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Nov 18.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

96. 전체 속의 소수(경제적 논리)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인근 지역 전통 오일장을 자주 찾습니다. 어머니께서 장구경하는 것을 좋아해 여기저기 장날에 맞춰 모시고 다니는 것입니다. 특정한 날짜에 맞춰 오일에 한 번씩 열리는 지방 소도시의 장이다 보니 장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꽤 많으십니다. 젊은 일행이 없는 걸로 보아 그분들은 제가 어머니를 자가용에 태워 모시고 오는 것과는 달리 장에 오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하루에 몇 대 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타고 혼자서 장터까지 오셨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가끔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손님 한 명 없는 텅 빈 버스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외진 곳의 버스 터미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도시의 시외버스 터미널이나 시골에서 운행되는 버스는 수익이 나지 않습니다. 이용하는 사람이 적으니 수익이 날 수가 없는 갓입니다. 경제적으로 계산했을 때는 분명 노선을 폐지하는 게 맞습니다. 요즘 같은 자가용 필수 시대에 노선을 계속 유지해 봤자 운영에 따르는 비용 발생으로 손해만 계속 늘어날 뿐인가 때문에 말입니다.


  이처럼 여러 사정을 합리적으로 따져봤을 때, 몇 명 되지도 않는 사람들을 위해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며 버스를 운행한다는 건 분명 잘 못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분명합니다. 경제와 전체를 생각한다면, 그럴 예산이면 차라리 일부 사람들이 불편을 겪더라도 노선을 정리하고 그 돈을 다수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쓰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논리로 따져 정말 그 노선은 폐지해야 하는 걸 까요. 만약 그렇게 해야 된다면 그 버스를 이용하던 소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 까요. 무슨 교통수단으로 읍내 장을 다녀오고 자식집을 찾아가 손주들을 보고 올 것인가 말이죠.


  우리는 모두 전체인 동시에 언제나 전체 속의 혼자입니다. 오늘의 제가 영원한 내일의 저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우리는 가끔 전체를 위해서 몇몇 개인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제가 그 혼자가 되었을 때 전체를 위해 누군가 절 희생자로 지목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민주주의 국가는 다수결의 국가입니다. 이는 전체에서 보다 많은 사람이 선택한 의견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의견이 충돌하면 모든 것은 다수결로 정해지고 결정됩니다. 항상 경제성과 합리성을 따져 다수를 차지한 사람들의 의견이 늘 소수의 의견을 눌러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행여라도 선택받지 못한 소수의 의견을 낸 사람이 불복할 의사라도 내비치면 다수결에 따른 것이니만큼 당연히 다수를 위해 소수인 당신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요.


  이는 얼핏 생각하면 분명 맞는 말입니다. 각양각색의 의견을 가진 불특정 다수가 살아가는 곳에서는 다수결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독재국가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늘 존재하는 반대의견 때문에 무슨 일이든 실행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하지만 모든 것이 경제와 합리성을 따져 다수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전체주의 사상에 빠져 든다면 어느 날 소수가 된 이들에게는 그것이 독재 국가와 과연 무엇이 다를까요. 그 희생되어야 하는 소수도 분명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호받아야 할 시민이었고 한 인간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 한 건 바로 이것이죠. 오늘 제가, 또 당신이 언제라도 그 소수가 될 수도 있다 것. 바로 그것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시골버스는 텅 빈 차로 외진 길을 달립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것을 경제와 합리라는 이유로 막을 수 없습니다. 아니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거기에는 돈과 합리보가 우선시되어야 할 분명한 인간이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전체라는 이유로 외면받지 말아야 할 소수의 인간 말입니다.


2022. 2. 25

작가의 이전글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