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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암이라고? 설마 아니겠지….

힐링미 암환우 수기

by 힐링미

종양표지자 수치가 처음 건강 검진 결과지를 받았을 때보다

정밀 검사를 위해 병원을 옮기며 검사할 때마다 수치가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설마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지속되었다.

기다리던 수술 후 입원 중에도 악성이 아닐 수 있다고… 수술 중 실시한 응급 조직 검사 결과 악성이었음에도 아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내 마음 깊은 곳의 바람이었을 테지만, 의사 선생님은 과묵했고 내가 희망적인 말을 할 때마다 “그렇게 되면 나도 환자도 좋죠”라고만 하셨다.


그럼에도 결국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나왔던 조직 검사 결과지를 보시고는 교수님은 “드디어 나왔구나” 하시면서 “응급 조직 검사 결과와 같은 악성이네요.”라고, 난소암 2기를 확진하셨고, 항암을 말씀하셨다.




ⓒunsplash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난소 난관 자궁 전체 다 적출했으면 암은 다 제거됐는데 왜 항암이 필요한가요? 2기라서 그런가요?”라고…. 선생님은 “난소암은 1기도 재발률이 30퍼센트라서 6회 표준 항암이 반드시 필요하고 나중에 표적을 감안해서 유전자 검사도 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이미 내가 걸린 암의 원인 발생을 다 파악하시고 치료 과정을 다 결정하신 듯하였고 나와 남편은 그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 채 멍한 상태였다. 최악의 사태가 오고야 마는구나, 라는 절망 외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 나이 49세… 10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나는 이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암 환자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내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나의 직장 생활과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막막하기만 했다.


나는 단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unsplash

수술로 인한 회복 시간보다는 내 마음을 추스르고 다잡는 시간 그리고 다가올 달라질 인생에 대한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할 시간, 달라질 인생을 받아들일 만한 용기. 그리고 그 밖의 주변 정리, 항암을 위한 준비 등… 그리고 그 순간 암 수술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많은 일들을 생각했다. 분양받은 집의 입주, 기존 아파트 매도, 그리고 이미 잡혀 있던 해외 출장까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의사 선생님께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항암은 천천히 했으면 한다고…

교수님이 참담한 나의 기분을 읽으신 걸까?

2기니까 진행성은 아니니 그러자고.


그리고 나는 약 4주간의 시간을 가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쁘게 그리고 해야 할 일을 다 처리하며 지냈다. 대출도 실행하고 새집으로 이사도 했고 복대를 차고 일주일간 해외 출장도 다녀왔으며, 기존 집도 매도하고 많은 일을 처리했다.




ⓒunsplash

무엇보다 회사 일을 고민하며 휴직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나의 소중한 그리고 가장 큰 부분이었던 일을 떠나 살 수 있을까 두려웠다. 사회와 단절된 내 자신이 암울한 투병 생활을 이겨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인터넷 카페에 경험자들에게 질문도 해보고 어느 교수님의 유튜브 강의도 들어보았다. 나는 고민 끝에 100% 재택근무로 바꾸어 당분간 일을 계속해 보고 싶다는 의견을 회사에 전달했고, 회사 매니지먼트는 흔쾌히 받아들여 주었다. 나의 병에 당황해하며 걱정해 주셨고 일은 조금만 하라고도 말씀해 주셨다. 과일바구니도 보내주시고 가끔 안부 연락도 주셔서 나는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할 일을 해 나가며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그리고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는 날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항암을 하기로 단단히 결정하고 다른 환우분들이 알려주는 항암 전 필요한 준비를 했다. 치과 스케일링도 하고 일생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눈썹 문신도, 가발도 준비했다. 나는 더 씩씩해지기로 했고 전과 다름없이 사람들과 통화하고 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넌 어쩜 평소처럼 멀쩡하냐고, 말도 잘하고 밝을 수가 있냐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1차 항암 후 3주간 부작용을 관찰하며 내 몸의 변화를 파악했고 잘 먹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했다. 일상을 살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암제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진 내 몸은 호중구가 바닥을 치고 코로나에 걸려 약에 의존해 회복하는 등 상태가 안 좋아졌으나 다른 큰 이벤트는 없음에 감사하며 내 몸이 주는 신호를 더는 무시하지 않고 잘 살피게 되었다.


2차 항암부터는 요양병원이라는 신세계를 알게 되어 입원 생활하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양질의 식사와 운동 시설, 치료 시설에 의존하며 수월한 항암 극복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고, 다른 환우분들과 고통을 공유하며 이렇게도 살길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또 감사하게 되었다.


3주마다 5분 이내로 외래 진료를 봐주시는 본원 교수님보다, 매일 회진을 도시면서 나를 살펴주시는 요양병원 원장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은 의지가 되었다.


3차 항암까지 마친 나는 나의 항암 부작용의 패턴을 익히 알기에 컨디션을 조절했다.

직장 사람들과 미팅도 하고, 외식도 하는 등 조금씩 세상과 소통을 다시 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되었다.





사회에서 인지하는 '암 환자'는 무게가 매우 무겁고, 불안한, 그리고 어떤 불완전한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늘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아간다. 소통하고 노력한다.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감에 감사한다.


ⓒunsplash

사회에서 인지하는 '암 환자'는 무게가 매우 무겁고, 불안한, 그리고 어떤 불완전한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늘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아간다. 소통하고 노력한다.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감에 감사한다.


암을 가지게 된 나는 이전의 삶과 다른 현실에 놓여있지만, 여전히 평상시의 나로 살려고 노력한다. 나의 내면은 달라졌으나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여전히 적극적이고 뭐든 잘하고 활발한 모습으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하루가 길어 더 알차게 하루를 살게 하는 한 요양병원의 라운지 귀퉁이에서…….









*'이*주' 님이 보내주신 힐링미 암환우 수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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