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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ug 02. 2023

그 봄, 그 울음소리

잡담

꽃이 폈다. 보라빛 제비꽃. 하늘빛 큰 개불알꽃(이 꽃은 이름이 거시기하다고 하여 지금은 큰 봄까치꽃이라고 부른다). 보랏빛 할미꽃. 노랑빛 유채꽃. 분홍빛 진달래.


  바람이 불었다. 푸른 보리에 실린 바람. 노란 소나무 송화에 실린 바람. 연두 버드나무에 실린 바람. 하얀 버들강아지에 실린 바람.


  구름이 몽글아졌다. 하얀 양떼구름. 하얀 강아지 구름. 하얀 솜사탕구름. 하얀 솜털 구름. 하얀 뭉게구름.


  봄은 그렇게 찾아왔다. 시린 겨울의 무채색 옷을 밝고 따뜻하게 갈아입으면서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흙이 부드러워진 논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나의 집이 동네 산 7부 정도에 위치해 있어 학교에서 집으로 갈 때는 항상 마지막 고개 하나를 넘어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의 고학년인 나는 하교를 하며 꽃과 바람과 구름을 보며 혼자 고개를 넘었다. 그런데 내가 고개로 들어설 때 어린 계집아이의 강한 울음소리를 들렸다. 고개 아래에 있던 나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왜 그런 시끄러운 울음이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고개를 다 오르자 동네 삼촌 친구의 남자 어른들이 목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 나무막대기로 땅을 짚은채 보이지 앉는 어떤 박자에 맞춰 원을 그리며 흙을 밟고 있었다.


  내가 들었던 계집아이의 울음은 바로 그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계집아이는 나 보다 두 살 어린 동네 동생이었다. 그러니까 걔는 3학년이었다. 그런 어린아이가 봉긋이 솟아오르는 흙무덤 앞에서 흰 한복 저고리에 치마를 입고 땅에 퍼질러져 발버둥 치며 발악하듯 통곡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모를 무서운 마음이 일어 도망치듯 고개를 벗어나 집으로 갔다.


  나는 그때까지 그렇게 서럽고 처절한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는 내 나이 쉰이 다된 지금까지도 없다. 나는 그날 집에 와서야 그 계집아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낮에 본 장면은 그 계집아이 어머니의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고 그 계집아이는 그 앞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가끔 그날의 모습이 떠오른다. 발을 구르며 울던 그 계집아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성인이 되어도 받아들이기 힘든 어머니의 죽음을 그 어린 나이에 받아야 했던 그 아이의 아픔은 어떤 것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 울음으로는 아마 백만 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었다.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세상. 사건사고에 시달리며 다가오는 세상의 모든 죽음들이 오늘 이 마음에 그때 그 계집아이의 애달픈 울음에 실려 내게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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