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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May 12.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 인현시장 진미네]

병어라는 생선 좀 아시나요?

서울의 한 복판, 그것도 충무로와 을지로 사이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은 시장이 하나 있다. 

바로 인현시장. 50년 말에서 60년대 초에 생긴 이 시장은 인근 주민들의 허기를 채우며 자연스레 생긴 시장으로 세운상가의 건설을 통해 한동안 침체기를 걷다가 최근 젊은 청년상인들의 진출과 함께 주목을 받으며 도심 속 새로운 명소로 발돋음하고 있는 곳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몇몇 야채상과 어물전, 정육점, 철물점 등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작은 인쇄소 등과 식당이나 술집이 나머지 자리를 채우고 있다. 시장 가장 안쪽으로 가면 항상 보석과 같은 집이라 여기는  집이 있는데 바로 '진미네'가 그곳. 몇 년 전 앞쪽 가게도 인수하여 마주 보는 두 개의 가게를 동시에 운영하는 한마디로 잘 나가는 집 중의 하나이다. 


진미네는 날씨가 차가워지는 10월 이후가 참 좋은데 그 이유는 위의 사진에 있는 병어조림을 맛있게 먹을 수 있기때문. 잘 우려낸 국물과 채소들 그리고 다진 마늘이 두툼하게 잘린 병어와 함께 끓으며 최고의 안주로 변신하는 기적을 볼 수 있다. 


병어는 살이 연하고 지방이 적어 비린내를 거의 내지 않는 생선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는 '편어'라 불렀고, 속명으로 '병어'라 불렀다고 기술되어 있기도 하다. 내가 태어난 경상도에서는 병어를 그렇게 자주 볼 수 없었던 것 같은데(어머니의 취향도 관여되어 있어 확신은 할 수 없다) 서울에 살면서 병어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병어를 재료로 한 여러 음식 중 진미네에서 자신 있게 내놓는 것은 병어조림과 병어회가 있다. 이 두 가지 만으로도 초빼이들은 소주 네댓 병은 그냥 비울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이라.  


병어회는 뼈를 통째로 썰어 내는(흔히 세꼬시라고 하기도 한다) 형태로 내는데 취향에 따라 초장이나 막장(경상도식)에 찍어먹으면 잘 어울린다. 병어회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막장을 찍은 매운 고추를 올려 입에 넣으면 도대체 왜 이전에는 이런 맛을 모르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후회가 된다. 이 후회가 점점 그 몸집을 불릴 무렵 차가운 소주 한잔을 재빨리 입으로 털어 넣으면 후회는 현실에 대한 만족감으로 이내 치환된다. 


진미네는 병어외에도 해산물 안주가 꽤 괜찮은 가게이다. 여러 가지 탕에서부터 회, 조림 등이 많이 있는데 

나의 경우 항상 병어조림은 기본 옵션으로 주문하고 그때그때 계절에 좋은 안주를 더 추가하는 편이다. 가끔 서울에서 먹기 힘든 호래기 회나 굴도 내놓기 때문에 해산물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만날 때는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호래기는 반원니꼴뚜기가 표준어라고 한다는데, 내 고향 경상도에서는 그냥 '호래기'라 부른다. 

겨울이 적기인데 낚시 좋아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번 낚싯대를 넣을 때마다 대여섯 마리씩 올라와서 호래기 낚시는 만족감 최상의 낚시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보통 서울에서는 회가 아니라 데친 호래기를 내는 곳이 많은데 아마도 신선도가 문제라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 집에서는 계절만 잘 맞추면 호래기 회도 맛볼 수 있다. 



굴도 꽤 씨알이 괜찮은 녀석들로 내는데 뭐 더할 말이 있으랴? 

가끔 이 집에서 굴이나 호래기 회를 먹을 때면 쇼비뇽 블랑 같은 화이트 와인을 가져다 함께 마시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이기도 한다. (콜키지는 안 하시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11월에서 1월 사이에 이 집을 자주 갔었던 것 같다. 

겨울철 적기인 다양한 해산물을 서울 한복판에서 좋은 가격에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남이나 광화문의 좋은 일식집이나 횟집에 가면 1년 사시사철 좋은 상태의 해산물을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겠지만, 어디 서민들의 주머니가 그리 녹녹한 적이 있었던가. 가벼운 주머니에 좋은 해산물 안주에 소주 한잔 홀짝이며 하루의 근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곳이 어쩌면 유토피아일 텐데. 


[메뉴추천]

1. 1인 :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여기도 1인 손님은 본 적이 없다.

2. 2인 : 병어조림 

3. 3~4인 : 병어조림 + 병어회 + 제철 해산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을지로 LA갈비 거리에서 충무로 쪽으로 길을 건너면 바로 인현시장 입구를 볼 수 있다. 

2. 병어조림은 기본 세팅이라 생각하면 괜찮다.  

3. 오래된 시장이라 화장실이 조금 불편하다. 특히 여자분들에게는 더 불편하다는 점이 약점

4. 2차는 인현시장 내 전집도 나쁘지 않고, 같은 시장 내 카레가 맛있는 '서울털보'에서 해도 나쁘지 않다. 

   또한 비린 것을 먹어 육고기가 필요하다면 LA갈비 골목이나 근처의 '산수갑산'도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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