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Jul 03.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28. 애프터서비스

물건을 쓰다가 고장이 나면 참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금을 지불하고 장만한 물건이 제대로 사용조차 되지 못하고 고장을 일으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거기에다 스스로 그것을 고칠 기술은 없고 돈과 시간을 들여 다시 기술자에게 수리를 의뢰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소비자로서 그 답답함과 짜증스러움은 굳이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애프터서비스라는 것에 유독 민감합니다. 가전이나 자동차, 전자기기등 대부분의 물건을 구입하면 먼저 애프터서비스 센터의 수와 물건이 고장 났을 시 그곳에서  얼마나 재빠르게 서비스가 이루어지는지를 따져보는데,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이런 애프터서비스에 대한 집착은 어찌 보면 병적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왜 이렇게 애프터서비스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를 나름대로 짐직해 보면, 아마 한국전쟁을 겪고 폐허가 된 국토에서 경제개발이 시작되는 가운데 부족한 기술력으로 제품을 자체 생산해 내다보니 아무래도 제품의 질이 조악하고 고장이 많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라고 추측됩니다. 그 시절 시대가 시대인 만큼 기술력이 부족한 시장에서 제대로 된 롤모델 없이 스스로 창조자가 되어 제품을 개발, 생산해 내야 했기 때문에 말이죠.



  그렇다 보니 낮은 질의 제품은 잦은 고장을 일으켰고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제품을 생산, 판매한 기업들은 그들의 불만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겠다고 이렇게 사후 서비스에 더욱 신경을 쏟은 것일 테고요. 그리고 소비자들은 그런 기업들의 배려에 무한 신뢰를 보내는 것이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기업들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이 사후 보장의 애프터서비스에 소비자들이 기만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우선 애프터서비스 센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제품에 고장이 잦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무상서비스 보증기간이 있다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무상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일부 저렴한 가격의 부속 교환정도이고 핵심부품이나 비싼 수리 같은 경우는  대부분 유상으로 받게끔 정책이 짜여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서비스센터가 많고 서비스 시간이 빠르다고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업은 우리들에게, 싸게는 몇십만 원부터 비싸게는 수천만 원에 이르기까지 결코 만만치 않은 돈을 받고 물건을 판매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비스센터가 많다고 고마워할 게 아니라 왜 이렇게 물건의 질이 떨어지냐고, 우리가 지불하는 값만큼 고장률 낮은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어 내라고 따지고 질책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제품에 고장이 잦다는 것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서비스센터를 통해 제품에 하자가 발생했을 시 서비스가 빠르고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논리로 그 약점을 교묘하게 자신들의 장점으로 둔갑시켜 버렸습니다. 그들은 처음 제품을 팔아 수익을 올리고 서비스센터를 통해 수리를 해주며 부속품 판매와 수리직원의 인건비를 더해 또다시 이득을 취합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그들을 질책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와는 반대로 이렇게 서비스가 좋다며 그들을 칭찬을 하고 있는 실정이고 말입니다.



  몇 년 전 제가 겪었던 일을 하나 집고 넘어가겠습니다. 구입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는 태블릿에 이상이 생겨 서비스 센터를 찾았습니다. 담당자는 점검을 해보겠다면서 제품을 살펴본 후 이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상이 발생해 서비스센터를 찾았는데 그는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상이 없다는 말에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하고 돌아온 저는 며칠 후 같은 증상이 발생해 다시 센터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전과 같이 역시 이상 없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직원은 저에게, 진짜 제품에 이상증세가 나타난 게 맞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어이가 없어 직원에게 “그럼 제가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을 가지고 일부러 아까운 시간과 경비를 들여 가면서까지 여길 찾아왔겠냐”라고 돼 물었습니다. 그러자 머쓱해진 직원은 아무 말 없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서비스 센터가 많고 고장 난 제품을 신속하게 수리해 주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분명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애프터서비스를 잘해주는 게 아니라 제품의 고장이 자주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적잖은 돈을 들여 물건을 구입하는 만큼 처음부터 서비스받을 일이 없게 야무지게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물건 좀 고장 안 나게, 질 높은 게 만들어 내라고 호통치고 닦달해야 할 일이지 애프터서비스 잘해 준다고 고마워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런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그저 애프터서비스 잘해주는 것에 고마워하고 있으니 제 생각에 이는 분명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0. 12. 24


작가의 이전글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