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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Sep 09.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77. 규정

저는 육군 출신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육군직할의 특수전부대입니다. 여러분들이 흔히 말하는 일명 특전사말입니다. 그런데 특수부대라 하더라도 소속은 분명 육군이기 때문에 모든 규정은 육군규정을 따릅니다. 그렇다 보니 일선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전투요원들은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적용으로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는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특전단은 1박 2일의 짧은 전술훈련을 해도 100킬로미터를 행군해야 합니다. 이유는 비록 강하를 한다고는 하지만 목표지역에 직접 강하를 하면 적군에  노출되어 작전이 실패할 우려가 많기 때문에 최소 50킬로미터 이격 된 곳에 강하를 해 육상으로 은밀 침투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침투 50킬로미터 퇴출 50킬로미터 이렇게 짧은 훈련이라 해도 한 번 훈련을 하면 무조건 100킬로 미터는 행군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최소 1주일, 그리고 최고 한 달 이상의 훈련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침투와 퇴출 행군을 빼고도 이동하면서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행군 거리는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거기다 별도로 매년 400킬로미터의 일주일간 천리행군까지 말입니다. 그것도 도로가 아닌 산악으로 말이죠.


  훈련에 도로란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도비닉을 위해 무조건 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산악행군의 거리가 지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게 무슨 말이냐. 그것은 도상 1킬로에 산이 들어가 있으면 실제 행군거리는 1킬로가 아니라 몇 배로 늘어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도상의 거리가 1킬로라는 것은 그건 산을 터널로 뚫어 직선으로 행군해야 가능한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산을 넘을 때는 직선이 아닌 산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산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니 실재 행군 거리는 도상 거리와 달리 확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주둔지에서 수시로 실시되는 30킬로그램 돌덩이를 닉샥에 넣고 산악 20킬로미터 급속행군과 무휴식 행군까지. 이건 보병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특전단 전술팀의 1년 치 행군 거리는 웬만한 일반 보병의 사병이 입대 후 제대까지의 행군 거리를 넘어선 다고 해도 아마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또 산악 무장구보 같은 경우는 어떻고요. 5km 기준 22분, 10킬로미터 기준 45분에 들어와야 합격이 됩니다. 군장을 메고 소총을 들고 험준한 산악을 말입니다. 그리고 ATT전투력 평가 같은 경우 실전과 똑같이 적진에 침투할 때의 군장 그대로를 꾸려야 합니다. 이때 평가관이 군장의 무게를 저울로 재는데 특전조끼와 소총을 제외하고 오직 닉샥 무게만 53Kg이었습니다. 여기다가 특전조끼의 무개와 소총의 무게 그리고 낙하산의 무게까지 합하면 80kg에 육박합니다. 그리고 강하후 15kg의 낙하산을 반납하고 60Kg이 넘는 군장으로 6일 동안 통틀어 잠 2시간 정도밖에 못 자고 산악을 타고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러한대도 장비는 육군규정에 따른 육군 보병과 같은 장비를 써야 합니다. 기동력을 필요로 1년에 6개월 이상을 야전에서 훈련해야 하는 특수부대원이 사무실에서 행정을 보는 행정병과 똑같은 전투화를 신고 똑같은 장비를 보급받아 훈련을 해야 된다 이 말인 것입니다.


    저는 94년도에 군생활을 했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소총과 같은 개인화기와 무전기 같은 교신장비들이 열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번은 미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 요원들과 한 달 정도 훈련을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그때 통신주특기로 근거리 무전기 P-77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린베레 팀리더인 대위가 어떤 무전기인지 좀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된 말로 쪽팔려 어떻게든 안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첨단 장비를 본 저는 도저히 우리 장비를 보여 줄 수 없었습니다. 그건 제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아니 우리 특전단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위는 집요하게 저를 쫓아와 기어이 특전조끼에 담겨 있는 P-77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제 자존심이 더 상한 것은 그 대위가 그 무전기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군 그린베레에서의 대위면 군 생활도 적지 않게 한 편이고 또 자기 나라에서 월남전에서도 썼던 장비였는데 너무 낙후된 장비이다 보니 자신의 나라에서 더는 볼 수 없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는 무전기를 보면서 골똘히 생각한 후 한 참 후에 “이즈 디스 P-77?” 이냐며 무슨 장비 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 절망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P-77과 함께 영원히 들어가 버리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저희는 무게도 무겁고 통달 거리도 짧고 교신도 잘 되지 않는 장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동료들끼리 사비를 틀어 사제 무전기를 구입했습니다. 사제 무전기는 통달거리와 무게 면에서 군용 무전기의 성능을 월등하게 능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무전기를 오래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사제품이라 육군 규정에 어긋 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건 하나의 단편적인 사례에 불과할 뿐입니다. 다른 장비들도 이와 같은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전투화를 묶을 때 바깥쪽에서 안으로 감기는 끈이 위쪽에 올라가야 된다는 규정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그 육군 규정을 지적받을 때 이게 도대체 전투력과 무슨 상관인지 도무지 납득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말이 옆으로 좀 샜는데, 어찌했던 우리가 사비까지 틀어 사제 장비를 장만하는 것은 분명히 전투력을 올리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군용과 사제의 성능 차이가 극명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 사령부에서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족한 장비의 성능을 오로지 군인 정신과 육체적 강인함으로 극복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고 국민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전투를 치러야 하는 군인들의 전투력 보다 규정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육군규정 준수에 대해서 한 가지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의 규정준수가 상당히 자의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회에 무슨 사건 사고가 벌어지면, 예를 들어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같은 사건에 인명 구조와 수색 같은 위험한 일을 시킬 때나 지하철 파업으로 기관사가 부족할 때면 제일 먼저 특수부대원을 출동시킵니다. 너희들은 특수부대원이니 당연히 이런 일을 앞장서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럼 특수부대이니 거기에 걸맞게 장비의 계선이나 사재 장비의 사용을 요구하면 가차 없이 육군규정 들먹이며 딱 잘라서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특수부대원이고 우리가 필요할 때는 그냥 육군일 뿐인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후배들에게 이야기를 듣자니 전인범 장군이라는 사람이 특전사령관으로 왔을 때 부대 분위기가 잠시 달라졌다고 합니다. 이유는 전 장군이 전투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사제 장비도 마음껏 써라고 지시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 장군이 특전사를 떠나자 부대는 다시 이전의 규정만을 준수하는 옛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규정은 물론 중요합니다. 규정이 있다는 것은 그 사항이 그만큼 뭔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전투를 치르고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되는 군인들에게 전투력 상승보다 더 중요한 규정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전쟁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일단 벌어지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죽고 자기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참극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규정보다 분명 전투력의 상승이고 규정 운운하는 것은 전형적인 지휘관의 몸보신이자 탁상 행정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21.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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