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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14. 2023

떠난 자리

석호정공

주인이 떠난 자리는 스산하다. 굳게 닫힌 붉은 문은 사람의 기척을 외면한다. 쇠 깎는 소리와 쇳조각을 이어 붙이는 소리로 제법 북적였을 공간은 이제 주위의 외면과 침묵 속에 조용히 잠겨있다.






석호는 동네형의 이름이다. 내가 쉰을 바라보니 석호형은 예순을 흘쩍 넘겼을 것이다. 그 형은 30여 년 전 마을 귀퉁이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은 작업장을 차렸다. 큰 부귀는 못 보고 근근이 살아가던 그 형은 언제부터인지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주인이 떠난 그 자리에는 아직도 이름을 버리지 못한 간판이 굳게 채워진 철문의 자물쇠 위에서 무감하게 지나치는 세월을 내려다본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또 머문다는 것과 떠난다는 것은 결국 하나임을 느낀다. 석호형은 아마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또 치열한 생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야간근무를 서고 퇴근하는 길. 유난히 깨끗한 겨울 아침, 살갑게 부서지는 찬 공기 특유의 햇 살 속에, 이제는 마을을 떠나 어디론가 종적을 감춘 주인 없는 석호공정 간판에 허물어져 색이 달라진 석호형 이름“ㅗ”가 유독 눈에 아린다.






산다는 것이 별것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리 고된 걸까요. 하지만 별거 없는 세상에 별거 없는 나로 태어나  별거 없는 이 세상을 만났으니 그것이 그나마 제 인생의 위안입니다.


  비록 세상은, 떠나고 허물어지는 자들로 채워지지만 그래도 또 이런 세상이 있어 오늘 허물어지지 않고 이렇게 하루를 기어이 버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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