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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19. 2023

수학시험

잡담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3차였다. 1차 2차에서 모두 떨어져 갈 곳 없어 오는 곳이 이곳 마지막 우리 학교였다. 아! 여기서 변명 한 번 해보자면 나는 1차 2차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그냥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시골이라 지역제한에 걸려 1,2차 선택의 상관없이 무조건 이 학교로 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무튼 학교의 특성이 그렇다 보니 면학 분위기는 제로였다. 학생들은 공부는 등한시 한 체 노는 대만 온 신경을 쏟았다. 한 마디로 농땡이 학교였던 것이다.


  하지만 비록 상황이 이러하더라도 분명 학교는 학교이기에 시험 역시 치러야 했다. 그런데 이런 학교의 면학분위기에 아이들이 시험을 진지하게 치를 일이 있겠는가. 다들 어떻게 하면 시험을 빨리 치고 놀 수 있을까라는 궁리에만 골몰했던 것이다.


  이런 공부에서의 자유에 대한 소망 하나 가 결국 수험 시간에 누가 빨리 나가는가라는 내기에까지 진화하게 되었다. 누가 빨리 나가기란,  말 그대로 시험지를 받자마자 문제를 풀고 답지에 옮겨 적은 후 가장 빨리 선생님께 제출하고 교실 문을 열고 복도에 나가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 것이다. 그래서 보통 3분에서 5분 이내에 결판이 나곤 했다. 문제도 읽지 않고 답을 막 체크해 나갔으니까.


  그런데 내가 요즘 그때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수학선생님이 시험지를 채점하면서 답안지를 들여다보다 알마나 어이없었을까라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하지만 한편으로 웃음도 쿡쿡 나오고는 한다. 왜냐하면 주관식 수험문제(특히 공식을 적용하는 문제) 같은 경우 루트나 파이 또는 괄호와 같은 긴 공식의 답이 나와야 하는 데 그곳에 생뚱맞게 2 또는 5 아니면 7이나 8과 같은 정답과는 그 어떤 연관성도 찾아 볼 수 없는 황당무계한 숫자가 단답으로 적혀 있었으니 얼마나 한심했을 것인가. 말은 못 하고 시험지를 채점하며 우리의 무식함에 아마 혀를 내둘렀을지 않을까 싶다.


-그때의 저희를 담당했던 수학선생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 당시 노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 비록 선생님의 시험에 말도 안 되는 엉뚱한 답을 내놓았지만 그래도 지금 이렇게 죄 안 짓고 회사 다니며 사람구실은 하고 살아가네요. 그것 하나로 선생님께서 그나마 위안을 받았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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