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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26. 2023

사격통제

잡담

  열 명쯤 되는 적들이 횡대형을 이루며 부채모양으로 벌어져 다가온다. 거리는 대략 이백미터 정도이다. 적들은 세 명씩 조를 이뤄 각 조별로 가로 십 미터 세로 십 미터 정도의 이격 거리를 두고 서로 엄호하며 점진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아군은 총 세 명이다. 최초 열 명이었는데 일곱 명이 교전 중 사망했다. 남은 사람은 중대장 대행의 소대장인 소위 한 명과 제대를 앞둔 병장 한 명. 그리고 자대 배치를 받은 지 삼 개월이 된 이등병 한 명이다.


  아군은 참호 속에서 모래주머니를 쌓아 놓은 엄폐물로 적들과 대치하고 있다. 적들은 엄폐물이 없는 개활지에 있다. 그것도 우리는 윗쪽에 있고 적은 아래 쪽에 놓여 올라와야하는 형국이다. 이런 지형 조건이면 십대 삼이라도 층분히 가능성이 있다. 중대장대행은 언제쯤 사격을 시작해야 할지 가늠 중이다.


“소대장님! 언제 사격 실시합니까? 적들이 코 앞인데요. 이러다 우리 모두 다 죽겠어요”


  김병장이 공포에 질려 다급한 목소리로 중대장 대행에게 물었다.


“김병장. 명칭을 정확히 하도록. 나는 지금 소대장이 아니라 중대장대행이다. 중대장대행. 알았나? “

”네. 소대장님.. 아니 중대장대행님 “

”좋다. 계속 그렇게 부르도록. 아직 사정거리가 아닌 것 같다. 오십 미터만 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자”


  중대장대행은 엄폐물 위로 머리를 살짝 내밀어 적과의 거리를 짐작하며 말했다.


   이때 적의 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중대장대행이 머리를 내민 찰나 그것을 목격하고 적이 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적들의 총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울리고 총알이 어지럽게 모래주머니에 날아와 박혔다. 모래주머니가 터지고 모래가 날렸다. 흙바닥에 맞은 총알의 피탄에 돌들과 흙이 튀겨져 날렸다. 삽시간에 참호 안과 밖은 총소리와 총알 그리고 피탄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중대장대행은 상황이 급박해지자 사격 개시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도 적들을 향해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옆에 있는 김병장과 박이병이 사격은 하지 않고 사격 준비 자세만 유지하고 있었다. 중대장대행은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려 철 모를 손으로 누르며 바짝 엎드려 총소리의 포화 속에서 김병장과 박이병을 향해 소리쳤다.


“사격 개시. 사격개시. 김병장. 박이병 왜 사격을 안 하는 거야? 빨리 사격 시작해. 시작하란 말이야 “


  적들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총소리는 더욱 격렬해졌다. 그들은 각 조가 번갈아 엄호 사격 하며 전진 이동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 모두 전멸하는 건 시간문제일성싶다. 하지만 김병장과 박이병은 여전히 사격을 하지 않은 채 벌벌 떨며 요지부동이다.


 중대장대행은 다시 혼자 적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리고 다시 김병장과 박이병에게 사격 명령을 내렸다.


“김병장, 박이병 빨리 사격해. 이러다 우리 다 죽어!”


  김병장과 박이병은 중대장대행의 말에도 여전히 사격을 하지 못한 채 떨고 있었다. 적의 총알이 무더기로 날아와 모래주머니에 박혔다.


“김병장, 박이병 빨리 사격하란 말이야. 야이 개새끼들아 우리 다 죽는다고!!”


   중대장대행의 목소리가 어질러지는 총소리 속에서 처절한 절규로 바뀌었다.


   이때 공포에 질린 박이병의 목소리가 중대장대행의 귀에 들렸다.


“중대장대행님! 사격통제를 해주셔야 저희들이 사격을 하지 말입니다”

”뭐! 사격통제? 박이병.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사격통제라니? “

”주둔지 부대에서의 사격훈련처럼, ‘사수 입사로 안으로. 사수 소총 들어. 사수 탄알집 장전. 사수 탄알 일발 장선. 준비된 사수 이백사로 봐 “라고 해주셔야 저희가 사격을 하지 말입니다 “

“야이 미친 새끼야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지금 적들이 쳐들어오고 있는 전쟁터의 실전에서 그게 뭔 개소리야?”

“그래도 저희들은 그렇게 훈련을 받아서 통제가 없으면 사격이 안되지 말입니다”


  적들과의 거리는 백 오십 미터 정도로 좁혀졌다. 적의 화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총알이 무더기로 날아와 박혔다.


  중대장대행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미친~~”


   하지만 상황이 급박했다.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중대장대행은 어쩔 수 없이 주둔지에서 사격 통제를 하듯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사수 탄알집 장전“


   김병장과 박이병이 복명복창하며 탄알집을 장전했다.


”사수 탄알 일발 장전”


   중대장 대행이 다급하게 명령했다.


”사수 탄알 일발 장전“


   김병장과 박이병이 다시 복명복창하며 노릿 쇠를 후퇴전진 시켰다.


”김병장 박이병, 복명복창은 하지 않아도 된다”


   중대장대행이 답답하다는 듯이 둘을 향해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버릇이 돼서”


   김병장이 선임으로 박이병을 대신해 답변했다.


   또다시 적군의 화기가 굉음을 내며 참호 위로 총알들이 날아갔다


“야이 씨발… 그건 이따 따지고 빨리 사격 시작해”

“중대장대행님 정확하게 통제 명령 내려 주십시오”“야이 미친놈들아 뭘 또 정확하게 해 달라는 거야?”

