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Sep 15.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18. 출산장려금

지금 우리나라에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유치원이며 어린이집에는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더불어 각 초등학교에는 입학하는 아이들의 수가 해마다 줄어들어 한 반에 겨우 몇 명만이 수업에 임하는 실정이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의 이유는 결혼한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낳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일간지의 통계에 따르면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는 향후 몇십 년 후면 아이들을 보기 힘들 거라는 암울한 데이터가 나와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실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위기의식 때문인지 국가와 지자체들은 앞 다투어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출산 장려금이라는 제도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참 획기적이고 기발한 좋은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출산을 포기하는 부부들 대부분이 결국 경제적인 부분, 즉 양육비라는 돈이 문제라고 말하니 말입니다. 또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인간이라는 한 고귀한 생명을 탄생시키고 키우는 일에 돈을 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는 이 정책을 우리는 과연 환영해야 하는 것일까요.


   물론 현실적으로 따지면 결국 돈이 제일 문제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생명이라는 것은 돈의 가치로만은 따질 수 없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 한 명 당 몇 백만 원의 장려금을 줄 테니 아이를 많이 낳아 주십시오”라는 말은 성서로운 생명 앞에서 결국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 만능의 그릇 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주는 몇 푼의 장려금을 받고자 하나의 생명인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생각은 발상 자체가 저급한 것이고 부모 또한 당장 눈앞의 장려금 때문에 장래를 감당할 수 없는 아이를 낳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출산 장려금이라는 게 얼핏 들으면 하나의 국가 복지 정책처럼 그럴듯해 보이지만 좀 비약적으로 말해보자면 숭고한 생명을 돈으로 사고파는 비정상적인 상거래와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우리가 아이를 낳을 때는, 경제적으로는 힘들더라도 엄마 아빠의 핏줄을 이어받아 소중한 가족의 행복이라는 백년지대계를 꿈꾸며 아이를 출산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출산 장려금 조금 준다고 해서 슈퍼에서 과자 한 봉지 사 먹듯 쉽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어차피 아이를 낳아야 하는 가정에 출산 장려금을 지급하는 것은 안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룩한 생명의 탄생 앞에 돈이면 될 거라는 이런 식의 생각은 분명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22. 8. 30

작가의 이전글 방귀와 달리기의 상관관계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