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환자로 지낸 3년여의 시간들 (2)

힐링미 암환우 수기

by 힐링미
ⓒunsplash
요양병원?
그건 거동 못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누워만 계시는 곳 아닌가?

그 어느 때보다 중독자 수준으로 커뮤니티 게시판을 서칭 하던 중,

요양병원? 그건 거동 못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누워만 계시는 곳 아닌가?

아.. 요즘 같은 암환자 춘추전국시대(?)에는 호텔같이 케어받을 수 있는 병원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문화적 쇼크를 받았다.

그동안 내가 암환자가 아니라서 몰랐던 것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아니 영영 몰랐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ㅎㅎ


서울만 해도 이렇게나 많은 요양병원, 한방병원들이 넘쳐나는데,

누가 봐도 커뮤니티에 광고성 후기로 올라온 글과 사진을 보니 더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항암 받고 단기로라도 요양병원에 가서 쉬는 게,

가족들에게도 나에게도 서로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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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선택의 문제다.

옷이나 신발 하나를 사도 최저가, 후기, 별점순으로 낱낱이 파고들어

고르고 고르는 피곤한 파워 J형인 나에게 한줄기 빛 같은 앱을 알게 되었다.

바로 힐링미였다.

이곳저곳 전화해서 일일이 문의할 필요가 없었다.

가뜩이나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은데 이것만으로 얼마나 신세계인가!


원하는 병원에 상담신청 해놓으니, 상담실장에게 연락이 왔다.

궁금한 것들을 미리 메모해 두어 상세히 물어보고 그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입원했다.

8번의 항암이 있었으니, 몇 군데 병원을 경험해 보고 제일 나와 잘 맞는 곳에 정착 아닌 정착을 하였다.

병원 입원을 위해 앱을 이용했지만,

입원 중 심심해서 자주 들여다보게 되니 어라, 뭐가 소소한 이벤트 같은 게 많았다.

그중 자택에서 요양병원까지 픽업해 주는 이벤트를 신청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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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 집이 입원예정인 요양병원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남편이 내 입원을 위해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니 반신반의하며 신청했는데 선정이 되었다.

예정된 입원날 시간에 맞춰 새 차느낌 폴폴 나는 승합차가 나를 데리러(모시러?ㅎㅎ) 왔다.


왜인지 당연히 운행을 하시는 직원분이 따로 계시는 줄만 알았는데,

가는 길에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다 보니 아니 힐링미 대표님이라 신다.

직접 현장에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려고 이런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내 기준 정말 신박한 서비스가 아닐 수 없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저 멀리 지방에서부터 몇 시간 거리도 픽업 서비스를 하고 계시더라.

보통 마음이 아닌 이상 쉽게 실행할 수 없는 서비스 같았다!




anca-gabriela-zosin-bMOnYbmQxHA-unsplash.jpg ⓒunsplash
머리 빠짐, 식욕부진, 메슥거림, 관절근육통,
부종, 미각상실 등등 온갖 부작용은 다 겪었다.

8번의 항암은 약 5개월에 걸쳐 진행했는데,

머리 빠짐, 식욕부진, 메슥거림, 관절근육통, 부종, 미각상실 등등 온갖 부작용은 다 겪었다.

그래도 미리 알고 겪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그래도 서럽고 힘들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unsplash

항암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날이 생각난다.

진단받기 전까지 10년 넘게 함께 회사 다니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항암 중 그나마 컨디션이 괜찮은 날, 요양병원에서 잠시 외출 나와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그녀들은 내가 회사 다닐 때와 똑같이 예뻤고, 머리카락이 있었고, 여느 직장인처럼 회사 흉도 보았다.

그리고 1시 반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나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강남 빌딩숲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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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창문에 낯선 모습의 내가 보였다.

어울리지도 않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는, 약 때문에 퉁퉁 부은 얼굴

눈썹까지 다 빠져서 어딘가 이상해보이는 얼굴

나도 원래라면 저 빌딩숲으로 돌아가 식곤증을 참으며 오후근무를 시작했을 텐데..

터지는 눈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부럽고 서럽고 슬펐다.


나도 원래라면 저 빌딩숲으로 돌아가
식곤증을 참으며 오후근무를 시작했을 텐데..
터지는 눈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unsplash

항암이 몇 개월 차 되니, 처음엔 나를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조심스레 다뤄주던 가족들이

점점 '얘 항암 그래도 좀 할만하구나?' 라고 생각하는 게 조금씩 보였다.

심지어 엄마는 '나는 항암이라는 게 티비에서 보고 더 심하게 힘든 건 줄 알았는데, 너는 그래도 덜한 것 같네'라는 어이없는 말까지 했다.


괜찮은 게 아닌데, 힘든 모습 보이기 싫어서 일부러 부작용 심한 시기에 맞춰 요양병원 입원한 건데,,

부작용 있을 때마다 다 티 내고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어야 하나,, 참 씁쓸했다.

방사선 치료까지 다 마친 후,

페마라와 루프린 주사만 맞게 되었을 때엔 그들에게 난 마치 완치된 환자처럼 보인 듯하다.




<유방암 환자로 지낸 3년여의 시간들 3편에 계속 ….>









*'백*원'님의 힐링미 암 환우 수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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