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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ug 22.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32. 후손을 위하여

인류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유구한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그 기나긴 역사의 시간은 현재의 우리들에게 많은 유물과 자연 그리고 역사적 가치를 지닌 보물들을 남겼습니다. 시간의 물리력에 눌릴 수밖에 없는 이 소중한 것들은 인간의 손을 타면 탈수록 훼손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그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인류가 걸어온 자취, 그리고 인류와 함께 생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존재의 흔적들은 경이롭고도 위대합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자산을 아끼기 위해 늘 애지중지 애태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일부 특정인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공통으로 주어지는 값진 가치이기 때문에 말이죠.


   우리 인류들은 이렇게 돈의 값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 소중한 자원과 유산들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씁니다. 그중 대표적인 방법 하나가 바로 “통제”라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만질 수 없게 하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게 하는 것.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욕구들을 통제라는 방식으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그 대상물들의 훼손을 막으려고  어떻게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구의 자연과 인류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일임이 확실합니다. 그들이 인생을 살면서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선조들의 삶을 교훈 삼아 자신들의 생을 윤택하게 한다면 이 어찌 좋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당연히 아끼고 보존해야 하는 이러한 일들에, 당대인은 무시한 체 너무 “후손들”이라는 목적에만 얽매여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과 또 그들의 자식들인 후손을 생각하고 위한다는 일에는 나무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후손들에게만 맞춰지는 일들은 분명 다시 한번 생각하고 고민해 봐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삶이 없다면 후손들의 삶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우리는 자연과 유물들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명분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지도, 들어가지도, 만지지 못하게 통제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그러한 노력을 들여 물려준 유산들을 보고 만지고 이용할 수 있는 후손들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다음 후손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과 유산을 만지는 것도 사용하는 것도 자제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물려받은 후손 역시 그다음 후손을 위해 우리와 똑같이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후손들 또한 그다음 후손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할 것이고 또 그다음 후손은 그다음 후손을 위해, 또 그 다음은 그다음....


  이렇게 후손을 위하여서는 그것들이  존재하는 한 그 보존의 법칙은 끝도 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복의 고리 속에 정녕 그것을 보고 만지고 사용할 수 있는 후손이 있을 수 있기는 하단 말입니까.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후손을 위한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과 유산을 그들에게 영원히 물려 주려 하지만 정작 따져보면 그것을 보고 사용할 수 있는 후손은 아무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앞 시대를 살아가는 선대인으로서 후손들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귀중한 것들을 아끼고 보존하여 잘 물려준다는 생각은 충분히 공감됩니다. 비근한 예로, 한 집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애지중지 키운 자신들의 자식을 위해 소중한 것을 남겨준다는 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너무 후손들을 위한다는 명분에만 치우쳐 정작 당대의 사람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과연 옳은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현대의 우리는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이유로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자료나 유산 그리고 자연들을 영구 봉인하거나 몇 십 년 동안 통제 차단해 사용할 수 없게 해 버리는데 지금을 사는 우리도 분명 그 귀한 것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후손이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는 후손으로서의 우리가 가진 그러한 권리와 자격은 외면한 채 자꾸 다음 후손들만 이야기하고 있으니 참 답답할 노릇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도 엄연히 역사의 한 시대를 살고 있는 주체이자 분명 그것들을 보고 이용할 수 있는 후손이라고 말 입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그것들을 보고 만지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들의 행동으로 그 많은 유산들이 수명을 다하면 그것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게 자연의 순리이자 이치인 것이라고 말이죠.


2020.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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