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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ug 01. 2023

외판원을 추억하며

잡담

  아이템플 학습지. 세계 문학전집. 웹스터 영한사전.


  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어렴 풋 저 단어들을 기억할 것이다. 동네에서 한 집이 멀다 하고 저것들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잘 사는 집이던 못 사는 집이든 너나 할 것 없이.


  그때는 저런 물건을 팔 때 항상 판매자가 직접 집집을 돌아다니며 팸플릿을 펼쳐 고객에게 상품을 구입해야 하는 필요성과 유용성을 설명했다. 당장 돈이 없는 집은 할부가 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특히 시골의 마음 약한 어머니를 상대할 때는 더욱더.


  그래서 원활한 판매가 이루어지면 할부 전표를 작성해 어머니 손에 한 장 그리고 자기 손에 한 장 챙겨 들고 유유히 대문을 나갔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외판원이라고 불렀다. 일일이 직접 고객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판다고 해서 말이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항상 외판원이 찾아와 보여주는 저와 같은 물건의 샘플에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시골 아이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딱히 많이 사용하지도 않을 상품임에도 어머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꼭 사달라고. 그러면 외판원은 아이말에 슬쩍 장단을 맞춰면서 어머니를 설득하는 화려한 말솜씨를 부린다. 그리고 결국 한 건의 실적을 올리고 유유히 동네를 떠난다.


  어느 날 문득 TV를 보다 그 옛날 외판원의 모습을 보았다. 브라운관 속에서 들리는 외판원이라는 말이 참 낯설었다. 요즘은 매장을 열어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인터넷에 물건을 올려 소비자가 선택하기를 기다리는 세상이니. 그때는 분명 직접 고객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물건을 파는 외판원이 우리 사회와 삶의 일부였는데.


  그리고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때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며 집집이 다니던 그 많던 외판원들은 모두 어디 갔느냐고. 그들은 그때 한 건 한 건 올린 수익으로 가족 잘 건사하고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이냐고. 세월이 지나니  그것이 무척 궁금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이젠 분명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아무튼 그때 우리 집을 찾아와 물건을 팔았던 많은 외판원들이여 나는 그대들 가정의 행복과 그대의 천수를 빈다. 그게 당시 당신들이 살아가는 방법이었고 당신들은 그 방법에 최선을 다했고 우리는 우리 방법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까. 그때 당신들과 우리의 삶은 각자 그것으로 충분히 족하다고 부를 수 있을 것이었느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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