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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Nov 11.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95. 사실주의(극의 대화)

요즘 2002년 종영된 전원일기라는 드라마가 각종 채널에서 방송 중입니다. 1980년 첫 방송을 시작으로 자그마치 단일드라마로는 20년 방영이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근래 우리 가족은 이 드라마를 함께 시청하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요즘의 흔한 말로 소위 레트로 감성이라는 것에 푹 빠져 소소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양촌리라는 시골을 배경으로 중견배우 최불암이 역을 맡은 김회장댁과 서른 즈음이라는 실제 나이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연기를 기가 막히게 소화한 김수미의 열연이 돋보인 일용이네, 그리고 흡사 시골 사람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노련한 연기를 선보인 마을 청년들과 노인, 그리고 부녀회라는 여성들의 애환과 즐거움등 희로애락이 묻어난 삶을 진솔하게 다룬 전원일기.


  그렇다면 전원일기는 어떻게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과연 그 장수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저의 이런 의문은 드라마를 계속 시청하던 중 결국 출연 배우들의 연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연출가와 작가, 그리고 현장 스테프들의 노고가 다 어우러져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연기자들의 현실감 있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장수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말입니다.


  전원일기를 보면 어느 배역하나 특별히 튀는 사람이 없습니다. 진짜 우리 동네 이웃 사람들처럼 복장이며 행동들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 자연스러운 연기 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대사처리 능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 드라마들은 개성 있는 독창적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독특한 억양과 말투가 빈번한데 이는 특색은 있지만 금방 싫증이 나는 반면 전원일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몰아보기로 몇 시간씩 시청을 해도 대사 때문에 귀가 거슬리는 불편함이 없이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요즘 드라마와 영화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인물이나 의상, 배경 등을 현실과 흡사한 모습으로 촬영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관객인 우리는 지금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극에 몰입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직도 현실적이지 못한 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극 중 인물들이 내뱉는 말, 즉 대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말실수를 절대 하지 않습니다. 항상 말을 내뱉으면 그 말이 끊기지도 또 틀리거나 더듬거리지도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친구나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말이 막힐 때도 있고 씹힐 때도 있고 더듬거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말 막힘없이 극 중 인물들처럼 매끄럽게 대화를 할 수 있는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연기하는 배우들의 극 중 행동을 보면서 어떨 때는 NG장면이 될뻔한 작은 실수에서 더 큰 현실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사람들 일상에서 그런 일이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에는 절대 그런 실수가 없는 것이죠.


  물론 드라마나 영화라는 장르가 대사로 극을 이끌어가는 형식이다 보니 정확한 전달력을 바탕으로 하는 대사의 완벽한 구사가 그만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제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리얼리티를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요즈음의 모습을 보면 대사의 실수도 가끔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극 내내 그런 실 수가 나온다면 극의 흐림이 끊기는 부작용으로 문제가 되겠지만 한 두 번 정도는 그런 모습이 연출되어야 리얼리티에 있어서 더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니 말입니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항상 현실감을 이야기합니다. 비록 내용은 픽션이지만 모든 픽션은 현실에 바탕을 둔 만큼 얼마나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나라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관객의 그러한 바람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연출자와 작가는 배경이나 의상과 함께 배우들에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요구하며 여러 부분에서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행동에 대해서는 현실감 있는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면서 말인 대사에 대해서는 어떠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철저하게 완벽해야 한다는 모습은 진정한 현실감을 바라는 저에게 많은 아쉬움을 주네요.


202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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