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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05.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Zero 연대기 5-스물

  4년 6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집으로 내려온 다음부터 잠만들면 악몽이 이어졌다. 공포에 놀라 눈을 떴을 때는 항상 새벽 두 시였다. 악몽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다. 나는 두 시 이전에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했다. 새벽까지 잠을 참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어쩌다 두 시 이전에 잠들 때는 또 어김없는 악몽의 시간이었다.



  할머니가 무당이셨다. 큰 무당은 아니고 그냥 작은 동네에서 일을 봐주는 정도의 그런 무당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 가면 방에 신당이 있고 그곳에 기도를 드리는 할머니를 가끔 보았다. 할머니의 영적인 행동과 과학적 이성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심령 현상을 여러 번 봤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라 그게 할머니가 무당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악몽이 이어질수록 나는 내가 무당이 되려고 이러는 것이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하루하루 말라갔다. 잠만들면 찾아오는 악몽의 두려움은 극심 그 자체였다. 한 번 마음에 들어온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었다. 기가 약하고 여린 성격이라 그러함은 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눈에 보이는 공포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눈에 보이는 공포는 눈을 감거나 피하면 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는 불투명해서 뇌 속에 살아 움직이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 효과가 없었다. 나는 내가 무당이 될까 봐 두려워 그런다는 말을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내뱉으면 내가 진짜 무당이 되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몇 년을 혼자 삼키며 속앓이 했다. 상태는 점점 심해져 갔다. 대중이 모여 있는 곳에는 되도록이면 가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들 앞에서 쓰러지거나 신들린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닌가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그런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수군거리며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버스 타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스물일곱이 되어서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당시만 해도 정신과는 요즘처럼 이런 오픈된 인식이 아니었다. 감추어야 할 약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직접 내 발로 찾아갔다.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갔다.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의사에게 나의 상태를 이야기했다. 내가 무당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는 이야기는 몇 년이 지난 후에 할 수 있었다. 그 감정이 내 정신병의 제일 큰 이유였는데 선뜻 말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이야기를 꺼 낼 수 있었다. 의사는 불안, 강박, 공황 장애 의심이라 했다. 그렇게 이십 년이 넘었다. 나는 아직도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이 일은 내 삶이 다하는 날까지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은 이제 한 달에 한 번 정도 간다는 것이다. 그 사이 젊던 의사도 늙었고 젊던 나도 늙었다. 그렇게 나는 이십 대 후반부터 정신과를 다니며 오십이 다된 지금까지 이렇게 버티고 있다.


2023.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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