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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29. 2023

말 못 한 사연(잊지 못할 사람에게 쓰는 편지)

덕제(가명)에게

  중학교 수학여행이었다. 삼십 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다. 대구에서 출발해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를 들러 고성의 통일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날씨는 4월의 봄이었지만 기온은 6월 정도의 온도로 뜨거웠다. 통일전망대를 올랐다 내려온 나는 목이 너무 말랐다. 전망대 밑 주차장에는 노점들이 자리 잡고 캔음료와 생수 등 여러 가지 마실 것들을 양동이에 시원한 물을 담아 띄워 놓고 팔고 있었다. 나는 그 많은 음료수중 복숭아넥타라는 캔 음료 하나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넥타를 사 마실만큼의 여윳돈이 없었다. 돈이 부족해 사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갈증은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차가운 물에 둥둥 떠 있는 음료수는 더욱 시원해 보였다. 나는 갈증과 더위에 기운을 잃어갔다. 그러던 그때. 전망대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이름이 “김덕제“였다. 지금의 표현을 빌리자면 절친이라고 부를 만큼 사이좋은 친구였다. 나는 참을 수 없는 갈증에 부끄러움과 자존심을 버리고 덕제에게 복숭아넥타 하나만 사달라고 부탁했다. 덕제는 별문제 아니라는 듯 유쾌하게 미소 지으며 흔쾌히 캔 하나를 나에게 사주었다. 나는 그날 덕제에게 캔 음료수를 하나 받아 정말 시원하고 맛있게 마셨다.


  덕제의 부음을 받은 것은 10년 전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군을 전역하고 각자 다른 위치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 던 터라 제대로 연락하며 지낸 시간이 십 년도 더 된 세월이었다. 그런 내가 덕제의 부음을 전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덕제의 형 또한 내 형의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덕제의 사인은 자살이었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덕제는 자신의 마지막 장소로 고향 할머니의 무덤 옆 소나무를 택했다는 게 형의 말이었다.


  장례식장을 찾자 빈소에는 덕제의 어머니와 형이 상주로 있었다. 영정 사진에는 젊었을 적 덕제의 웃는 얼굴이 초연하게 담겨있었다. 나는 향을 피우고 사진을 한 참 들여다본 후 절을 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조문하는 동안 “덕제야! 네 친구가 왔다. 이 놈아 어서 빨리 좀 일어나 봐라”하며 오열을 했다. 나는 어머니께 위로의 말을 몇 마디 전하고 형님과 짧게 이야기를 나눈 후 장례식장을 나왔다.


  내가 덕제의 형과 나눈 이야기는 앞에서 이야기한 수학여행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와 대구 근교의 한 경찰서에서 의무경찰로 복무하고 있던 덕제를 찾아가 면회를 하며, 함께 밥을 사 먹고 다방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려 사진을 찍으며 놀았던 기억들이었다. 그때 우리 둘은 참 즐겁게 놀았는데, 까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유난히 하애보이는 치아로 티 없이 맑게 웃던 덕제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날 덕제의 웃음은 그 옛날 수학여행 때 내게 음료수를 사주겠다며 흔쾌히 말하고 웃음 짓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빈소를 나올 때 덕제의 그 미소는 영정 속에서 내 마음에 영원하리라는 것을 나는 느꼈다.


-일찍 잠이깬 신새벽. 문득 옛 친구가 생각나 한 번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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