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통역사의 야매 이론 (4)
Input을 가치사슬 단위로 고려하는 것이 효율적인 선택의 지름길이며, 결국 통역사로서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개인마다 해답을 내야 한다.
통역사는 언어전문가가 아닌 이해전문가입니다. 언어의 장벽을 해결하려면 결국 다른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솔루션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통역사라는 직업도 상당히 난해합니다. 그럼 통역사로서 이해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를 토대로 소통 전반에 대한 인사이트도 얻을 수 있을까요?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고민을 정리해서 야매통역사만의 야매 이론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두고 어디까지 통역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했는데, 앞선 포스팅에서는 일단 ‘다 고민한다면 메시지의 밸류체인 전반적으로 현장 내외에서 Input을 수집할 수 있다’는 답을 냈습니다.
가치사슬을 기반으로 ‘어디까지 통역할까’라는 의미는 곧 어느 가치사슬까지 커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치환했다고 하는 이유는 다양한 Input을 그냥 리스트로 나열하면 굉장히 긴데 이젠 5가지의 사슬 중 고를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번 포스팅은 각 가치사슬을 간략히 살펴볼 것입니다. 통역의 입장에서 특정 가치사슬을 ‘커버한다 ‘는 의미는 사슬 별로 발화자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질문을 묻고, 그 해답을 클라이언트와 배경지식 등을 통해 구하는 것입니다. 각 사슬별 핵심질문에 대한 해답은 발화자의 메시지에 대한 주요 힌트를 담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확정 짓는 것입니다.
Talking 단계는 모든 통역사가 Input으로 받아들입니다. 핵심 질문은 당연하게도 ‘발화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귀에 꽂히는 발화자의 발언들을 토대로 의미를 파악해 Output으로 변환시킵니다.
가치사슬을 한 단계 거슬러 올라가 Verbalizing 단계를 보면, ‘발화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표현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Talking 단계는 주어진 발화자의 표현에만 집중했다면 Verbalizing은 그 표현을 확정하기 위한 고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도를 파악하여 Output 단계에서 참고하며 통역을 합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Thinking 단계가 나옵니다. 모든 발화는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있습니다. 배경조사, 사전 브리핑, 뉴스를 포함한 여러 사전 노력과 현장에서의 노력으로 발화자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실제 메시지를 파악하고 이를 통역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Talking 만을 커버하는 통역사라면 '발화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만을 고려하여 통역을 하는 반면, Thinking에서 Talking까지 발화자 (Speaker) 측을 전반적으로 input으로 고려하는 통역사는 발화된 내용 (Talking)을 넘어 발화자의 취지와 생각을 같이 고려하게 됩니다.
여기서 추가로 청취자의 단계도 살필 수 있습니다. Input을 통역해야 하는 내용으로만 생각하면 청취자를 고려할 이유가 없지만, Output을 낼 때 고려해야 하는 제반 사항들로 넓힐 수 있습니다.
Listening 단계는 말 그대로 청취자가 듣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Output을 내고 있는데 청취자가 못 듣고 있다면 통역사가 무시하고 얘기하기보다는 이슈가 해소될 때까지 잠시 대기하는 것도 센스입니다. 혹은 신난 청취자가 통역사의 Output을 끊고 본인 말을 이어갈 때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전달하지 못한 내용은 그다음 통역 때 붙여서 전달해 주는 편입니다.
Understanding 단계는 청취자가 듣는 것 이상으로 내가 통역한 내용을 알아듣고 있는지를 살피고, 이를 통역 Output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군 약어가 있습니다. 군대는 약어 없이는 소통이 전혀 안될 정도로 약어 사용이 팽배하고 익숙한 조직입니다. 그런데 공군 약어를 해군이 모르기도 하고, 정부인사 혹은 민간이라면 더더욱 모를 수 있습니다. 약어를 쓸 때 청취자가 못 알아듣는다면 클라이언트가 약어를 썼음에도 풀어서 쓰는 것이 Understanding을 통역의 Output으로 고려하는 예시입니다. 참고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제가 공군에서 통역장교 교육생으로 통역 시험을 볼 때 모든 약어는 풀어쓰게 되어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통역사들이 어느 정도는 유연하게 각 단계를 오가며 통역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상황마다 적절히 Input을 조절할지는 아직 체계화되지 못한 바, 이렇게 각 가치사슬로 나눠 생각해 보면 자신만의 ‘알잘딱깔센’ 레시피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