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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an 11. 2024

초빼이의 노포일기[서울 중구 오장동 중부시장 지하식당]

중부 건어물 시장 속,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랄한' 무국적 술집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1층도 아니고 지하도 아닌 '반지하'와 같은 어정쩡한 이 가게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게다가 이름은 '지하'식당이다. 번화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곳도 아닌, 오래된 건어물 시장 뒷골목의 이 가게는 왜 생겼을까? 끼니를 해결하는 식당도 아니고 술을 마시는 주점도 아닌 이 가게의 아이덴티티는 도대체 무엇일까? 한식도 아니고 양식도 아닌 이곳의 음식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집에 관해서는 혼란스러운 의문이 끝을 보이지 않는다. 


처음 이곳을 찾았던 때는 코로나가 여전히 삶을 지배하던 3년 전 어느 날이었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코로나에 의해 영향을 받았지만, 모두들 백신을 맞고 조금씩 그 두려움의 시간을 벗어나려 하던 어느 날 즈음이었다. 신선한 공기마저 가로막는 것 같은 두터운 마스크를 끼고 찾았던 그 집은 버터와 치즈, 그리고 고추장을 조린 냄새가 묘하게 뒤섞여 혼란스러운 그 시기의 우리를 보여주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쥐똥보다 더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우리 모두의 삶이 피폐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급'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기회가 될 때마다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평소에는 복잡하거나 시끄러운 자리를 애써 피하던 초빼이마저 이 조그만 행성의 거의 모든 곳에서 진행된 격리와 거리 두기에 시달리며, 비로소 사람들이 그리워졌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의 몸에 내재된 복잡한 DNA속에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 그것의 소중함을 뒤늦게야 깨닫는 그런 미욱함'도 함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에 또, 그 미욱함을 마치 처음처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지하식당으로 향했다. 저녁 약속시간보다 조금 서둘러 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 

을지로 4가 역에서 지하철을 내린 후 7번 출구를 나와 그대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말린 멸치와 굴비 냄새가 거리를 채우기 시작할 무렵 중부시장으로 접어들었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어물 시장의 뒷골목 지하에 웅크리고 있는 이 식당은 마치 나치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만든 벙커와 같다. '위장막'을 덮지도 않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변의 창고나 가게들과 완전히 동화되어 있어 한번에 찾기 힘들다. 이제는 눈에 익을 만도 한데도 여전히 두세 번은 이곳의 입구를 지나치며 두리번거리는 눈썰미 없는 나 자신을 또 탓하게 된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굉장히 스타일 좋은 30대 정도의 남자 세 명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금은 이른 시간인 듯 하지만 이미 테이블 위엔 빈 와인 두 병이 올려져 있고 세 번째 와인의 코르크를 돌리고 있던 중. 그들과 눈을 마주친 찰나의 시간이 끝나자마자 한쪽 구석의 자리로 향했다. 잠시 기다려도 사장님이 나타나지 않기에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 목부터 축인다. 두 번째 잔을 비울 무렵 사장님이 나타났다. 이 양반은 항상 무덤덤한 표정이다. 마치 건조기에서 갓 꺼낸 빨래처럼 퍼석거릴 것 같은 건조한 표정이 인상적인 분이다. 하지만 그 얼굴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1년 만에 찾았더니 메뉴와 가격의 변동이 조금 눈에 띄었다. 감바스는 '감바스 밥'이 되면서 5천 원 정도 가격이 조정되었고, 3천 원짜리 두부조림은 음식의 양을 늘리고 좀 더 풍성해지면서 1.2만 원짜리 '냄비두부조림'이 되었다. 워낙 요즘의 물가가 가파르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보니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인다. 월급과 용돈을 제외하곤 모든 게 오른 세상이니,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


'잇(it) 고추'로 혼술을 시작했다. 지하식당의 시그니쳐 중의 시그니처 메뉴. 

