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Jul 17. 2023

고소공포증

성장기. 1(나의 트라우마 극복기)

  초등학생 때였다. 마을 논 위로는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수로가 있었다. 수로는 ”ㄷ“자를 그 뚤린곳이 위로 향하게 세워 놓은 모양이었다. 당연히 물은 그 세워 놓은 ”ㄷ“자 모양의 가운데로 흘렀음은 말 할 필요도 없음이다.


   수로의 옆 난간은 30cm도 채 되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겨우 한 발씩 옮길 수 있는 그런 너비였다. 높이는 지형에 따라 다른데 우리가 자주 놀던 곳은 논 바닥에서 대략 4미터 정도였다. 가을이면 아이들은 추수가 끝난 볏짚을 수로 아래 잔뜩 쌓아놓고 난간에서 그 위로 뛰어내리는 놀이를 했다. 남자아이들은 입에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뛰어내렸다. 개중에는 여자 아이도 여렀있었다.


   애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에 끌려 나도 수로에 올라갔다. 하지만 나는 뛰어내리지 못했다. 막상 수로의 난간을 밟자 수로의 높이는 아래서 바라본 것과는 달리 엄청 높았다. 아이들은 나를 비웃었다. 겁쟁이라고 놀렸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나의 두 다리는 마음의 그러함과 달리 난간에 못 박힌 체 떨어지지 않았다.


  1주일간의 공수 지상교육이 끝났다. 2주 차는 모형탑 훈련이었다. 흔히 막타워라 부르는 그것이다. 이 훈련은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때의 담력과 지상교육에서 받은 기체문 이탈시의 자세를 점검하는 마지막 과정으로 총 4번의 합격을 받아야 끝이 난다.


   처음 모형탑에 올라 공중으로 몸을 날릴 때 겁에 질려 엉거주춤했다. 고소공포에 제대로 뛰어나가지 못했다. 첫 번째 불합격이었다. 첫 번째의 실패 후 두 번째 모형탑에 오르자 교관이 왜 겁을 먹냐며 물리적인 고통을 가했다. 하지만 두 번째도 두려움에 엉거주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실제 비행기에서 이렇게 뛰다가는 동체에 매달릴 확률이 높아진다. 강하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그러면 나뿐만 아니라 내 뒤에서 뛰어내리는 동료들과 얽혀 기체 역시 위험해져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동료들은 속속히 합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한 번의 합격도 할 수 없었다. 동료들이 합격함으로 내가 모형탑에 오르는 횟수가 많아졌다. 횟수가 많아질수록 차츰 고도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갔다. 교관은 땅을 보지말라고 했다. 시선은 전방의 허공을 보라했다. 그래야 고소에 대한 공포가 덜 할 것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전방의 허공을 볼수록 공포심은 더 일었다. 그래서 일부러 모형탑을 뛰기전 바깥으로 계속 고개를 내 밀어 땅을 보기 시작했다. 그럼으로 고소의 감감을 무뎌지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모형탑을 뛴 횟수가 10회를 넘어서자 이제는 별로 겁도 나지 않았다. 그러자 드디어 자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은 하면 되는구나. 나는 그렇게 15회에 가까운 횟수의 모형탑을 뛰며 4회의 합격을 받고 그날 훈련을 끝마쳤다. 그리고 그다음 주 800미터 높이의 실제 기체에서 공중으로 몸을 던지며 4회의 특전사 기본 자격 강하를 무사히 마무리지었다. 어릴 적 나를 괴롭혔던, 또래 아이들에게 조롱당하던 고소공포증의 기억도 아물어지면서.

작가의 이전글 백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