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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an 04. 2024

초빼이의 노포 일기[제주 제주시 일도동 은희네해장국]

육지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해장국, 제주시 은희네해장국 본점

전국의 노포를 돌아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때가 가끔 있는데, 오랜 시간 쌓아왔던 노포의 브랜드나 영업방침, 그리고 레시피 등이 후발 업체에 의해 훼손당하거나 빼앗기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 또한 오랫동안 노포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상표권이나 상표법 등 관련 법규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자신이 행사해야 할 권리나 자산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노포들의 경우 자신들의 음식 레시피와 상표에 대한 권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음식 레시피를 법적으로 인정받는 과정과 상표를 등록하고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상표권의 획득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표법과 특허, 지적 재산권 관련 법들은 유수의 변호사들을 부릴 수 있는 기업들에게는 가깝고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겐 너무 멀리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얼마 전 제주 출장에서 처음으로 찾았던 '은희네해장국'도 상표권과 영업권 관련 소송 중이었는데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은희네 해장국의 소송 관련 이야기는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이라 알고 있고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여서 본 글의 하단에 별도로 현재 상황만 정리하여 옮긴다.   


여하튼 결론적으로, 한동안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넷플릭스의 드라마 '더 글로리'의 대사 중 "살면서 절대 아끼면 안 되는 돈이 변호사 비용이야"라는 극 중 한 인물의 대사는 그렇게 현실 세계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경우 소송은 인생에서 소송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일터. 한번 법적인 분쟁에 엮이게 될 경우 굉장히 삶이 핍박해진다는 것은 주위의 이야기만 들어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웬만하면 그런 경우를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휘말리게 되었다면 처음부터 명확하게 그리고 선제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대처해 나가는 것이 좋다.  


아침 8시경 제주도 일도 2동에 위치한 은희네해장국 본점(대표 이은희)을 찾았다. 

대로변 옆의 작은 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아침 일찍부터 주차하기가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매장 주변을 두 바퀴 정도 돌다가 마침 주차장을 나가는 차가 있어 바로 주차. 운이 좋은 편이었다. 


평소 초빼이처럼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괜찮은 해장국 집이라는 소문에 집이나 회사 근처(육지)의 '제주은희네해장국(하솔 F&B 프랜차이즈)'을 한 번이라도 찾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난 후 '제주도에 있는 본점은 얼마나 맛있을까?'라며 호기심에 제주도의 본점을 찾아보겠다고 한 번씩 마음먹지 않을까? 초빼이도 그런 이유로 제주도의 원조집인 '은희네해장국 본점'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매장 안을 가득 메운 소고기 해장국 향이 객을 반긴다. 

급작스레 안경에 김이 서려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소고깃국 향을 음미한다. 파와 선지의 향이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이 두 가지 향이 적절한 비율로 섞인 향만으로도 해장국의 맛을 추측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평소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마눌님도 해장국 향만 맡고도 잔뜩 기대감을 높인다.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이 안내해 준 자리는 주방 입구의 작은 탁자. 자리를 가득 메운 손님들의 면면을 살피자니 현지인인 제주 도민들과 관광객이 뒤섞인 모양이 꽤나 보기 좋다.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한자리에 앉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니 우선 음식의 맛에 대한 우려는 자연스레 날려버린다. 

테이블에 찬들이 오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해장국 뚝배기도 올라온다. 제주도 사람들이 원래 이렇게 빨랐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의 서비스. 새벽부터 해장국을 찾는 손님들이 많다 보니 빠른 회전을 위해 만들어진 이 식당 자체의 시스템인 듯하다. 


펄펄 끓는 뚝배기 위로 언뜻언뜻 고개를 들이미는 소고기와 선지 그리고 잘 풀어진 당면이 반갑다. '소고기 해장국에 당면이라니'라는 생각이 끝나기 전에 국물 한 수저를 입에 넣는다. 사실 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집 근처(육지)에 있는 '제주은희네해장국'의 음식들은 모두 지워져 버렸다. 국물의 향과 농도 차이에서 이미 게임은 오버. 원조집에서 내는 음식은 그야말로 거친 제주도의 야성미가 그대로 살아있다고 할까? 

조금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굉장히 거친 맛을 그대로 뚝배기에 담았다. 심지어 '난폭하다'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너무나 강렬했다.


