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Jun 30.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4. 팀장이라는 단어의 족보

나랏말싸미 달랐다. 문자와 서로 사맛디 않았다. 어리석은 백성이 니르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에 새로운 글을 맹글었다. 훈민정음. 바로 한글이다.



   현대 사회는 각 나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집합체입니다. 손바닥 크기의 전화기 하나로 세계 어느 곳의 모습이든 다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세계는 자신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이 쉽게 연결되는 만큼 문화 또한 쉽게 혼합되어 버리는 복합 문화의 세상이라 해도 빈말은 아닐 것입니다.



   예로부터 중국과 인접한 우리는 지리적 특성상 늘 한문의 영향권에 있었습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민족 고유의 언어인 한글을 창제했지만 한문 비중은 아직까지도 국어에서 51%나 차지합니다. 이는 국어 전체의 기준이며 한자어인 일반 명사만 따로 놓고 보면 그 비중은 무려 70%나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민족의 말과 글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근래에는 많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아이들 이름은 한문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이러한 우리의 한문 의존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일대 변화를 맞습니다. 한국 전쟁에서 연합군과 함께 우리에게 도움을 준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며 사회에 절대적이었던 한문 사용이 점차 영어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많은 상점들의 상호가 영어로 바뀌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는 제품들 이름 역시 이제는 대부분이 영어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끈질기게 옭아 왔던 한문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안타깝게도 한글이 아니라 여전히 타국의 언어인 영어로의 변환입니다.



  아무튼 중언부언 말이 길어졌는데, 한문과 영어가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서는 이쯤 해두고 그럼 본격적으로 오늘의 주제 “팀장”이라는 말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우리 사회에서 운영되는 회사 같은 경우 여러 직위들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대 기업 같은 경우 사원부터 시작해 대리, 과장, 부장, 상무, 전무, 이사, 사장 그리고 회장에 이릅니다. 물론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 직위들의 뜻은 모두 다 한문에 바탕을 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사회생활을 하며 접하게 되는 이 많은 직위들 중 이와는 별개로 팀장이라는 호칭을 자주 듣게 됩니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 모두가 별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팀장”이라는 용어 말입니다.



   “팀장.” 그렇다면 “팀장”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대리나 과장, 부장이라는 회사의 직위들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요. 만약 이것이 직위라면 이 명칭은 한문일까요 영어일까요.



   사실 얼핏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이 명칭은 직위라기보다는 직책의 구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명확히 구분 지어 사용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편의에 따라 직위나 직책에 아무렇게나 막 사용하기 때문에 말이죠.



   물론 그렇다고 이 호칭이 딱히 문제가 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아무렇지도 않다는 이 용어를 가지고 이렇게 구구절절 장광설을 펼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럼 그 이유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팀장의 앞 글자 “팀”은 그룹, 단체를 뜻하는 영어의 team입니다. 그렇다면 뒷 글자인 “장”은 무엇일까요. 이 글자는 영어가 아닌 한문의 길장으로, 여기서는 “우두머리”의 뜻으로 쓰입니다. 다시 말해 팀장은 그룹이나 단체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첫 글자는 영어요 두 번째 글자는 한자인데 우리는 그것을 또 한글로 표기합니다. 즉 이 팀장이라는 단어는 미국, 중국, 한국이라는 3국 언어의 합작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가벼운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조깅”의 반대말이 “석깅”이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우스개 소리였지만 영어인 조깅의 “조”가 한문 “아침 조”와 발음이 같아 생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를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것이 이 말을 정말 맞는 말로 착각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스트리밍 시대에는 약어, 은어, 속어와 같은 비 언어들이 무수히 생겨납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그와 같이 발 빠르게 변화하는 언어들을 제때 따라간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젊은이들과의 대화에서 의도치 않게 단절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언어의 습성이라는 게 그런 것이기에 우리가 그러함을 쫓아가지 못한다고 애꿎게 타박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언어는 생장과 소멸, 연결과 단절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생장과 소멸 속에 끝내 사멸되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언어는 결국 그 사회에서 정식 언어로서의 지위를 차지합니다. 나는 우리가 별 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는 이” 팀장”이라는 단어도 바로 그중 하나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이 단어가 최초 누구로부터 생겨 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는 분명 어였한 한국어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아무튼 이유야 어찌 되었던 팀장이라는 말을 미국인에게 들려주면 그들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팀장을 매니저나 팀리더 정도로 쓰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중국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기 나라만의 명칭이 있을 것이고 팀장이라는 말은 분명 쓰고 있지 않을 것이니까요.



   영어로 매니저나 팀 리더가 아닌, 또 한문으로 단장이나 수장이 아닌 팀장. 그렇다고 저는 이 족보가 확실치 않은 용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건 엄연한 우리 문화 속에서 태어난 우리들의 언어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영어와 한문 그리고 한글이 뒤엉킨 이 단어를 쓰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예로부터 약소국으로서 강대국들에 치이며 살아야 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긴 것 같아 못내 마음 한쪽이 씁쓸해져 옮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20. 11. 9

작가의 이전글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