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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Oct 04.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17. 에이스와 히어로

2002년 여름은 뜨거웠습니다. 거리는 붉은 옷을 입은 시민들로 넘쳐났습니다. 외신들은 그런 시민 응원단들을 붉은 악마라 이름 불렀습니다. 굳이 붉은 악마가 아니었더라도 붉은 악마가 되었던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은 4강 진출이라는 기염을 토하며  축구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 무더위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열정을 태운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응원과 박수를 보냈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2002년은 그렇게 전 국민이 축구로 하나가 되는 그런 해였던 것입니다.



  2006년 세계 야구 대회인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이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세계 내로라하는 야구강국들과 선수들이 모여 수준 높은 경기를 펼쳤습니다. 프로 야구의 최강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한국, 일본, 대만과 호주등을 비롯해 아마 야구의 전설 쿠바까지 그야말로 전 세계 야구인들의 대 향연이 펼쳐진 것입니다. 2006년. 우리나라는 초대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는 위용을 보이며 이후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면서 한국야구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입니다. 우리나라는 전반 18분에 이탈리아에게 선재 골을 내주며 경기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득점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찬스에서 간판선수들의 실수로 안타까운 기회도 꽤 많이 놓쳤고요. 그러다 경기종료 2분을 남겨 놓은 후반 43분경. 한국선수 설기현이 동점 골을 터뜨리며 겨우 패를 면하고 구사일생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연장 후반. 우리가 잘 알듯 우리나라팀의 간판 공격수의 헤딩볼이 극적으로 상대 골문을 파고들며 승리를 해 8강 진출을 하게 되었던 것이고요.



  그리고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경기는 2라운드 일본과의 일전이었습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기는 그 무엇을 막론하고도 숙명적이라 할 수 있어 국민들의 관심은 어느 팀의 경기보다 더 긴장되고 뜨거웠습니다. 우리나라 팀은 국내 내로라하는 프로선수들이 포진했고 일본 역시 세계적인 타자 이치로를 필두로 만만찮은 전력을 구성해  놓았습니다. 경기는 8회까지 일본이 2:1인 1점 차이로 우리 나라를 앞서고 있었습니다. 팀의 분위기는 다운되었습니다. 결정적인 찬스도 번번이 놓쳤고요. 그러나 스포츠의 결과는 끝나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일. 8회 초 1사 1루 상황에서 국보급타자가 나와 이름값을 하듯 투런 홈런을 터트리며 일본을 무너뜨리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 후 한국 야구의 자존심을 세우며 최종 3위라는 빛나는 성적을 세웠습니다.



  두 경기에서 스타플레이어가 결승골을 넣고 결승 홈런을 날릴 때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서로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한 마디씩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에이스는 다르다고, 결정적인 순간 한 방 날려주는 진정한 히어로라고 말입니다. 덩달아 감독들의 용병술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선수에 대한 끊임없는 믿음의 결과가 이런 승리의 기쁨을 만들었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저는 결정적인 순간 한 방을 날려 경기를 승리로 이끈 그 에이스 선수들을 히어로라고 칭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감독들의 용병술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왜냐하면 경기 내내 결정적인 기회가 많았는데 항상 그 에이스들이 제대로 된 실력 발휘를 못해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았고 연장전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이르게 되었으니까요. 그때 감독이 일찍 그 선수들을 교체해 다른 선수를 기용했더라면 경기는 연장전까지 가지도 않고 훨씬 수월하게 이겼을 수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월드컵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같은 경기는 단기전입니다. 국내 축구나 야구 그리고 농구나 배구같이 리그전을 펼쳐 몇 달 동안 경기를 치러 승부를 가리는 방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진한 선수를 리그 때처럼 꾸준한 믿음으로 계속 기용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죠. 아무리 에이스라 해도 그 경기 시기에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빨리 컨디션 좋은 선수로 교체를 하는 것이 맞다는 말이죠.



  우리는 항상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합니다. 그 과정이 아무리 문제가 있고 형편없었다 하더라도 결과만 좋다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죠. 저는 앞의 월드컵 16강전 같은 경우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에이스선수보다, 후반 종료 몇 분을 남기고 동점 골을 넣어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간 선수가 더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설기현 선수가 아니었으면 그냥 패하는 걸로 연장 결승골 같은 것은 애초에 일어날 기회도 없었으니까요. 여러분이 저와는 달리 생각한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비단 이런 일은 이 두 경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문제인 것이죠. 그래서 이 글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어느 특정 문제에서 우리가 그 사람을 히어로라고 할 때 좀 더 심사숙고해봐야 하지 않나라는 것입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2022.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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