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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Dec 10. 2023

회의적

잡담

일제강점기. 선각자들은 우리의 교육이 부재해서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가산까지 털어가며 학교를 세우고 젊은이들을 가르쳤죠. 무지해서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교육을 받고 깨우쳐서 독립 투쟁에 선두를 맡고 해방 이후 나라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거고요. 그게 바로 교육 유용론이죠. 알아야 한다. 깨우쳐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인생의 큰 실수를 줄이며 잘 살게 될 거라는 논리요. 그런데 요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연 이 교육 유용론이 의미가 있나 싶어요.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배움이 부족해서 또 자신의 특정한 이득을 위해서 상식에 어긋나는 선택을 했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러함들과는 상관없는 대다수의 사람이, 그것도 다 고등교육 이상의 배움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이런 상식에서 어긋난 선택을 하는 걸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죠. 다 배운 사람들인데 말이에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불법 다단계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을 들 수 있죠. 그 집단에서는 상위에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들의 믿음은 이해돼요. 그 믿음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니까. 그리고 하위에는 배움이 부족해 무지한 사람이 있어요. 그들의 믿음도 이해를 해요. 세상을 제대로 모르는 무지 때문이니까. 그런데 그 중간층인 대학생들이나 최소한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죠. 도대체 배웠다는 사람들이 왜 이 정도의 기본적인 사리판단이 되지 않는 걸까 하고요. 그렇다면 이런 걸 볼 때 과연 교육유용론이 의미가 있나요. 배웠다는데도 이런 잘 못된 선택을 하니까요. 그 옛날 배우지 못해 잘못된 선택으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이 시대 고등교육 이수자가 전체 인구의 80%가 웃도는데 말이죠. 요즘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꽤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실화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역사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며 잘못된 우리 선조들의 선택을 보고 우리는 울분을 토할 때가 많잖아요. 잘못된 역사관과 가치관으로 두 갈래의 길 중 왜 하필 저기서 저런 길을 선택해 저렇게 비참하게 당하고 있나 한심해서요. 물론 절박한 상황에서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왜 중요할 때 그 교육의 이성이 마비되어 버리는 걸까하고요. 그렇다 보니 그런 걸 보고 배우면서도 우리에게 득이 되지 않는 그와 똑같은 잘못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는 걸 보면 도무지 이 교육유용론에 믿음이 가지 않아요. 분명히 배웠는데. 옛날 사람들보다 더 똑똑해졌는데. 도대체 왜. 왜. 참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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