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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13. 2023

믹스커피

잡담

요즘사람들은 대부분 원두커피를 즐긴다. 하지만 나는 철저한 믹스커피 추종자다. 종이컵에 티 스푼으로 딱 두 숟갈의 설탕을 넣고 믹스커피 한 봉지를 뜯어 넣은 다음 정확히 종이컵의 7부까지 커피포트로 끓인 100도씨의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리고 핸드드립 하듯 스푼을 컵 정 중앙에 꽂고 가장자리로 나오며 왼쪽으로 다섯 바퀴, 오른쪽으로 다섯 바퀴 휘돌려 맨 밑층의 설탕과 중간층의 커피가루와 프리마 그리고 상층의 물이 하나로 잘 섞여 혼합되게 만든다. 이때 회오리의 간격과 결이 일정해야 하고 프리마의 흰색이 가는 원으로 스푼 끝에서 하나의 완벽한 구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표면의 회오리가 멈출 때까지 1분을 기다린다. 커피를 저을 때는 손가락을 감각을 최대한으로 스푼 끝에 집중시켜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설탕을 한 톨 까지도 빠지지 않게 녹여야 한다. 여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정확히 1분 30초. 그리고 30초의 뜸을 들였다. 정각 6시 32분에 첫 목 넘김으로 맛을 본다. 그리고 맛이 알 맞다고 생각되면 5분을 기다렸다가 적당히 식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한 입에 원 샷. 이게 최상의 믹스 커피를 만들고 맛보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 맛을 즐기기까지의 신성한 7분 동안 나를 찾거나 도움을 요청하며 방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다. 그게 이 믹스커피 한 잔에 담긴 나의 인생이고 그날의 내 운세이다.


  우리 같이 현장 노동을 하는 사람들과 학생이나 수험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이 믹스커피는 더 할 수 없는 위안이다. 이는 원두커피로 12시간 이상 추출해 내는 더치키피를 일컫는 천사의 눈물과 충분히 견줄만한 것이다. 겨울에는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노동과 공부로 지쳐 당이 떨어질 때는 인슐린과 같은 혈당제요 주변 사람과 부담 없이 정을 나눌 때 이 커피 믹스 한 잔 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있겠는가. 가격 또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는 물가에 비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에겐 너무 착하지 않은가. 이 믹스커피는 우리나라 노동자와 주머니 얇은 학생과 수험생들에게는 철학이고 인생이며 황홀함 그 자체이다. 물론 나도 한 때 커피에 관심이 있어 원두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그냥 잡담 한 번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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