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암이라는 말을 들은 날, 나는 울지 않았다.

힐링미 암환우 수기

by 힐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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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암이라는 말을 들은 날,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보험 약관, 실손 한도, 입원비, 항암 주기, 회사 연차.

그 순간부터 감정보다 숫자가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마처럼 주저앉을 시간은 없었다.

우리에겐 다섯 살 딸이 있고, 당장 다음 달 카드값과 병원비가 있었다.


진단 후 첫 일주일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대학병원 예약을 잡고,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수술 가능 여부를 듣고, 항암 계획을 세웠다.

병원 복도에서 보호자들은 모두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들 담담한 척하지만 눈빛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설명하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척했지만,

나오자마자 메모해 둔 내용을 다시 검색했다.

“이 수치면 심각한 건가”, “이 약 부작용은 어느 정도인가”.

그날 이후로 검색창에는 늘 ‘암’, ‘항암’, ‘생존율’ 같은 단어가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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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현실이 시작됐다.

딸아이는 엄마를 찾는다. “엄마는 왜 맨날 병원 가?”라는 질문에 매번 같은 답을 한다.

“엄마 아파서 치료받는 거야. 금방 괜찮아질 거야.” 거짓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말을 반복한다.

아이가 잠든 밤이 되면 그제야 마음이 무너진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내가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되면? 이런 생각이 들면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다음 날 아침이면 알람이 울리고, 아이 등원을 시키고, 출근을 해야 한다.

삶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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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이 시작되자 일상은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치료 전날엔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하고, 치료 당일엔 구토를 대비해 비닐봉지와 물티슈를 챙긴다.

항암 후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하루 종일 누워 있다.

입맛이 없다고 해서 이것저것 만들어보지만 몇 숟갈 못 먹고 내려놓는다.

그럴 때마다 속상하지만 티 내지 않는다. 대신 다음 끼니에 뭘 해볼지 검색한다.

“항암 환자 식단”, “입맛 없을 때 먹는 음식”. 그렇게 하나씩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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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돈 이야기도 현실이다. 치료비는 생각보다 빠르게 쌓인다.

실손보험이 있어도 선납해야 할 금액이 있고, 비급여 항목은 그대로 부담이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횟수가 늘었다.

괜히 커피 한 잔도 줄이게 되고, 필요 없는 구독 서비스를 해지했다.

누가 보면 소소한 절약이지만, 이런 것들이 모여 마음을 조금이라도 안정시킨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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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처음으로 인정했다.
나도 환자만큼은 아니지만, 함께 아픈 사람이라는 걸.

가장 힘든 건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다.

아내 앞에서는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다. 아내가 더 힘드니까.

그런데 어느 날, 병원 주차장에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유도 없이 그냥 터졌다.

그날 처음으로 인정했다. 나도 환자만큼은 아니지만, 함께 아픈 사람이라는 걸.

그 이후로는 가끔 아내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나 오늘 좀 무섭다”, “오늘은 좀 지친다.” 그러면 아내도 말한다.

“나도 그래.”

이상하게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면 서로 덜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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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좀 무섭다”, “오늘은 좀 지친다.”
그러면 아내도 말한다.
“나도 그래.”
이상하게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면 서로 덜 외롭다.

우리는 여전히 미래를 확신하지 못한다.

완치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계속 불안할 것이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오늘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항암이 없는 날엔 아이와 셋이 저녁을 먹고 동네를 걷는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웃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잠시나마 병이라는 단어를 잊는다.

집에 돌아와 셋이 나란히 누워 있는 시간이, 요즘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큰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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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이라는 말은 아직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그 과정 한가운데에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시간을 지나며 가족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별한 이벤트나 큰 행복이 아니라, 아무 일 없이 하루가 끝나는 것.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드는 것. 그런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는 안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치료 결과를 기다리는 날이면 심장이 조여 오고, 예상치 못한 비용이 나오면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옆에 서 있으려 한다.

남편으로서, 보호자로서, 아이의 아빠로서. 완벽하게 강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도망가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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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출근했다가, 퇴근 후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 하루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하루씩 버티고, 하루씩 살아낸다.

아마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사랑의 방식일 것이다.










*'김*기'님이 보내주신 힐링미 암 환우 수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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