소고기 육즙과 선지가 잘 우러난 국물은 콩나물과 당면을 살포시 품은 체, 칼칼해진 상태로 묵직하게 식도를 때린다. 더욱 짙은 감칠맛을 위해 함께 나온 간 마늘을 잔뜩 올려 푸니 국물은 더욱 풍성해진다. 얇게 저민 소고기와 선지의 양이 육지의 어지간한 해장국 집 양의 두 배 정도는 될 듯하다.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고기와 선지를 조금씩 집어 먹으니 군내 하나 나지 않는다. 이 녀석을 '완뚝'하면 어제의 숙취뿐만 아니라 내 몸 구석구석에 침착되어 있던 몇십 년 묵은 숙취도 풀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도 갖게 된다. 


소고기와 선지, 그리고 국물을 먹다 조금 지루해지면 재빨리 함께 나온 고추를 된장에 찍어 입에 넣는다. 

'맵다, 정말 맵다'. 요즘 꽤나 매운 고추를 즐겨 매운 고추에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이전엔 경험해 보지 못한 극강의 맵기를 보여주는 고추에 탄성만 나온다. 이 분들은 어디서 이런 '땡초'를 구해왔는지, 혓바닥과 식도에서 난리가 난 듯하다. 맨밥 한 숟갈로 급한 불을 끄고 조금은 높이를 낮춘 해장국에 밥을 모두 만다. 


그리고 잠시 대기. 

차를 마실 때 뜨거운 찻물이 적정한 온도에 이르도록 잠시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는 것처럼, 뚝배기에 넣은 고슬고슬한 밥이 국물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밥 알갱이 사이사이로 고추기름이 그 붉은 낯을 들이밀며 올라올 때쯤, 다시 숟가락질을 시작한다. 불현듯 바로 옆에 놓인 '미소(미지근한 소주)'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의 진정한 초빼이들은 차가운 소주가 아닌 미지근한 소주로 술자리를 즐긴다던데 경험해 볼까 하고 이모님들을 부르려던 찰나, 앞자리에 앉은 마눌님이 점잖게 한마디 하신다.


'운전해야지?' 


해장국이든 국밥이든 '국'이란 단어가 들어간 음식은 무조건, 밥을 말아야 한다. 

쌀이 주식인 우리의 밥상은 '쌀밥'이 주인공이고 국과 찬들은 사실 조연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경험해 오지 않았던가?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연배우보다 조연의 연기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집의 해장국이 딱 그런 느낌이다. 

은희네 해장국에서는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국에 밥을 마는 것이 아니라 '해장국'을 맛있게 먹기 위해 밥을 말아야 한다. 부족했던 전분기마저 가득 채워진 국물의 감미로움은 어떤 마약들보다 중독성이 강할 것이다. 


은희네 해장국도 역시 마찬가지. 수저를 들어 밥을 말았는데 벌써 뚝배기의 바닥이 보인다. 그리고 바닥에 남은 쌀 한 톨, 국물 한 방울까지 기어코 수저에 올려 입 안으로 넣는다. 이렇게 뚝배기 바닥을 보는 순간, 어느새 해장은 끝나있고 몸은 명경지수와 같이 맑은 상태로 돌아간다. 마치 어머니의 뱃속에서 바로 나온 순간의 몸 상태. 다시 세상의 어떤 술이라도 담을 수 있는 그런 상태.


잠시 한숨 돌리려 고개를 들면 잔뜩 몸이 달아오른 대기 손님들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피하지 말고 똑바로 눈을 마주치자. 그리고 적절히 자리를 정리하고 나와주는 것이 교양 있는 육지 손님으로서의 예의. 식사가 끝나고도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사방에서 죄여오는 '살기'를 느낄 수 있으니 유의할 것.(가끔 초빼이도 살기를 날릴 때가 있다) 


은희네 해장국(제주 본점)은 육지의 프랜차이즈에 비해 오히려 메뉴가 간단하다. 

이른 아침 찾아오는 손님들이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메뉴 선택의 고민'에 빠지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해 놓은 것 같은 느낌. 프랜차이즈에 있는 내장탕이나 양무침, 돔베고기는 없고 오로지 '소고기 해장국' 단 한 종의 음식만 있다. 


프랜차이즈의 특성상 다양한 수익원을 통해 본사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고(그들도 기업이니), 높은 객단가의 메뉴를 구성해 주어 가맹점주들의 수익도 높일 필요가 있다 보니 원조집의 메뉴와는 차이를 보인다. '같은 이름의 해장국 집이지만 전혀 다른 집이 되었고, 맛도 다르다.'는 것이 '은희네해장국'을 직접 먹어본 초빼이의 느낌. 육지와 제주도의 간극이 이렇게 넓을지 몰랐다. 

