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Nov 29.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94. 패자부활전

  몇 년 전 “미스터 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많은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전통가요 “트롯”이라는 장르로 경연을 펼쳐 최종 우승자를 뽑는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이지요. 방송에서는 저마다 트롯에 일가견이 있다 하는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노래 실력을 뽐내며 최종 우승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전자들의 모습이 담겨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었습니다.

  미스터 트롯의 우승자 선발 방식은 이렇습니다. 먼저 예선전을 거쳐 심사 위원들에게 뽑힌 7명이 본선에 올라가 다시 한번 승부를 겨뤄 최종 우승자를 뽑는 방식입니다. 이때 예선전에서는 현역부, 신동부, 대디부등으로 그룹이 나뉜 도전자들이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심사위원들은 자신이 인정할 만한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트 모양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하는 버튼을 누름으로 다음 라운드 진출자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의 전원 하트를 받은 도전자는 자동으로 다음 라운드로 올라가게 되고 그렇지 못한 도전자들은 일단 탈락하게 되는데 이 탈락자들은 경연이 끝난 후 심사위원들의 협의를 거쳐 추가합격자라는 이름으로 몇 명이 더 뽑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방식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저는 이 방식을 보며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추가 합격자를 선정하는 방식 때문입니다. 심사위원들 모두로부터 하트를 받아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자동 진출자는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추가 합격자 선정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하트 수로 자동 진출자를 뽑았으면 추가 합격자는 그다음으로 하트를 많이 받은 사람이 뽑혀야 되는 것이 상식적으로 정상 아닌가요. 심사위원들 자신이 실력을 인정해 하트를 줬으면 당연히 그다음으로 하트 수를 많이 받은 사람이 추가 합격 되어야 이치에 맞는 것이지 그 보다 못 받은 사람이 추가 합격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 말인 것이죠. 버젓이 실력을 인정받아 자신들로부터 하트를 더 많이 받은 사람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미스트 트롯에는 하트수를 적게 받은 사람이 많이 받은 사람을 제치고 다음라운드에 올라가는 상황이 펼쳐지더러고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미스터 트롯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불과한 이런 일개 쇼의 추가합격자 선발 방식이 제 눈에 거슬렸던 것은 아마 패자 부활전이라는 승부 방식에 평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저의 잠재의식이 반응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써먹고 있는 이 패자부활전이라는 방식을 별로 내켜하지 않습니다. 물론 패자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는 패자부활전의 선의를 납득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연 이 패자 부활전이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 맞는 것일까요. 어차피 승부에 진 패자들이 다시 한번 승부를 겨루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면 공평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갓을 알게 됩니다. 그럼 저는 왜 이 방식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 지금부터 한 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32강까지 경기를 치르는 대회라면 첫 탈락자는 32강에서 탈락. 즉 경기를 한 번 밖에 뛰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준결승까지 올라가서 탈락한 팀은 첫 탈락자보다 3경기를 더 뛰어야 합니다. 모든 경기는 각 경기마다 최선을 다해야 겨우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준결승까지 올라간 선수들의 체력 소모와 정신적 피로는 첫 경기에 패한 선수들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일찌감치 패해 체력이 보충된 선수와 다시 패자 부활전을 치러야 된다면 우승을 목표로 매 순간 전력을 다해 험난한 경기를 치르며 준결승까지 올라간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그 패자가 운좋게 준결승에서 승리해 결승전에 진출한 다음 최종 우승해 버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면 매 경기를 힘들게 싸워 결승전에 올라가저 패자부활로 올라온 팀에게 져버려 2등을 하게 되는 결승진출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패자부활전은 과정을 철저히 무시해 버립니다. 오직 마지막 결과만 좋으면 그만인 것이죠. 특히 군복무 당시 저는 이런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아니 이는 다문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던 그 시절에는 다른 부대원모두 그랬을 겁니다. 운동경기만 하면 항상 마지막에 이 패자부활전이 하나의 공식처럼 되어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부대에서 족구 같은 게임을 할 때면 첫 경기에서 져도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작전상 부러 먼저 패를 선택한 적도 있었고요. 저는 그때에도 이 패자 부활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겨우 결승전까지 올라 놓고 1차전에서 패해 한 경기만을 치른 팀에게 우승이 돌아가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기 때문에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패자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는 뜻은 분명 되새겨 볼 만한 일입니다. 인생에 있어 한 번의 패배가 곧 삶의 끝이 아님을, 앞으로의 남은 삶에도 언제든지 기회는 다시 주어질 수 있다는, 그래서 모든 걸 쉽게 포기하지 말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지만 패자만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들의 노력과 과정들이 빛을 잃는다면 이것 또한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는 문제의식을 우리는 다시 한번 가져 봐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2022. 2. 24

작가의 이전글 판새라 불리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