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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29.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3. 현대 폭력성에 대한 고찰

서울시 노원구의 한 다가구 주택에서 50대 남성이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이웃집 사람으로 7개월 전 도끼로 난동을 부려 구속된 후 형을 마치고 풀려나 이 같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주민들은 평소 범인 A 씨의 폭력성에 불안감을 느꼈다고 지금까지의 고통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날의 이와 같은 기사를 접하며 작금에 벌어지는 이 사회의 폭력성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폭력적이 되었는가를 말입니다.



  요즘 저희의 교육 수준은 예전 부모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그런 높은 지성과 인격을 갖춘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와 같은 폭력성의 강도는 그들보다 훨씬 높아지는 것일까요.



   그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저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장을 찾으며 문득 그 의문의 해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참고로 이 깨닮음은 다분히 제 개인적인 것으로 전체를 대상으로 일반화할 수 없음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유년은 시골 촌락 생활에 바탕을 둡니다. 그렇다 보니 도심에서의 장례가 어떻게 치러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고 자란 시골에서는 그 시절 초상이 나면 집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대문에 상중이라는 등을 달고 안방에 빈소를 마련해 조문을 받았습니다. 마당에는 천막을 쳐 문상객을 대접했고요. 그렇다 보니 우리 같은 아이들도 자의든 타의든 장례식을 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발인 날이 되면 마을을 빠져나가는 꽃상여와 시신 안장 후 무덤을 만드는 봉분 쌓는 것까지 보게 될 때도 있고 말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접한 이런 촌락에서의 장례식 이야기를 하는 것은, 도시화된 요즘의 장례식과는 달리 시골마을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싫든 좋든 아이들이 그 의식을 보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죽음이라는 본질에 대한 무거운 철학적 사고를 한 번씩 가져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떼가 잘 입혀진 무덤가에 친구들과 뛰어놀며 삶과 생이라는 실체적 고민 또한 당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습니까. 모든 장례식이 병원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직계가족이 아닌 다음에야 어린아이들이 장례식을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출상 날 발인 또한 꽃상여가 아닌 리무진차량으로 새벽 일찍 이루어지다 보니 주위의 아이들은 장례식이 있었는지 조차도 모릅니다. 그런 이유들로 요즘의 아이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마음을 가져볼 기회가 별로 없게 된 것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시골에서는 초상이 일어나면 동네에서 자체적으로 일을 치르기 때문에 모든 이웃 어른들이 힘을 합쳐 일을 진행합니다. 동네는 출상이 끝나고 무덤이 만들어져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 그 어떤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비록 망자의 한은 못 풀어 주더라도 그러한 자중으로 짧은 생을 함께 살다 간 떠난이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어른들의 인간애는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고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도 초상이 끝날 때까지 놀이는 물론 그 어떤 장난도 치지 않습니다. 그 침묵과 행동의 자재가 바로 사람의 생명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로 각자의 내면에 잠재한 폭력성을 잠재운 이유가 아니었을까라고 저는 생각해 본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요즘 세대의 폭력성이 이웃과의 교류가 없는 단절된 사회 분위기에 폭력과 범죄가 주된 내용의 영화나 TV프로그램 또는 게임에 등장하는 가학적인 장면들을 이유로 꼽습니다. 일면 그들의 말에 일리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유를 조금 달리 생각합니다. 현대와는 확연하게 달랐던 예전의 장례 문화에서 말입니다. 공동체를 벗어난 개별 주거의 시대 촌락에서처럼 아이들이 죽음을 생각할 기회의 부재 말입니다.



  물론 현대의 폭력성이 이 하나의 이유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분명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현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린 시절에 접할 수 없는 이런 도시의 삶이 바탕이 된, 시골과는 확연히 바뀐 요즘의 장례 풍경들이 그 이유들 중 큰 하나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 것입니다.


​202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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