참고로 제주도에서 운영되는 은희네해장국은 모두 원조집과 관련 있는 집들이다. 육지의 프랜차이즈와는 다른 원조집에서 운영하는 집들이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관련된 소송 부디 잘 해결되시길 바란다.   

 


[메뉴추천]

1. 방문 시 : 소고기 해장국 + 소주(미소)

   - 제주도민 분들은 아침 일찍인데도 미소(미지근한 소주)를 드시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가게 앞 3~4대의 주차가 가능하지만 경쟁이 심하다. 가게 주변의 이면도로변에도 주차를 할 수 있으나 

   굉장히 자리를 잡기 어렵다. 인근의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할 듯하다.

2. 월~수, 금 06:00~15:00, 토일 06:00~14:00(본점 기준) / 목요일 정기 휴무

3. 참고

   - 서귀포 중문, 제주시 노형점, 제주시 조천읍에 분점이 있다. 서귀포 중문점의 경우 06:00~24:00까지 영업

     한다. 그러나 가급적 본점을 방문하시는 걸 추천드린다. 

4. 여행 및 관광정보

   - 인근 노포 : 범일분식(남원읍), 영해식당(대정읍), 재벌식당(도령로), 삼보식당(서귀포), 태광식당(탑동

      로), 송림반점(관덕로), 유리네(연동), 삼대전통고기국수(신대로5길), 금복식당(동문시장), 만부정(사장

      길), 골목식당(동문시장) 등.  

   - 제주도의 유명 해장국집으로는 미풍해장국(삼도이동), 모이세해장국(연북로), 우진해장국(서사로) 등이 

     있다. 

   - 인근에 동문시장, 관덕정, 제주목관아 등이 있고, 용두암도 인근에 있다. 

   - 제주도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제주 올레길을 모두 걸어보시길 권한다. 초빼이의 경우는 서귀포

     방면의 올레길을 모두 걸어보았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제주도 전체에 올레길이 운영되고 있다.

   - 한라산 등반을 원하신다면 개인적으로 겨울 등반을 권한다. 허리높이까지 눈이 쌓인 한라산 등반은 

     쉽게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준다. 또한 한라산의 경우 눈길 산행이 조금 덜 힘들다는 점도 있다.    

   -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제주방주교회도 추천한다.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건축가의 

     상상력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기회이다. 

   -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도 추천. 한국의 회화계를 대표하는 작가 김창열화백의 그림을 좋아하신다면 시간

     내어 찾을만하다. 



* 참고 [은희네 해장국 소송 관련 요약] 


2016년 은희네 해장국의 대표인 이은희 씨의 차남 '고'모씨는 프랜차이즈 회사를 설립하고 전국적인 사업확장을 고민하던 중 같은 아파트의 주민인 '강'모씨와 동업을 결정, '보성코리아'를 설립한다.

초기에는 은희네 해장국과 '강'모씨의 지분율이 같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었는데, 가맹점포 수 제한을 통한 품질 관리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며 동업 관계에 이상이 생겼고, 2017년 하솔 F&B(구 보성코리아)에 본점 소유 지분(30%)을 모두 넘기고 은희네 해장국은 '제주도 외에 모든 지역에서 은희네 해장국 점포를 내거나 레시피 등을 다른 사업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는 약정'을 맺게 된다. 


보성코리아의 강대표는 이에 따라 본점에 1억 5천만 원을 지급하고 2022년 10월까지 매월 100만 원씩을 로열티로 지급하며 본점이 이를 어길 시 손해배상 소송을 한다는 조약도 추가하게 된다. 은희네 해장국 대표의 차남 '고'씨는 불리한 조건이 포함되었지만 자본금 납입 지연 등의 본점 측 귀책사유도 있어 '강'씨의 요구를 수용하고 약정을 체결하게 된다. 


이때부터 '은희네해장국'은 상표권이 '하솔 F&B'로 넘어가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은희 대표는 자신들의 상표로 영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지만 '해당 약정'으로 인해 패소하게 되었고 이 상황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하솔 F&B는 창업주 측의 요청으로 1억 5천만 원의 지분양도 대가와 5년간 월 100만 원의 로열티를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하였고, 소송 전까지 가맹점 수 제한에 대해 들은 적이 없으며, 가족의 투병 관련 내용은 프랜차이즈 동업 이전에 발병한 것이라고 언론조정위원회에 반론보도 하였다.   


*자료출처 : 주간한국 '"가업 돌려달라"...제주3대 해장국 노포의 절규', 22.07.18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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