“주둔지 사격장에서 통제하던 대로, ”준비된 사수 몇 미터 사로 봐 “라고 해주셔야 저희가 제대로 사격을 하죠”

“이 미친놈들….”


타다 다당.


   적들이 가까이 왔는지 총소리가 더욱 커졌다. 중대장대행이 거리를 짐작해 보니 백 오십 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준비된 사수 이백사로…아니…아니다. 백오십…백오십 사로 봐!”


   다급해진 중대장대행이 사격통제를 다시 시작했다.

  중대장대행의 목소리가 두려움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김병장과 박이병은 여전히 우물쭈물 사격을 하지 못했다.


   중대장 대행은 다시 한번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왜 그래? 사격통제 하잖아. 빨리 사격해”


   이때 김병장이 말했다.


“중대장님. 조정간은 단발입니까. 아니면 연사나 연발입니까?”

“이 미친…. 김병장 이 새끼야 너까지 왜 그래! 넌 짬밥 잔뜩 먹은  병장이잖아!”

”짬밥만 많이 먹으면 뭐 합니까. 저도 말년인 지금까지 계속 통제받으며 사격훈련을 해서 통제 명령이 없으면 안 되긴 박이병과 마찬가지입니다. “

”이런“


   적들의 화력이 더욱 거세졌다. 이제 거리는 백 미터 정도였다.

   김병장이 다시 중대장대행을 불렀다.


”중대장대행님!! 조정간은 어떻게 할지 빨리 통제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

”미친… 조정간 단발. 조정간 단발”


  김병장과 박이병이 중대장대행의 통제를 동시에 복창했다.


”조정간 단발“

”조정간 단발“


  중대장 대행이 다시 급박하게 소리쳤다.


”준비된 사수 백사로… 백사로 봐 “


  그제야 드디어 김병장과 박이병의 사격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다시 박이병이 자신의 발아래를 두리번거렸다.


”박이병! 왜 사격을 멈추는 거야. 어서 빨리 계속 사격해 “


중대징대행의 목에 핏발이 섰다.


”중대장대행님. 제가 탄피를 하나 잃어버린 것 같지 말입니다. 지금 그걸 찾고 있지 말입니다. “


   박이병이 심각한 표정으로 탄피를 찾기 위해 자신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중대장대행의 동공이 확장되고 얼굴이 마치 밀가루 반죽이 꼬이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야! 박이병. 이 상황에서 무슨 탄피타령이야 “


  중대장대행의 목소리는 이제 절규에 가까웠다.


”중대장대행님. 탄피를 잃어버리면 중대장님과 부중대장 그리고 선임들에게 혼쭐나지 말입니다. “


  중대장대행은 모든 걸 포기한 듯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미친놈들아… 여기서 뭔 놈의 탄피냐, 탄피가…“


   중대장대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던 김병장이 다급하게, 주둔지 사격 훈련 시 교육받은 대로 문제 발생 때의 대처요령 중 하나인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다급하게 중대장대행을 찾았다.


“중대장대행님? 중대장대행님?”

“또 왜 그러나 김병장? “


  중대장대행이 참호밖으로 삐죽이 올라간 박이병을 팔을 봤다. 중대장대행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힘이 실리지 않았다.


”김병장… 너 미쳤어. 빨리 팔 내려. 팔.  적에게 우리 위치가 노출되잖아 “

”아~네! 알겠습니다 “


  김병장은 허둥지둥하며 팔을 내렸다.


”그런데 왜 그러나 김병장?”


   온몸에 힘이 빠져버린 중대장대행의 입가로는 침이 질질 흘렀다.


“적군이 움직입니다.”

“적군이 움직여? 당연히 적군이 움직이지! 그게 뭐?”

“저는 군생활하면서 움직이는 타깃으로 사격 훈련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

”그래서? “

”그래서 어떻게 사격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미친….”


  중대장대행은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적군은 벌써 코 앞으로 들어왔다. 거리가 대충 오십 미터도 되지 않아 보였다.


”그냥 사람 보이는 곳으로 막 쏴. 움직이는 타깃이라 생각하지 말고 막 쏘라고 알았나? “

”네! 알겠습니다. “


   김병장이 사격을 위해 참호 밖으로 얼굴을 내었다. 그러자 코 앞에 닥친 적이 기다렸다는 듯 박이병 쪽으로 총알을 집중시켰다. 김병장은 겁을 먹고 총만 참호 밖으로 내밀었다. 적이 어디 있는지 보지도 않은 채 무작정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세 명의 총알이 모두 바닥났다. 적군도 사격을 멈췄다. 갑자기 주위가 고요한 적막에 쌓였다. 중대장대행은 총도 놓아 버린 체 참호에 두 팔을 늘어뜨리고 입가에 침을 흘리며 퍼질러져 버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었다. 자신의 얼굴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중대장대행은 무슨 일인가 싶어 간신히 눈동자만 들어 올려 참호 위를 보았다. 참호 위에서 소총을 든 적군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자신을 조준하고 있었다.


   박이병이 중대장대행은 보지 못한 채 급박하게 중대장대행을 다시 불렀다.


”중대장대행님. 탄창에 총알이 비었습니다. 탄창교환 통제명령을 내려주시지 말입니다.


   중대장대행의 입에 실성한 웃음이 흘렀다.


 “이…이… 미… 친… 중대장.. 대.. 행은…무슨… 그..그놈의 사격통제…사…사수…. 사수… 탄알… 집.. 교….교….“


”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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