이 집 사장님의 미친 상상력이 만들어 낸 음식이다.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음식 같지만 먹어보면 의외로 음식의 완성도가 높다. 특히 '청양고추'를 함박스테이크 고기(다진 고기)로 감싸 만들었는데 꽤 매운 고추와 지방과 육즙이 잘 배어있는 고기의 밸런스가 꽤 좋다. 입에 넣으면 담백하고 달달한 고기가 먼저 씹히다가 고추의 매운맛이 그 뒤를 잇는다. 굉장히 맵지만 고기의 육즙에 반정도는 중화된 느낌. 딱 여기서 맥주 한 잔 들이켜면 굉장히 유쾌한 조합을 완성하게 된다. '밑줄 쫙' 그어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잇고추'엔 맥주다.   


잇고추를 반정도 남겨두고 냄비두부조림을 추가했다. 지하식당의 두부조림은 '감바스'와 '페코리뇨 감자' 그리고 '잇고추'와 함께 이 집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4대 천왕과 같은 존재. 얼마나 변했을까 궁금함이 앞섰다. 두부조림이 담긴 냄비 속에서는 고춧가루와 고추장의 칼칼함과 버터와 치즈의 고소함과 풍만함, 그리고 토마토 페이스트의 감칠맛이 공존하며 굉장히 입체적인 맛을 보여준다. 예전의 두부조림에 비해 두부의 양이 늘었고, 파스타 면과 계란 프라이가 추가되었다. 


여기서 파스타 면에 '알 덴테'를 찾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이다. 두부조림에서는 두부의 식감과 잘 어울릴 만큼 잘 익혀내야 한다. 굳이 알단테가 없어도 이질적인 재료의 식감 차이에서 오는 기묘한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계란 노른자를 터뜨릴 때 '훅'치고 올라오는 그 생글함과 미끈함이 도무지 국적을 가늠할 수 없는 소스에 더해지면 어지간한 음식들로는 대적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 국적을 분간할 수 없는 '괴랄한' 맛이 소주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 예전의 두부조림보다 훨씬 더 괜찮다. 이런 상상하지 못한 '의외성과 이국적인 조합'은 이 집에서만 찾을 수 있는 매력이다. 


시그니처 메뉴에 대한 탐험이 끝났다면 이제부터는 어떤 주종으로 달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와인으로 주종을 변경하려 한다면, 감바스밥과 페코리뇨 감자를 추천한다. 페코리뇨 치즈는 초빼이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 그 수준을 말할 수 없지만 감바스는 스페인 현지의 그것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다. 소주로 계속 직진하고자 한다면 소주에 잘 어울리는 메뉴의 다른 안주들로 선택하는 게 좋다. 메뉴들이 다양해지며 소주에 어울리는 다양한 안주가 늘었다. 

초빼이는 소주를 더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뜨끈한 국물이 생각이 나 멸치국수를 추가. 

중부 건어물 시장의 페코리뇨 감자와 감바스를 파는 곳에서 잔치국수라니! 이런 추세라면 포루투의 볼량시장에 있는 치즈집에서 떡볶이를 파는 것도 가능할 듯하다. 포르투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지하식당 잔치국수의 국물은 어지간한 잔치국숫집보다 훨씬 더 낫다. 멸치와 디포리 그리고 마지막에 치고 올라오는 가쓰오부시 향까지 도대체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가쓰오부시는 초빼이의 추측이다). 나름 잔치국수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지하식당의 국수는 언제나 만족할 수준. 이미 두 종류의 안주를 다 비워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릇에 얼굴을 박고 국물까지 다 마셔버릴 정도로 굉장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조금씩 옆 테이블 청년들의 목소리가 높아져 간다. 이렇게 '혼술'을 하다 보면 옆 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테이블을 넘어올 때가 많다. 초빼이가 관음증이나 그와 비슷한 취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옆자리의 큰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비워지는 술잔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들의 이야기는 내게 더 가까이 온다. 


잠시 귀 기울이다 보면 때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테마주에 얼마를 넣었다'던지, '자기 와이프에게 얼마씩 생활비를 준다'던지, 아니면 '어떤 음식점에 갔는데 정말 괜찮았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테이블 위에 흘러넘친다. 30대 남자들의 삶과 이야깃거리도 쉰을 넘은 남자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경험하는 시간이 조금 빠르냐 늦느냐의 차이일 뿐. '그런데 그 테마주가 뭐였더라?'


