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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15. 2023

백군

잡담

백군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성이 백가라서 백군이었고 젊어서 백군이었다. 백군은 40년 전에 마을로 이사 왔다. 슬하에는 아들 두 명과 딸 하나였다.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백군은 친구의 아버지이다.  닭똥과 돼지 똥을 싫어 나르는 일로 평생을 살았다. 나의 아버지는 백군에게 품삯을 받으며 일당제로 그때그때 일을 거들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백군은 아직도 그 일을 하고 있다.


백군의 장남은 나의 친구였다. 친구인 그도 고등학교 때부터 백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의 아버지가 백군이라 불렸기에 그도 백군이 된 것이다. 다른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어떻게 백군의 아버지가 백군으로 불리는 걸 알게 되어 백군을 백군이라 부를 생각을 했는지 돌이켜보면 그 버릇없음이 참 가당찮았다.



아침에 백군의 집 앞 빈터에 주차되어 있는 낡아빠진 고물차는 백군과 내 아버지의 생명줄이었다. 백군도 이제 일흔이 넘었을 터인데 그는 아직도 백군으로 불리고 요즘도 여전히 저 차를 끓고 인근 소도시의 닭장과 돈사를 찾아 오물들을 싫어 나른다. 하지만 차가 며칠 동안 주차되어 있는 걸로 봐서 그 일도 근래에는 영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백군이 어디 아프기라도 하던가……



인생과 나이와 삶은,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방인에게는 여전히 녹녹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사람은 무엇이든지 간에 정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 삶이 좀 더 윤택해질 것이다.



사실 나는 그동안 이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 늘 혼자를 스스로 고립시켜 누군가와의 정 나누는 일을 외면했다. 나의 천성이 그랬고 혼자가 좋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기질은 여전하다. 그러나 나이가 눅진 헤지니 마음이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고집이 한 풀 꺾이며 삭막한 마음에 어울림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쪼록 이 마음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백군과 그의 아들 백군에게 나의 이런 정이 뒤늦게라도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향의 버리고 온 그들과 여전히 고향에 목을 축이고 있는 나의 삶이 윤택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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