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Oct 03.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76. 경비원

  며칠 전 대법원에서 경비원에 대한 판결이 하나 나온 게 있습니다. 판결의 요지는 경비원에게 경비 외의 업무를 시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이 참 우습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경비원이 경비업무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판결까지 받아야 하니 말입니다.


  아무튼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법원은 경비원에게 경비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시키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지으며 경비업무에 관한 논란을 일단은 법적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이런 일이 법적 분쟁까지 치르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한 번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판결에서 문제가 되는 해당 경비원들 대부분은 아파트인 공동주택 경비 업무를 맡는 사람들로 보면 됩니다. 아파트 공동주택 경비원들은 경비 업무 외에 단지청소, 쓰레기 분리, 주차관리, 택배 수령 등 경비 외의 업무를 일상적으로 하니까요.


  참고로, 경비라는 용어의 뜻은 국어사전에, 명사로 “도난, 재난, 침략 따위를 염려하여 사고가 나지 않도록 미리 살피고 지키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경비원은 말 그대로 이런 “경비의 업무를 맡은 사람”인 것이지요.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이 당연한 판결 기사에 달린 댓글이 가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기억에 남는 두 가지 댓글을 한 번 짚고 넘어가보고자 합니다,


  우선 첫째, 그럼 아무 일도 안 하는 경비원이 그런 일이라도 해야죠.

  그리고 둘째, 나도 병원 물리치료사로 근무 중인데 내 업무 외에 다른 일도 다 한다.


  먼저 첫 번째 댓글에 대한 답변은 이렇습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는 경비원이 그런 일이라도 해야죠” 참 한심하기 그지없는 댓글입니다. 경비원이 아무 일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단순감시직이라는 경비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비는 존재 자체로 범죄 억제력을 가집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불필요한 경비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비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일례로, 은행강도나 주택강도가 경비원이 없는 제2금융권과 경비원이 상주하지 않는 단독주택과 원룸, 빌라 등에 집중적으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물리치료사의 이야기 또한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도 병원에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지만 본인의 업무 외 다른 일도 한다”라는 이 말은 자신도 분명 병원 측으로부터 고유업무 외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고 있는 것을 인지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병원 측과 협상을 하든 투쟁을 하든 자기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야 되는 것이지, 자기도 부당한 대우를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별 문제 될 게 없다는 이 말도 안 되는 괴변은 무슨 소리란 말입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들의 말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비원에게 다른 잡무를 시킨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노동력의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급여는 단순감시업무로 분류되는 경비의 노동력을 기준으로 책정해 쥐꼬리만큼 주면서 정작 일은 이일 저일 다 시킨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입니까. 무슨 전근대 시대의 노예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만약 당신들에게 한 가지 일에 준하는 급여를 주면서 급여를 지급하는 일 외에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일을 시킨다면 당신들은 아무 소리 없이 순순히 그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미국이나 필리핀처럼 총기를 소지해 치안이 불안한 나라들은 경비원에게 경비업무 외의 일은 절대 시키지 않습니다. 잡일은커녕 그들에게 함부로 막대하는 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비원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책임져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비원을, 불필요한데 마치 자신들이 일자리를 적선하고 월급을 은혜적으로 베푸는 것처럼 생각들을 하고는 합니다.


  그래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만약 경비원이 불필요하면 경비원을 쓰지 마십시오. 청소나 분리수거 주차관리 등 그런 일이 필요하면 경비원이 아닌 그런 일을 하는 관리원을 채용하십시오. 자기들이 필요해서 경비원이라는 명목으로 경비원을 채용해 쓰면서 무슨 잡일은 그렇게 시키고 돈 몇 푼 주면서 무슨 갑질을 그리도 많이 하는 것입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불필요한 경비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비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범죄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여라도 언제 일어나지 모르는 그 한 번의 사건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경비원인 것이고 말입니다. 이는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데 대통령 경호원이 왜 필요하며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데 왜 군대가 필요한가라는 어이없는 물음과 같은 것입니다. 즉 언제 발생할지 모를 그 한 번의 사건을 대비하고 또 그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라는 이 말입니다.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몇 년 전 학교 담장 허물기 사업을 들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정부와 교육당국은 시민과 함께한다는 명분으로 학교에 둘러 쳐진 담장을 허물었습니다. 그런데 담장을 허물고 나니 학교에 외부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며 관련 범죄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정부와 교육당국은 다시 학교의 담장을 설치하는 걸로 정책을 되돌렸습니다. 그러자 학교의 범죄율은 다시 이전의 비율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렇게 별 것 아닌 것 같은 담장 하나도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범죄 발생률 빈도가 좌우됩니다. 그러니 경비원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굳이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들이 불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그 경비원이 왜 그 오랜 시간에도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 한 번 잘 생각해 보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2021. 10. 3

작가의 이전글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