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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09.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21. 동의함

  생활 전반이 모바일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 하나로 일상의 모든 일들을 해결합니다.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힌 인간사가 작은 기계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어 버리는 단순함의 미학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모바일이라는 기기 하나로 이렇게 손쉬워진 만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개인의 정보 노출 위험은 더욱 커졌습니다. 특정 사이트에 계정을 만들거나 회원가입을 위해서는 개인정보 입력이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이니까 말이죠.



   이처럼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수집되는 개인정보는 지능화된 범죄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러한 현실의 대안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을 강화해 더욱더 교묘해지는 개인정보 노출에 의한 범죄 예방을 적극 대처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요.



  먼저 정부는 이런 노력으로 온, 오프라인 거래에 개인정보 수집을 최소화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업체 측은 소비자의 개인정보 이용 합법화를 위해 개인정보 이용 동의안을 만들어 사용합니다. “개인정보 이용 동의안”이란 여러분들도 다들 한 번 이상은 보았을, 이용 약관 끝에 명시되어 있는 “동의함”과”동의하지 않음”이라는 선택 메뉴가 그것이죠.



   온, 오프라인 회원가입을 위해서나 금융상품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접할 수밖에 없는 이 두 가지의 선택지. 그런데 저는 이 선택 메뉴를 보며 늘 드는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의함” 옆에 있는 “동의하지 않음”이라는 선택 사항이 왜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동의함”과 “동의하지 않음”이라는 두 가지 선택 메뉴가 있다는 것은 분명 소비자나 고객이 둘 중 하나를 취사 선택 할 수 있다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동의하지 않음”을 선택하면 일은 더 이상 진행 되지 않는다는데 있죠. 그렇기 때문에 고객은 좋든 싫든 결국 “동의함”을 선택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요.



   그러면 어차피 고객 입장에서는 자신이 요구하는 일처리를 위해서는 결국 “동의함”을 선택해야만 하는데 이런 현실에서 굳이 “동의하지 않음”이라는 선택 메뉴가 과연 존재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며칠 전 대출을 받기 위해 거래 은행을 찾았습니다. 대출에 필요한 구비 서류를 제출하자 은행 측은 대출 서류에 개인정보 기재를 부탁했습니다. 제가 서류에 주소와 주민등록 번호 등 인적 사항을 모두 기재하자 담당직원은 개인정보 이용을 위한 “동의함”이라고 새겨진 곳에 동의의사 표현의 체크를 부탁했고요. 사실 그때 저의 손은 “동의함”위에서 머뭇거렸습니다. 그 옆에 “동의하지 않음”이라는 선택란이 있었기 때문에 말이죠. 저는 저의 개인정보가 사용되는 게 싫어 그 “동의하지 않음”에 마음이 격하게 끌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펜을 쥔 손은 “동의함”이라는 글자로 가서 그곳에 체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제가 그 “동의하지 않음”이란 곳에 체크를 한다면 그 즉시 저의 대출 업무는 중지될 것이고 저는 필요한 돈을 구하지 못할게 분명하니까요.



   은행이나 업체 측에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분명 필요에 의해서일 것입니다. 그것은 혹여라도 사고가 발생했을 시 책임을 져야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합당하고 정당한 요구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제가 문제 삼는 것은 개인정보를 왜 요구하느냐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들의 요구가 관철되기 위해서는 “동의함”의 란에 의사표현을 해야 될 터인데 “동의하지 않음”이란 메뉴가 왜, 무슨 이유로, 무엇 때문에 존재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 “동의하지 않음”도 다 이유가 있어 만들어진 것일 텐데 현실에서 우리는 아무도 그것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결국 모두 동의를 해야 되니 “동의하지 않음”이 실질적으로 어떠한 존재의 의미도 없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동의하지 않음”이라는 메뉴를 처음부터 만들지 말 것이지 무엇하러 ”동의함” 옆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게 한단 말입니까. 애초에 선택하지도 못할 일을 말입니다. 저는 이처럼 요즘의 서류 어느 한 곳에도 빠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는 이 “동의하지 않음”이라는 메뉴를 보며, 다분히 형식에 불과한, 마치 고객에게 공정함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업체 측의 이러한 보여주기식 행정들이 저의 미천한 상식에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고 못내 못마땅합니다.


2020.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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