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Jul 04.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73. 가식과 위선(전쟁터의 병원)

 대통령이 UN연설에서  한국과 북한의 종전선언을 언급했습니다. 만약 대통령의 선언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70년이라는 전쟁과 휴전의 긴 불안함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은 UN종전선언 연설을 마치고 미국 하와이에 안장되어 있는 국군 장병 전사자 유골을 수습해 조국의 땅에 돌아와 봉안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부모와 처는 물론 자식까지 버려야 했던 그들의 희생에 대한 한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는 것 같아 가슴 벅찬 마음은 이루다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전쟁. 전쟁이라는 것은 나라를 뺏고자 또는 자신들의 이권을 관철시키고자 인간이 인간의 이기심으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살육의 불법 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몇 천년동안 끊이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우리 인류가 자행하고 있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전 세계에서 인류가 전쟁 없이 지낸 날짜는 딱 4일이라고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4일을 제외하고는 어딘가에서 항상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2021년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은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살육의 참상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쟁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베트남전 그리고 한국전쟁과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의 종군기자들이 기록으로 남긴 사진과 영상 자료들의 단편들이 고작일 뿐입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제가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이 저지르는 이런 비인륜적 행위 앞에 실로 가소롭기 그지없는 우리들의 가식적인 위선에 대해서 한 번 말해보고 싶어서입니다. 그럼 제가 가식이라고 하는 우리의 그 위선은 무엇일까요.


  전쟁터는 포탄과 총알이 난무하는 곳입니다. 그러한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혈투는 처절합니다. 그렇다 보니 많은 군인들이 전장에서 죽고 부상을 입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전장에서도 한 가지 불문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쟁 중 전쟁터에서 병원과 위생병, 구급차 등 의료인과 의료시설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 부상병들 또한 사살하지 않고 적절한 치료와 대우를 해 준다는 말 같지도 않은 암묵적 약속에 대해서 말입니다.


  전쟁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인간의 목숨을 강제로 빼앗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 서로가 적이 되어 상대의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당사국들은 적이라고 규정된 상대를 섬멸하는데 필요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전쟁에서 병원과 의료진 그리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부상당한 병사들은 공격하는 게 아니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논리라는 말입니까. 병원 바깥에서는 부상병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다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확인사살에 민간인까지도 죽이면서 병원과 의료진 그리고 병원 안에 있는 부상병은 공격해서도 안되고 죽여서도 안된다는 이 원칙을 도대체 누가 처음 지껄였다는 말입니까.


    이해를 위해 간단한 예로 전투요원이 부상을 당해 군 병원에 누워있다고 쳐보겠습니다. 이때 경미하거나 중상이거나 부상의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비록 경미한 부상이라도 병원에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전쟁 중 의료인과 병원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군복을 입고 똑같은 전쟁터에서 똑같은 전쟁을 치르는데 병원 테두리 바깥에 있으면 중상자이어도 죽여도 된다는 것입니다. 단지 담하나 쳐진 병원 안에 있고 없고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도대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까. 병원 안에 있는 군인이나 병원밖 야전의 군인들 모두 같은 군인이고 목숨 또한 같이 하나밖에 없는 것인데 말입니다.


  비록 전쟁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인간으로서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스스로의 죄악을 조금이나마 정당화하고 싶어서일까요. 아니면 자신들이 저지른 인류에 대한 죄를 그렇게라도 해 자신들이 인도주의 자라는걸 스스로에게 어떻게든 위로받고 그 죄를 속죄라도 받아보고자 함일까요.


  저는 19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작전 수행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그 사건은 남한지역에서 벌어진 소규모 침투 병력과의 국지전이었습니다. 잔당을 소탕하기 위한 교전에서 아군과 적군 그리고 민간인이 여럿 죽었습니다. 그와 같이 약 석 달간에 걸친 작전을 전개하며 저와 동료들은 국지전이 이 정도면 과연 전면전은 어떠할 것인가라며 진저리를 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면전의 전쟁은 누차 강조하지만 기본적으로 죽이고 죽는 살상 행위입니다. 즉 적군을 죽여야만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 전면전이고 전쟁인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군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적군이라고 판단되면 누구든지 가차 없이 죽이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말의 자비도 없이 서로를 죽이는 전쟁에서 병원과 의료진 그리고 병원 안의 부상병은 공격하지도 죽이지도 않는다는 원칙은 그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가식이자 허울 좋은 위선이며 자기기만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21. 9. 27

작가의 이전글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