 자기를 쓴다는 것은 큰 자랑거리도 아닐 듯하다. 


북어탕이 나왔다.

이 집의 북엇국은 우선 눈으로 즐겁다. 마치 백색(白) 자기 그릇 안에 자연을 나타내는 오방색의 꽃을 수놓은 듯하다. 북어로 국물을 내고 콩나물의 향을 입힌 탕(黑)에 고명으로 실부추(靑)와 팽이버섯(白) 계란지단(黃) 그리고 다진 홍고추(紅)를 올렸다. 홍고추는 다졌다기보다는 채를 썰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조금 더 홍(紅) 색을 가미하고 싶어 고춧가루를 한 수저 더하니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  

국물 한 수저를 뜨니 이내 입이 즐거워진다. 진하게 우려낸 북어 향이 국물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무교동 북어국과는 또 다른 세상의 북엇국이다. 국물맛만 따진다면 진부령의 유명한 황태해장국 집의 국물과 유사하다고 할까? 북어를 우린 국물이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에서 깜짝 놀라게 된다. 


완벽한 해장을 위해선 어떤 국물이건 밥을 말아야 한다. 

전분이 풀려 단맛이 은은한 상태의 국물을 뜨거운 온도에서 속으로 들이밀 때 그제야 해장은 완성되는 것. 서둘러 밥을 만다. 하지만 밥을 말기엔 너무나 이쁜 국물이다. 

'해장국이 이렇게 좋은 비주얼을 가질 일인가' 싶은 생각과 동시에 내 손으로 흩트려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아쉬움에 잠시 망설이게 된다. 


한편으론 슬그머니 올라오는 '파괴의 본능'. 어서 시원한 국물을 넣어 달라 아우성치는 내 몸의 외침에 결국은 비주얼을 포기. 밥을 말아 조금 더 탁해진 국물을 냉큼 입에 댄다. 


이 맛이다. 이 맛 때문에 해장을 하는 것이고, 이 해장의 쾌감을 즐기기 위해 어젯밤 그렇게 달렸던 것이다. 

어쩌면 어제 술자리의 완성은 오늘 이 북어탕으로 해장하는 과정까지 일지도 모른다. 비로소 찾지 못했던 마지막 퍼즐의 조각을 찾아 완성시킨 기분. 이제야 오늘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단골이었던 형님 덕분에 사장님과 몇 마디 나눌 수 있었다. 30여 년 전 다른 곳에서 북엇국으로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의 뒤를 이어 매장을 이전, 운영하고 있다는 사장님의 말을 들으며 비교적 젊은 노포인 이곳의 미래를 그려본다. 대전 지역 초빼이들에게는 북어 해장국으로 꽤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작은 식당에 북어 해장국 한 그릇을 먹으러 갔는데 마치 한정식 집에 들러 북어탕을 대접받은 느낌이 들었다. 음식에 대한 세밀한 기획과 전략적 치밀함, 그리고 매장 전반에 걸친 깔끔함과 음식에 가득 담긴 정성과 미적 감각까지 무엇하나 나무랄 데 없었던 곳. 


다음 방문에는 황태구이와 북어찜으로 술자리를 위해 찾아보고 싶다. 술을 마시다 취하면 북엇국으로 해장하고 다시 술을 마시고 다시 해장하는... 무한 반복의 루틴을 걸어보고 싶다. 대전 서울북어에서.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북어해장국 + 소주(해장술)

2. 2명 이상 방문 시 :  황태구이 또는 북어찜 + 북어해장국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대전의 구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찾아가는데 어려움이 있다. 가급적 자차를 이용하거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전용 주차장이 굉장히 넓어 주차에 무리가 없다. 

2. 영업시간은 09:30~20:00까지. 주문 마감은 19:50. 매주 일요일은 휴무.

3. 미학적 관점에서 음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곳이다. 

4. 음식점 창업을 원하는 분이라면 음식의 준비 과정, 담음새, 식기류, 위생 등에서 참고할 수 있을만한 것이 많은 곳이다. 

4. 여행 및 관광정보 

    - 조금 떨어져 있지만 소나무집, 대전갈비집, 형제집, 진로집, 한밭칼국수, 광천식당, 희락반점, 사리원 

      본점 등 많은 노포가 있어 음식이나 술자리를 즐기기에 좋다. 

    - 성심당 본점도 대전 중구에 있다. 

    - 조선시대 유적인 유희당과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가, 국내 유일의 '한국 족보 박물관'도 대전 중구에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부터 80여 년 간 도청사로 사용되던 옛 충남도청 터도 방문해 볼 만하다. 

      영화 '변호인'부터 최근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  

    - 대전 중앙로에도 오래된 일제 강점기하에 지어진 옛 건물들이 많으니 찾아볼 수 있다. 

    - 대전 지하철을 이용하면 유성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도 있음.  

    - 대전 서구의 한밭수목원도 추천한다. 대전 시민들이 가족들과 함께 많이 찾는 곳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빼이의 노포 일기[인천 중앙동 해청갈비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