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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25.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81. 인맥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습니다. 매일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습니다. 술자리에서 아버지가 동무들 사이에서 어떤 위치였는지 그리고 매일 무슨 말들을 주고받았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그들과 함께했고 밤늦도록 취하셔서 늘 집에 돌아오시고는 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장례삭장에 함께하던 술 동무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술만 취하시면 험담하시던 동갑계원 친구만이 유일한 아버지의 친구 조문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먼 길 가시면서 자신의 마지막 길을 외면한 수 십 년 지기였던 그 술친구들을 보았다면 무슨 생각이 드셨을까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 사람들이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젊은 시절 친분을 가졌던 그 많았던 사람의 수가 차츰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철없던 시절에는 제 연락처에 빼곡히 적힌 이름의 수만큼 마치 제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냥 으스대고는 했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인생에 있어 그렇게 큰 의미가 없음을 차츰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예전 어느 대기업 입사 면접에 당장 연락 가능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를 평가했다는 이야기를 전언으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그 기업의 면접 방식이 정말 획기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는 사람이 많고 연락 가능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이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고 교우관계나 사회생활에 있어 원만할 것이라는 생각에 회사 생활 또한 진취적으로 잘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십 수년이 흐른 지금 저의 생각에는 당시와는 달리 상당히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과연 누군가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그 사람의 진정한 됨됨이와 능력을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제 어느덧 요즘 젊은 세대들이 말하는 꼰대가 되었는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은 양이 아닌 질이라는 것을 나름 고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말해 수보다 깊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적은 사람일지라도 그들과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가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있고 그  다양한 일들 속에서 숱한 사람들이 얽혀 살아갑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만 살아가는 게 지극히 힘든 동물로 여러 사람들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또는 동료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주면서 인생의 고비들을 넘기고는 합니다. 이때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좀 더 편하고 쉽게 우리들 스스로가 원하는 이득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 인맥이라는 사회 관계망을 넓히려 어떻게든 노력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이지요.



저도 한때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선배와 술 한 잔 하자는 약속이 있어 혼자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선배는 깜짝 놀라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 네가 혼자 오냐고. 너는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늘 누군가와 함께 있는데 왜 오늘은 혼자냐고. 이상하다고. 저도 그 정도로 친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곳을 떠날 때 그 누구 한 사람 절 챙기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선배 후배 모두 다 챙겨줬는데 말입니다. 전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울분이 치밀고는 합니다.



  인맥이 넓다는 것이 곧 인생을 더 알차게 살고 있다는 우리의 알량한 생각에는 많은 허점들이 존재합니다. 저의 아버지의 장례식날, 술 마시고 놀 때는 둘도 없는 친구사이들이 마지막 떠나는 날에는 모두 외면 한 체 정작 비난하고 욕을 해대던 친구 한 명만이 먼 길 배웅해 주러 나온 것을 보면서 저는 그러한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생은 수도 중요하지만 결코 그것만이 전부일 수 없다는 작은 진리도 말입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말이죠. 그러니 여러분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 허상에서 해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냥 수는 적더라도 진실한 친구 몇 명 있는 것이 더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이러함은 꼰대가 되어가는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니 옳고 그름의 판단은 여러분이 심사숙고하시면 되겠습니다.


2021.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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