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Jul 30. 2023

오래 달리기

성장기 2(나의 트라우마 극복기)

  초등학교 5학년. 내 나이 열한 살. 처음으로 체력장이라는 걸 했다. 100미터 달리기와 윗몸일으키기, 제자리멀리뛰기와 500미터 달리기. 나는 장거리 달리기라고 일컫는 오래 달리기를 뛰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오래 달리기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운동회 때 100미터 달리기는 조에서 항상 일등이었다. 공책도 많이 탔다. 그래서 처음 체력장을 할 때 500미터 달리기도 100미터 달리기 하듯 처음부터 전력질주를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스타트를 시작하고 100미터가 넘어가자 숨이 턱에 차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다리에 경련이 일아났고 이러다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장 네 바퀴를 돌고 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먼저 들어온 친구가 손가락질하며 내가 퍼져버린 것에 대해 놀렸다. 오래 달리기에 대한 이해와 요령부족이었다. 이후부터 오래 달리기는 나의 극복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특전사 선발 시험을 치를 때 오래 달리기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목은 만점 내지 최상위 득점을 획득했다. 하지만 오래 달리기는 꼴찌였다. 탈락을 예감했다. 그러나 합격이었다. 그렇게 입대해 보니 부대훈련은 오래 달리기와 관련된 것들 천지였다. 그냥 오래만 달리면 되는게 아니라 기록을 측정하고 단축해야되는 것이라 더 힘들었다. 스스로도 힘들었고 동기와 선배등 동료들에게 폐가 되어 견딜 수 없었다. 후배 앞에서는 또 면목이 서지 않았다. 장기복무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 제대를 선택했다.


    제대 후 경찰특공대 선발 시험에 응시했다. 물론 이 시험에도 오래 달리기 종목은 필수였다. 지금처럼 유튜브 같은 게 발달하지 않은 터라 육상 관련책을 찾아보고 체육학과를 나온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훈련했다. 나는 일을 마치고 저녁마다 달렸다. 매일 달리고 또 달렸다. 비 오는 날도 달렸고 눈 오는 날도 달렸다. 추석과 설날에도 달렸고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달렸다. 나는 시간만 나면 달렸다. TV에 육상경기가 중계되면 놓치지 않고 챙겨봤다. 전문선수들의 팔동작과 다리의 자세 그리고 호흡법 등을 세심하게 살폈다. 장거리 달리기의 이해력이 높아지면서 요령이 붙었다. 성과는 좋았다. 나이는 더 들었는데 군 현역 때 보다 기록이 더 좋아졌다.


  나는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스스로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나를 끈질기게 괴롭혀온 장거리 달리기에 대한 지금까지의 공포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었다.


  2000년 동아마라톤에 참가 신청을 했다. 풀코스는 아니고 21.0975킬로미터의 하프코스였다. 꽃샘추위가 매서운 3월.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해 올림픽 공원까지의 거리. 나는 중간에 포기 없이 좋은 성적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같이 뛰다 중간쯤에 주저 앉아버린 동료를 챙겨 들어오는 여유까지 있었다. 다음에는 풀코스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이후 5킬로 미터와 10킬로미터 마스터즈 대회에 자주 출전했다. 비록 일등은 아니지만 작은대회에서는 입상도 몇 번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었다. 나는 그렇게 달리면서 장거리 달리기에 대한 나의 오래 묵은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작가의 이전글 말 못 한 사연(잊지 못할 사람에게 쓰는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