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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ug 24.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10. 기록의 욕망

나는 운동 종목 중 육상을 제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투포환이나 창던지기 같은 필드 경기가 아닌 운동장을 거침없이 질주하는 트랙 경기를 더 좋아한다. 출발 총성이 울리는 순간부터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그 누구도 승리를 예측할 수 없는 단거리. 800M부터 42.195KM라는 거리를 쉼 없이 달려야 하는 인간의 인내와 끈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중, 장거리. 그리고 더 높이 더 멀리뛰기 위해 중력을 거스르는 높이뛰기와 멀리 뛰기까지 실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육상의 트랙경기 말이다.


   이렇듯 육상 경기는 찰나의 시간 한 순간의 허튼짓도 허용치 않는 극강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런 육상 트랙 경기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어떤 기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날 몸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한의 스포츠라는 점이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알몸의 향연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육상경기에 한 가지 아쉽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트랙의 단거리 선수들이 스파이크라고 하는 못 박힌 신발을 꼭 신어야만 하는 것인가이다.


  날 몸으로 자신의 한계와 싸운다는 육상의 특성만큼 못 박힌 특수 신발을 신고 승패와 기록을 겨룰게 아니라 일반 운동화로만 자신들의 기량을 겨루어야 되지 않을까. 못 박힌 특수 신발을 신고 이루어낸 기록을 과연 자신의 온전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일부 사람들은 다른 스포츠 선수들도 특수 장비를 이용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특히 육상처럼 똑같이 알몸 하나로 경기를 치르는 수영 같은 경우도 기능성 수영복을 입지 않느냐고 말이다. 물론 그 말이 맞다. 요즘은 종목 따라 거기에 맞는 기능성 장비들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수영 같은 경우는 우리 일반인도 평상시 수영을 즐길 때 대부분 수영복을 입니다. 하지만 우리 일반인들이 평상시 걷거나 달리기를 할 때 스파이크를 신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일부 스포츠의 기능성 장비들과 특수 수영복 같은 경우는 소재의 특수성일 뿐 육상 선수의 스파이크처럼 운동화에 못을 박는, 즉 경기의 승패와 기록에 큰 영향을 끼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육상의 매력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오로지 알몸이라는 몸뚱이 하나로 인간의 한계를 이겨 낸다는데 있다. 그런 육상의 매력 앞에 굳이 스파이크라는 특수 신발이 필요한 걸까. 어차피 마라톤처럼 스파이크가 아닌 운동화를 신으면 각 선수마다 조건은 똑같을 것이니 문제가 될 게 없지 않은가. 스파이크를 신는 것 또한 모든 선수들이 신으니 조건은 똑같아 문제 될 것은 없지만 한 가지 문제는 바로 기록이다. 날 몸의 스포츠로 불리는 육상인만큼 그것을 우리 인간 육체만의 정당한 기록으로 과연 볼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말이다.


  스파이크는 이제 육상 선수, 특히 단거리 선수들의 상징이 되어있다. 하지만 인간의 맨몸으로 트랙을 달리며 승부를 가리는 게 육상 경기라면 그 뜻에 맞게, 선수들의 경기력과 기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못 박힌 스파이크가 아닌 그냥 일반 러닝화를 신고 경기를 치르고 기록을 평가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202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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