어쩌면 이 집의 무뚝뚝한 사장님도 이곳을 찾는 모든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정보를 얻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한다. 그런 비밀스러운 임무가 있기 때문에 손님들과 함부로 말을 섞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왜 어릴 적 많이 읽었던 무협지 속의 '개방과 하오문'은 거리나 술자리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들을 듣고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가? '아! 이러다간 두 개의 달이 뜨는 세상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다.' 

다시 나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맛있는 음식과 옆 테이블의 이야기까지 안주삼아 홀짝거리다 보니 어느새 소주 두 병과 맥주 한 병을 마셔버렸다. 저녁에 예정된 술약속도 있는데 이렇게나 마셔버렸으니 집으로 가는 길이 조금씩 두려워졌다. 항상 이렇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랄한' 무국적 술집에서는 잠시 방심하면 어느새 젖어있는(?) '초빼이'를 발견할 수 있다.  지하식당의 매력이자 무서운 점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 집 사장님께서 가게를 인수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어 찾는다. 얼마 전 낮 시간에 찾았을 땐 소문을 듣고 찾아온 중년의 부부에서 시장에서 일하는 사장님들, 그리고 '핫'한 곳을 찾는 젊은 이십 대 청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을 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소속도 없는 무국적에 연령 제한마저 없는 지역이다. 테이블 네 개짜리 좁은 식당에 이렇게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삶들이 살아 숨 쉰다. 이곳이 지하식당이다.  


아! 마지막으로 첨언을 하자면 2년 전까지 와인을 가지고 온 손님에겐 콜키지 프리였지만, 하우스 와인을 팔면서 콜키지 비용을 따로 받는 듯하다. 그 점은 조금 아쉽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시그니쳐 4종 중 택(페코리뇨 감자, 감바스 밥, 두부조림, 잇고추) + 주류 

2. 2인 방문 시 : 시그니쳐 4종 중 택 2 + 주류

3. 3인 이상 방문 시 : 시그니쳐 메뉴 + 추가안주 + 주류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주차장은 별도로 없다. 을지로 노상 공용주차장과 배오개길 노상 공영주차장이 가장 가깝다. 대중교통 

   이용 시 을지로 4가 전철역 7번 출구가 가장 접근하기 쉽다.

2. 월~금 10:00~21:00, 토 10:00~18:00 / 일요일 정기 휴무

   - 가끔 사장님이 자리를 비우실 때가 있다. 식사나 짧은 볼 일로 자리를 비우는 경우이다. 그냥 기본 안주를

     그릇에 퍼 맥주 한 잔 하고 있으면 나타난다. 

3. 참고

   - 이제는 콜키지 비용을 받으신다. 오랜만에 방문하는 분이라면 알아둬야 한다. 하우스 와인은 대형 할인

     매장에서 판매하는 '캥거루'가 그려진 그 와인이다.  

   -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다. 초빼이도 몇 번을 다녔지만 매번 헤맨다. 게다가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찾아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좁고 낮은 골목에 지붕도 있어 GPS신호 수신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  

   - 정통 요리가 아닌 퓨전 음식들이 대부분이지만, 굉장히 매력 있다. 그리고 음식 가격도 올랐지만 여전히 

     가격 매리트는 있는 편.  

   - 지하식당은 노포는 아니다. 하지만 노포보다 더 강한 무언가가 있다. 

4. 여행 및 관광정보

   - 인근 노포 : 장수보쌈, 사랑방칼국수, 산수갑산, 동원집, 호수집, 미성옥, 황평집닭곰탕, 중림장, 

     부민옥, 인천집, 덕수정, 필동면옥, 경상도식당, 영덕회식당, 문화옥, 필동분식, 잼배옥, 조선옥, 용금옥, 

     경상도집, 진고개(동대문), 장수보쌈 등 

   - 청계천 걷기, 세운상가 산책도 나쁘지 않다. 세운상가 2층에는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가 있어 좋다. 

     세운상가 근처 골목의 가맥집들도 추천.

   - 종로 5가와 6가 사이 곱창 골목과 닭 한 마리 골목도 가깝다.  

   - 한국 영화의 상징,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영화 보기도 추천하며 동대문 DDP도 밤 시간 찾으면 좋다.   

   - 중부시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건어물 시장으로 좋은 건어물들이 많이 있다. 초빼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

     와 와인 안주인 육포를 주로 구입하는데 인터넷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입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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