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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Dec 09.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99.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비법

음식 먹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 일명 먹방으로 불리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며 전국에 맛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식당들이 공중파에 많이 노출되고 있다. 시청자에게 각자만의 음식을 소개하고 어떻게 맛을 내는지 당당하게 공개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오직 맛이라는 한 길 만을 걸어온 인내와 집념이 오롯이 전달된다.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잡기 위해 적자생존의 요식업계에서 살아남으려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노력은 가히 초인적이다. 보통사람의 인내와 끈기로는 버텨낼 수 없는 인고의 시간을 그들은 매일 견뎌내는 것이다. 이른 새벽에 불을 켜고 늦은 밤까지 한 순간의 쉼도 없이 음식을 향해 육체를 몰아가는 노동. 그 고된 노동 속에서 탄생한 한 그릇의 음식은 그 어떤 값으로도 따지기 힘든 그 무엇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끝에 통달된 맛의 비법은 당연히 사람들의 궁금증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방송에서는 그 음식의 뛰어난 맛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조리 과정을 심층취재라도 하듯 카메라에 담아낸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알려주기라도 할 것처럼 하나부터 차근차근 공개되는 조리과정은 항상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멈춘다. 그리고 주인들은 똑같이 이건 절대 알려 줄 수 없는 자기들만의 비법이라며 촬영을 못하게 한다. 옛날 유행했던 말로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비법”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뭐 그러면 그렇지”라며 역시 나라는 마음과 함께 한껏 몰입했던 긴장이 일순간 풀려버리고 허탈함을 맛보게 된다. 비법. 과연 저렇게 많은 손님들을 끓어 들이는 그 맛의 비법은 무엇일까. 너무 궁금해진다. 하지만 주인은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 물론 영업에 제일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에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좀 가르쳐 주면 안 되는 것일까.


    옛날의 며느리는 장차 그 집안의 살림을 물려받을 사람이었다. 살림을 물려받는다는 이야기는 단순하게 집안의 경제력을 획득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족 구성원들의 음식까지 책임진다는 말이다. 즉 시어머니의 음식 맛에 길들여진 시댁 사람들의 입 맛 또한 감당해야 된다 이 말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며느리에게도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다니. 물론 비법의 노하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강조의 뜻이 담긴 반어법이지만 그 말의 상징성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결정적인 맛의 한 수는 가족인 며느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런데 정말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야 되는 것인가. 한 예로 TV에 출연하는 맛집에서 비법을 안 가르쳐 주는 이유가 자신이 그 비법을 가르쳐 주면 경쟁자가 나타나 자신의 영업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논리인데 과연 그 비법을 오픈한다고 해서 전국에 있는 잠재적 경쟁자가 그 비법을 터득해 자신들이 터 잡고 있는 그 구역에 와서 영업을 방해할 확률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 것인가.


  그리고 그 비법을 노출시킨다고 해서 음식이라는 게 똑같은 맛을 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리 똑같은 재료를 쓰고 똑같은 방법으로 조리를 한다고 해도 같은 맛을 낸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몇 년을 함께 하면서 배워도 좀처럼 그 맛을 낼 수 없는게 음식 아나던가.


  아무튼 업계의 불문율처럼 여겨지는 이런 관행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맛 집으로 소문난 식당의 사장님이 모든 걸 다 알려준 적이 있다. 그때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제작진이었다. 제작진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사장님의 행동에 놀라 이렇게 다 알려줘도 되는 것이냐, 비법은 감춰둬야 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그러자 그 사장님은 “다 알려줘도 된다. 알려준다고 해서 내가 내는 맛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다 오픈해도 걱정할 것도 없고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오! 이 당당함.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자신이 한평생 서러움 참아가며 고생해서 터득한 비법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또 그것이 자기 가족들의 생계가 걸린 일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맛집으로 TV에 까지 출연해 그렇게 비법을 감추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같은 재료를 쓴다고 그 맛이 나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그 맛을 비슷하게 흉내 낸다고 해서 자신들이 터 잡고 있는 상권에까지 찾아가 매출에 위협을 가 할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리고 정말 그런 게 우려스러운 거라면 애초에 TV에 출연하지를 말 것을.


2022.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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