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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ug 11.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35. 아나운서의 중립

소설 “칼의 노래”로 유명한 작가 김훈의 작품 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라는 산문집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듯, 니 편 아니면 내 편 또는 흑백논리로 세상을 따지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글이었다는 기억은 어렴풋 남습니다. 아마 작가는 날로 짙어져 가는 날 선 반목과 대립의 세상에 한쪽으로만 격하게 치우치지 않고 조금은 더 유연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현재 우리 사회에 이득이 되지 않을까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뉴스의 생명은 신속과 공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나운서에 의해 영상으로 송출되는 TV뉴스 같은 경우는 그 공정이라고 일컫는 가치가 더욱더 큰 쟁점이 될 수 있겠지요.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중립의 공정한 균형 말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그들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의 자세를 취하려고 부단히 도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렇고요. 이런 모습은 그날 일어난 정치적 사건사고의 기사문을 읽을 때 카메라를 향해 로봇과 비슷한 무표정한 얼굴과 어떤 감정도 썩이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 톤과 속도 조절 등에서 잘 나타나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유들로 우리는 아나운서라고 하면 항상 객관적으로 사건을 들여다보는 높은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 시청자들의 의식과는 달리 사건을 전하며 흥분하지 않고 냉철하게 중립을 지키려는 모습들을 보면서 말입니다. 또 아나운서 자신들도 가끔 예능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들의 그런 입장을 이야기들 하곤 했고요.



그런데 문제는 그들에게 정말 일반 시민과는 다른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공정함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달하는 취재 영상이나 기사문이 이미 공정을 잃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아나운서는 사건을 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를 읽고 전달할 때 표정과 목소리는 공정한 것처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읽고 전달하는 그 기사 자체가 이미 회사의 회장이나 사장 그리고 국장급 등의 영향으로 그 뜻에 따라 작성자의 주관에 의해 공정하지 않고 특정 관점으로 치우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사를 가지고 목소리와 표정만 공정한척한다고 그것이 과연 어느 쪽으로도 치우쳐지지 않은 완전한 중립의 공정이 되는 것인가요.



우리는 한쪽으로 편향된 논조의 기사가 많다는 이유로 특정 신문사나 방송사를 보수성향이 짙은 신문사와 방송사 또는 진보 성향이 짙은 신문사와 방송사라고 규정지어 말들 합니다. 또 사실이 그러하고요. 그래서 저는 특정 성향에 치우친 방송국 뉴스의 아나운서들이 정치적인 뉴스를 전달할 때 이제는 중립을 지키며 공정한척하는 모습을 그만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자신의 소속된 방송국 성향과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그냥 있는 그대로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공정하지 않게 작성된 기사와 영상을 마치 공정하게 전달하는 척들 하지 마시고요.



당신들은 절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립을 지킬 수 없을뿐더러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당신들도 한낱 인간이기에 그렇게 될 수도 없는 것이고요. 그게 당신들의 본모습입니다. 그러니 괜히 공정한 척한다고 겉모습에 힘 빼지 마시라는 겁니다. 더 이상 중립, 공정 운운하지 마시고 말이죠.


2023.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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