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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26.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25. 부조

우리나라에는 “상부상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처지가 비슷한 사람끼리 조금씩 힘을 보태 서로서로 돕는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경제적으로 힘든 집안에 어떤 애경사가 발생하면 동네 이웃들이 돈이나 품으로 조금씩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러함은 관혼상제에서 두드러집니다. 옛날 혼인을 하고 장례를 치를 때 혼주와 상주가 형편이 여의치 않아 일처리가 곤란하면 부조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돈을 걷어 일처리를 하게 했던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정확히 언제부터 있어왔는지 그것에 대해서 제가 정확하게 아는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 역사책에 보이는 단편적인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이는 분명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오래됐을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얼마 전에는 직장동료가 결혼을 했고 어제는 직장동료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인사이동이 잦은 곳이다 보니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늘 부조금 문제로 고민스럽습니다. 부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또 하면 얼마를 해야 하나 와 같은 생각들로 말이죠. 형편이 넉넉해 시원스럽게 돈을 낼 수 있는 여건이면 별 문제 될 게 없겠지만 빠듯한 봉급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이런 일에 마음과는 달리 적지 않게 치사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8년째 같은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번의 인사이동이 있었고요. 이전 부서에서 적지 않은 경조사비를 냈습니다. 그들의 인사이동과 저의 인사이동. 이렇다 보니 짧게는 한 두 달 같이 있었는데도 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지출한 경조사비 대상이 누구인지 그 이름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따로 장부에 적어두지 않으니까요. 아마 짧게 같이 있었던 그들도 저를 잘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냈던 부조는 돌려받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경조사를 치를 때는 주위에 알리지 않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진 지는 꽤 오래전입니다. 부조라는 것이 진정한 축하와 애도의 참된 정신이 사라져 버린 하나의 부담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기에 말입니다. 예전에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서로에게 도움이 됐겠지만 이제는 그런 세월이 아니게 된 것이지요. 세월이 변해 그냥 구색 맞추기인 형식이 되었고 내가 냈기에 그것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만 남았을 뿐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제 이 불합리를 우리 사회에서 깨뜨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앞장서는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 본인들이 지금까지 낸 게 있으니 다들 자신들 손해 보는 일은 하기 싫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의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저는 앞으로 내는 것은 계속 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반면 받을 것은 받지 않을 것입니다. 홀로 계신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가까운 친구 몇 명 불러 부조는 받지 않고 어머니 초상날 이렇게 찾아 주어 감사하니 따뜻한 밥 한 그릇 따뜻한 술 한 잔 마시고 가라 할 생각입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에게도 이미 그런 뜻을 전달해 두었습니다. 누군가는 끊어내야 할 풍습이기에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저만이라도 앞장서 보려 합니다. 그래야 이 답답한 구태의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바뀌어 갈 테니 말입니다.


202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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